‘돌봄 뉴딜’을 고민해야 할 때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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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며칠 전 간호사인 친구가 일하는 곳에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한다. 일터는 폐쇄되었지만 하루 만에 방역 후 다시 영업을 재개했고 밀접 접촉자로 판명 난 노동자들은 음성 판정에도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지만, 음성이고 밀접 접촉자가 아니었던 친구는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친구의 아이였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네 살 아이는 2주간 등원을 못 하게 되었다. 남편은 회사가 바쁘다고 했다. 이미 긴급 돌봄 휴가를 모두 써 버린 친구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의탁하기 위해 시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선배는 아버지가 장기요양 재지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자 사회복지사의 방문이 중단되어 재지정을 위한 검사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요양보호사 방문은 조만간 중단되는데 대책은 없다. 선배는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코로나19로 대면 접촉 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많은 업체들이 자의반 타의 반으로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비대면이 활성화되고 소위 언택트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돌봄에 있어서만큼은 비대면에 물음표가 뜬다. 인간 사회는 다른 동물 사회보다 더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 동물보다 성장기간이 길고 노년의 삶이 긴 까닭이다. 일정 규모의 주거 공간을 만들고, 생식을 하지 않고 조리된 음식을 먹는 인간의 ‘문명화된 특성’ 탓이다. 동물들은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개체는 도태되지만, 인간은 의학을 발전시키며 병이 있는 환자와 장애인을 돌보며 살아간다. 어쩌면 돌봄은 더 많이 갖고,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결과물일 수 있다. 문제는 모든 것이 멈춘다 해도 타인을 위한 대면 돌봄은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돌보기 어려운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돌보는 것을 국가와 사회의 책무로 정해 놓은 지 오래이다. 돌봄은 사람이 생존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에서는 모든 돌봄의 책임이 가정으로 미루어졌다.


돌봄 노동의 성별화된 책임은 사회적 차별을 가져왔고, 여성들은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며 저항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여성들은 ‘사회가 50년은 후퇴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사회적 돌봄이 멈춘 자리를 메워야 하는 책임을 떠맡은 것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목도한 것은 ‘돌봄 노동의 여성 연쇄’ 현상이다. 엄마가 아이를 돌보지 못 하면 친정과 시집에서 어머니들이 동원되었고, 다음으로는 고모나 이모가 투입되었다. 비혼이면서 프리랜서인 친구는 조카를 돌보기 위해 저녁시간을 온통 비워두어야 했다.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가운데 세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새언니가 세금 신고 기간에 들어서며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돌봄에 참여한 이유는 엄마가 장시간 돌봄 노동을 버거워했기 때문이었다. 오빠도 엄마를 걱정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해법은 달랐다. 새언니에게 회사를 그만두라 요구했고 오히려 시누이인 친구가 말리는 형국이 되었다. 지금 일을 그만두게 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 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듬는 여성연대가 작동하며 돌봄 노동은 그렇게 여성으로만 이어지는 연쇄 작용이 되었다.


사회적 돌봄이 작동하는 현장은 그야말로 여성의 노동을 극한까지 갉아먹고 있다. 기존 업무에 방역까지 추가로 요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이들을 위해 긴급 돌봄을 열었다. 정규 교과는 진행되지 않지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아이들을 받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돌봄 교실을 운영했다. 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와 돌봄 전담사들은 원래도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이다. 보육교사의 1인당 아동 수는 다른 나라들의 2~3배에 달하고, 돌봄 전담사들은 시간제임에도 불구하고 전일제와 가까운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돌봄 전담사들은 학교 선생님과 달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행정 처리하는 시간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조로 편성된다. 이런 상황에서 종일에 가까운 돌봄과 방역을 함께 맡아야 한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떤가.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가족 면회가 허용되지 않자 환자들은 고립되었고,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환자들은 그 스트레스를 요양보호사에게 풀고 있다고 한다. 개인을 탓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음압병동에서 환자를 돌보고, 몇 달째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영웅으로 부르지만 실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와 저임금뿐이다. 지난 역사책에서는 영웅으로 기록되었지만 수십 년간 극빈층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독립유공자 가족들과 겹친다면 과언이라 할 것인가. ‘덕분에’ 캠페인은 ‘그러니까’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돌봄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러니까 그에 걸맞은 대우, 그러니까 업무량 축소. 우리가 말로만 덕분에를 외치는 사이 돌봄 노동자들은 노동에 지치고 감염 위험에 노출되고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속에 고통 받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회적 돌봄을 재구조화할 때이다. 그동안 돌봄 노동은 여성들이 집안에서 무급으로 수행해왔다는 이유로 저평가되어 왔고, 당연하게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왔다. 심지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제도인데도 노동자들을 시급제로, 호출 노동으로 부리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멈추면 사회가 정지한다. 방역이 추가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량 의 일을 배정해야 한다. 안정적인 고용 형태로 충분한 임금을 대가로 지급해야 한다. 돌봄은 이제 위험도가 높은 노동이 되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했다. 이것은 공공성이 강화된 ‘돌봄 뉴딜’ 규모로 대대적인 재편성이 필요하다.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안전한 대면 돌봄을 위한 노동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명제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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