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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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여성주의는 남성과 대립하고, 남성을 대체하고, 남성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해를 제안하는 사유이다. ··· ··· 여성주의는 남성과 같아지는 것(‘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 여성주의 패러다임은 ‘평등’에서 돌봄, 차이에 대한 감수성, 사회정의, 지속 가능한 지구에 대한 책임 등으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1) 


흔히 여성주의로 통칭되는 페미니즘은 19세기에 등장한 개념이면서 사회적·문화적·경제적·법률적 권리를 두루 아우르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근거며 바탕이 되는 주장, 이론으로 이해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은 1920년대 무렵부터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실천담론들이 활발해지면서 자리잡아오다가 현재에 이르렀다. 한편 여성주의와 비슷하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용어의 역사를 지닌, 자연을 대상화하는 자본 중심의 파괴적인 세계관에 저항하며 인류가 구축해온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인 생태주의도 있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나라 안팎의 체제가 재편되는 동안 생성되거나 유입된 새로운 흐름을 지칭할 용어들이 필요했고, 그 속에서 여성주의며 생태주의라는 사유랄까 가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명되어오다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어느새 제법 전면에 부상하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적’이라고 할 만한 구체적인 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어느덧 한 세기-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에 발을 맞추어가면서 국내의 여성주의/페미니즘도 공통성과 나름의 차이를 반영한 다양한 이름으로 분화되어 불리어왔다. 이를테면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페미니즘 등으로 말이다. 유입 초기의 ‘거친’ 분류와 단일해보이던 사유가 복잡해진 삶을 반영하듯 현대에 이를수록 더 섬세하고 치밀하게 재조직된다. 이 속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쟁취해내기 위한 각종 활동/운동의 기반이라 여겨지던 여성주의는 얼마간 ‘다른’ 가치를 지향하기에 이른다. 여성주의가 여전히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행동양식이며 정치 활동의 밑절미가 되고는 있지만 이제 저 큰따옴표 속의 ‘여성’은 단지 생물학적 여성만을 일컫지 않는다.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마이너리티·(성)소수자를 아우르며 위계·우열·승부에 집착하는 ‘남성적(이라 여겨져 온) 질서’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세상엔 여성과 남성-두 가지 성만이 있는 것도 아니며, 기존의 남성성이 행해온 것과 같은 억압하고 다투고 겨루기를 욕망하는 일, ‘양성평등’이라는 두루뭉술한 상징계에 깃든 모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또 인간 중심, 인간 우위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들과 두루 공생하는 그물을 잣기 위해서라도 더 섬세하게 ‘정의’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표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선언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떤 사적이면서 공적인 실천이 필요할까에 천착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안의 바람직한 인간성이 한결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북돋우기 위한 것이며, 앞서 생태주의를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인간이란 종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도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방식을 좇아 살아가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즘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더 공정한 조화, 더 정교한 ‘평등’, 더 많은 정의, 더 다양한 자유다. 이것은 기존의 주류 질서가 행해온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고, 진정 구현해야 할 가치들을 톺아 이것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는 점에서 급진적이고 좌파적이다. 좌파 운동권의 문제, 분열을 추동하는 원인은 이런 페미니즘 정치의 작동원리며 변화의 속도를 머리로는 어쩔지 몰라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양한 페미니즘이 일궈온 여성정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부정적인 견해 때문은 아닐까. 거듭 말하지만 여성주의는 여성우위론이나 남녀동권론을 내세우는 이념이 아니다. 이른바 운동권을 포함하여 세계의 변혁을 바랐던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며 사회주의, 아나키즘과 코뮤니즘을 배우고자 들였던 열의랄까 열정의 반의반만이라도 페미니즘을 알아가는 데 쏟는다면 분명 세상은 더 살 만해질 것이다. 사람들 입에 착취니 부조리며 모순이니 불평등이니 하는 말이 덜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남성들이 겪는 억압의 강도도 한결 옅어질 것이다. 인간도 그 밖의 자연도 덜 아프고 더 평화로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어디에 힘을 싣고 어디의 힘을 뺄 것인가. 인간의 행동양식은 결국 의지를 좇아 이뤄지는 것일진대, 하여 얼마든지 삶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일 텐데,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이들일수록 그 변화의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는 없는가. 나아가 기꺼이 서로를 믿으면 안 되는가. 그러기 위해서, 그 믿음과 연대의 장을 펼치는 데 있어서 페미니즘이 구체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조화롭게 ‘잘살기’ 위해서 여성주의에 관해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주류와 비주류, 가진 자와 덜/못 가진 자라는 구도 속에서 지배질서는 여전히 선명하게 작동중이지만 어쨌든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작은 틈을 곳곳에 내고 그 틈들 사이사이에서 ‘다른’ 힘들이 차근차근 근육을 키워가고 있다. 여성주의/페미니즘이 앞장서는 중이다. 세상은 더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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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희진 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교양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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