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나를 낳아 지금 여기 이렇게

by 센터 posted Jul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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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2천 년대 초중반 무렵이었으니 십수 년쯤 된 것 같다, 그녀를 처음 본 게. 서울의 어느 정치집회장에서였다. 수많은 조직의 깃발이 나부끼고, 기천 명은 되는 인파 속에서 유독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는 어떤 조직에도 발을 들이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집회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반쯤 구경꾼의 모습이었는데, 한 정치조직의 깃발 아래 반짝이는 두 눈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그녀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집회장에 가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선을 끄는 이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중 유난히 인상에 남는 이가 있고, 내게는 그녀가 그 경우였다. 이후, 가끔씩 가게 되는 집회장에서 거의 매번 그녀를 보았지만 말을 붙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 언니, 또 보는구나, 참 열심히 하는구나···.’ 속으로 뇌다가 지나쳐오고는 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본 건 수년이 지난 후인 2천 년대 말, 폐교한 채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던 남도 농촌마을의 한 초등학교 관사에서였다. 지인을 따라 우연히 가게 된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저 분이 여기에 살고 있다니 무슨 일인가···.’ 속으로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귀농을 한 거였다. 예전에 따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으니 그녀가 나를 알 리 없었고, 내가 먼저 아는 체하는 것도 어색해서 ‘세상 정말 좁구나···.’ 속으로 웃고는 지나치고 말았는데 이때로부터 다시 수년 후, 나 역시 그녀가 사는 지역으로 와 살게 되면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보았던 그때처럼 지금도 그녀는 목소리가 크고,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 특유의 ‘선과 색’이 굵고 분명한 모습이다. 단아한 몸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랄까, 단단한 여유랄까, 오랜 세월 단련된 듯한 그녀만의 생기 있는 아우라를 느낄 때마다 그녀의 나이를 잊게 된다.


1958년생인 그녀가 단기 대학에서 전산 관련 공부 후 국내 굴지의 한 금융기업에 입사하던 때가 그녀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다. 이곳에서 임금인상 투쟁을 하던 중에 ‘80년 광주’와 고 박종철의 죽음을 알게 되고 80년대를 앓으며 활동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80년대 중반, 같이 입사한 남성 동료들의 임금이 6만 원 오를 때 자신을 비롯한 여성 동료들 임금은 겨우 2천 3백 원 인상되고 ‘여성’이라서 승급/승진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는 등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느끼긴 했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투쟁을 통한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집안 사정이 갑자기 나빠져 가족이 다함께 살던 집을 비워야 했을 때 ‘남성 가장’이 아니라서 전세금 대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고, 입사 때도 여성이라서 ‘결혼/출산 시 퇴사한다’는 서약서를 썼어야 하는 등 성차별의 부당함과 부조리를 겪으면서도 그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면서도 여성보다는 노동자에 방점을 찍었더랬다. 우선은 ‘노동해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사회 서적들을 꾸준히 읽어가며 계급 문제가 야기하는 모순에 관한 갑갑증과 갈증을 푸는 한편 앎을 삶으로 이어가기 위해 20대를 보낸 첫 직장과 작별하고 87년 6월 무렵부터 노동조합 조직 운동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서울 양평동에 있던 한 사업장에 현장 노동자로 취업, 프레스 밟는 일을 하던 중에 위장취업자로 해고된 후 다시 구로공단에 있는 사업장에 들어가 위원장을 하다가 노동쟁의조종법 위반으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이때, 노동조합 건설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노동(운동)에 정치가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출소 후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정당 건설에 참여하게 된 건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후 20년 가까이 정치조직 운동에 주력한다. 조직 활동 중에 다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던 40세 무렵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요가를 시작하고, 요가 강사를 하면서 건강관리와 밥벌이를 하는 한편 몸담고 있던 정당의 후보로 서울시의원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즈음, 당시 택시 사업장 활동가였던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고, 몇 해 후 결혼한다. 선거를 치르느라, 가난한 살림을 어렵사리 꾸려내느라, 조직 내 전선 갈등 문제 등과 맞닥뜨리며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버텨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도시가 우리를 방출하는구나!”의 심정이 되어 “먼저 ‘존재’해야 활동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 2009년, 인연이 닿게 된 이곳 전라도 장흥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 알게 된 이들과 농사 지으며 산 지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던 첫 해부터 1년간 학교 관사에서 지내다가 현재의 제각으로 옮겨 와 제각 안팎을 관리하며 7년째 살고 있다. 


여기까지가 20대 후반 무렵부터 30년 가까이 활동가로 살아온 그녀의 역사다. 살아오면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기도 했으나 활동가로서의 삶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현장과 거리와 감옥을 거침없이 오가는 ‘투사’의 길로 그녀를 이끈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운동이 좋았다. 새로웠고 재밌었으며 혼자 있는 것만큼이나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행복했다. 그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인생을 배웠다. “지배계급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노동자 민중이 노력한 만큼 살 수 있는 사회를 보는 것이 운동의 승리”이며, 이러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예전의 그녀를 앞장서서 움직이게 했던 그 운동은 ‘이즘ism’을 실천하느라 일상속의 자신을 지워야 했던 운동, 너무 바빠서 개인적인 삶을 건사할 수 없었던 활동방식이었으므로 예전에 비해 굉장히 ‘느리게’ 가려고 하는 중이다. “운동은 스스로 존엄함을 느끼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며, 서로를 가두는 견고한 벽으로 버티고 서 있는 ‘칸막이 현상’을 한국 운동권이 극복할 수 있어야 운동이 한발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해방은 ‘연결’의 문제이며, 하나의 정치를 통해서 다른 정치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운동권은 이 칸막이 현상이 강해서 ‘정치의 도미노’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지난 삶을 반추하며 이따금씩 나이 듦과 죽음에 관해 톺아보기도 한다.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인생의 여유랄까 휴식을 자신에게도 안겨주고 싶은 때가 온 것이다. 예순이라는 나이. 나이가 든다는 건 ‘내 몸이 내 몸이 아님’을 자각하고 세월이 갔음을 똑똑히 아는 일, 삐거덕거리는 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라고 했다. 정신과 마음은 젊은데 육신이 앞서 늙어가고 있으니 이 불일치가 주는 불편함이 있다며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중이라고도 했다. 필요에 의해 시작해 20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는 요가가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고 있는 듯했다. 요가에서는 물과 숨만으로 살아가는 단식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주대하는 훈련’으로 본다고 한다. 죽음을 체험해 보는 것, ‘미리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녀도 일주일간의 단식 후에 온몸의 감각이며 정신이 더없이 맑고 또렷해져 화초들이 나누는 얘기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삶을 비우고 애써 죽음 가까이 갔을 때 미세한 생명체의 오묘함을 더 잘 감지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자연으로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갈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며 어떻게 함께 사는 지기와 한날한시에 갈 수 있을지, 둘이 같은 날 세상을 뜨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도 했다. 


염세적이었다던 한 소녀가 평범한 노동자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로 살다가 뭇 생명체며 자연의 질서 앞에 겸손하게 머리 조아리는 존재로 나이 들어가는 동안 강산이 수 번 바뀌어갔을 것이다. 담담히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는 그녀의 초연함이 지난 세월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운동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켜 온 자의 강단 있는 여유와 지혜로움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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