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을 벗 삼고 스승 삼아

by 센터 posted Oct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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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한자어 ‘병病’은 ‘병/질병’이라는 의미를 비롯하여 ‘근심, 괴로워하다, 피곤하다, 어려워하다, 원망하다, 책망하다’라는 뜻을 두루 담고 있다. ‘병’이라는 말의 어원도 ‘말을 하기 힘듦’에 닿아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다’는 건 온몸 또는 몸의 일부가 아프다고 내지르는 소리 없는 비명을 말로 다 풀어내 들려주지 못하므로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피곤해하고 저 혹독하고 깊은 통증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에게 그러한 곤란함과 통증을 가져다 준 누군가 혹은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원망하게 되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랬다. 어릴 적부터 마르고 약했다. 쉬 지쳤다. 예민했으며 감정 변화도 심했다. 소화불능은 다반사였다. 무력한 위는 체증과 두통을 동시에 불러왔다. 부딪치고 마주하는 모든 존재며 일어나는 온갖 사건이 과도한 무게로 다가왔다. 걱정과 불안감이 일상을 지배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몸 여기저기가 아팠다. 병원을 자주 오갔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대 중반 무렵, 만성편도선염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을 받고 난 이후에도 몸은 계속해서 아팠다. 두통과 체증도 여전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이 되면 한 달이 넘게 감기를 앓았고, 이 또한 고질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즈음 ‘자연치유법’을 알게 되었다. 명상을 하는 한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 생식을 하는 등 이런저런 변화를 시도하며 지냈으나 몸 상태는 별반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2년, ‘자궁경부세포이형성증’이라는 낯설고 긴 이름의 병명이 그녀의 몸에 따라붙었다. 물론 병원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두면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여러 차례 수술을 권했으나 이미 자연치유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수술만은 피하고 싶었다. 병원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의료체계라는 것이 개개의 생명이 지니고 있는 존중 받을 몸의 권리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한지도 익히 알고 있었다.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로 나누어 경우의 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앞자리에 ‘암에 걸려 죽을 수 있다’가 놓였다. 언제 죽든 죽게 되는, 자신은 ‘죽는 존재’라는 생각과 죽을 수 있음을 선택하는 건 자신의 고유한 권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병원 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살 방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다른 음식물들을 끊다시피 하고 생식을 이어갔다. 체력은 점점 더 저하되었고 감기는 멎지 않았다. 11년 동안 지속해오던 교사 생활을 접었다. 그러던 중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선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무지, 번뇌, 집착이 몸의 병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과 답을 찾아야 했다. 마음공부와 명상을 통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내 몸의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 안에 “같은 몸에 살고 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는 아픔과 그리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궁을 비롯한 몸 이곳저곳이 병이라는 두드림을 통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둡고 한 맺힌 힘의 현현顯現인 병이 제발 자신을 돌아보라고 미움만 받아와서 억울하니 그만 좀 껴안아 달라고, 손을 좀 잡아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원망도 자책도 하지 않기로 했다. 병을 도반 삼기로 했다. 아프고 약한 기운들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이끌어주는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선원에서 만난 고귀한 이들이 나눠 준 지혜와 자비의 기운으로 자신 안의 억울하고 어두운 힘을 다독이며 살기로 하니 차츰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40년 가까이 더불어 살아온, 그녀가 알아온 자신의 마음이 ‘다르게’ 작동함을 느끼며 신기해했다. “이게 뭐지?” 궁금해서, 이 마음의 변화를 알기 위해 마음공부를 이어갔다. 이렇듯 선원과의 인연을 통해 치유의 기운을 몸 안에 부릴 수 있었다. 내려놓고 비우는 연습이 염려와 불안과 체증과 두통을 시나브로 밀어내주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마르고 약하고 자주 앓아눕는 몸만큼이나 그녀를 어둡고 힘들게 했던 것은 “왜 살아야 하나?”라는 마음의 질문이었다. 허무의 나락으로 무시로 빠져들게 하는 이 물음 앞에서 늘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죽을 수 있음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자 그녀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여 그 죽음을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사람은 너무도 당연하게 바로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새삼스러운 사실과 절절하게 마주한 순간 많은 것들이 또렷해졌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선원을 선택한 것도 이 마음의 소리에 따른 것이었다. 마음에 귀 기울이니 앓던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책망하고 원망하며 말을 하지 못하던 병이 말을 할 수 있도록 수년간 그녀 스스로 치유의 길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끈 덕분이었다.


자궁경부세포이형성증 진단을 받고 난 후 4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이 증상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몸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병원에 가서 다시 갖가지 검사란 걸 받으며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없다. 자신의 몸이 컨베이어 벨트 위 상품처럼 취급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동안 진즉 그만두기를 바랐던 교사 일을 정리하고 도시를 떠나 초등학생인 두 아이, 남편과 함께 귀농했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선원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정화’하는 한편 채식 위주로 식생활을 바꾸고 꾸준히 뜸도 뜨면서 몸과 마음이 원하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마음 맞는 지인들과 소소한 모임을 꾸리고 제도교육 교사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대안교육’ 관련 공부를 해오고 있다. 이제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자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전에는 가두고 억누르기 바빴던 답답하고 힘든 감정부터 밖으로 끄집어내어 그것들이 훨훨 날아가게 하고 싶단다. 글쓰기를 도구 삼아 몸과 마음과 감정에 깃들여 살던 병이라는 오랜 동무를 해방시키고 싶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진단을 받던 4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수 있다는 가정 앞에서 더 가벼워진 자신을 느낀다. 어찌 되든 ‘다 괜찮다’고 해야 하나. 몸도 마음도 과거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자유로운 지금이 참 좋다.


눈물을 비치기도 하면서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을 톺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그녀의 눈은 맑고 절실하며 솔직하게 빛났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현재를 살며 새로운 꿈꾸기로 충만한 그녀에게 병은 더 이상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책망하고 원망하고 침묵하게 하는 어둡기만 한 힘이 아니었다. 근심과 괴로움, 책망과 원망의 감정조차 ‘앓기’라는 몸과 마음의 일을 넘어서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벗이며 스승으로 삼기 위해 고투해 온 이의 간절함 깃든 지혜가 그녀를 일으켜 세워 왔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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