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이 된다는 것

by 센터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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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길날 농사짓는 사람



어느 책에선가 ‘자유(自由)’란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란 문구를 만난 적이 있다. 사유(思惟)가 일상인 저자의 자유에 대한 정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그때 떠올랐다가 흩어지려는 생각의 점들을 조직하여 사유의 바다에 이르는 방식을 통해 저자는 사람들과 소통 중인 듯했다. 아마도 그런 소통의 방식이 그에게는 ‘자유’를 일궈가는 통로가 되었을 것이다.


사유일 수도 있고 잡념이랄 수도 있고 그 경계 어디쯤에 걸쳐져 있기도 한, 그 내용과 깊이가 경우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내게는 그랬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청소년기, 청년기를 두루 ‘재밌게’ 보낸 후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선택한 농촌 생활은 그녀가 자진하여 ‘고립을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유아·유년기를 보낸 후 서울로 이사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까지 한 후 농촌으로 온 그녀는 귀농 8년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은 이곳에서 ‘어리버리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책과 도서관 관련 직장 생활을 통해 여러 농촌 지역을 오가면서    ‘서울을 떠나서도 살 수 있겠다, 농촌에서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 와중에 인연을 맺게 된 전라남도 장흥으로 8년 전쯤 지기(知己)와 함께 내려와 살고 있다. 환경이 생판 다른 이곳에 와 살면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심하게 자신을 옥죄어 오던 고립감과 결핍감을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겨낸 상태로 농사짓고 여전히 앓고 소소한 재미를 조직하며 살게 되었지만 아직도 무시로 어리둥절해하며 방황 중인 자신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그 강도가 예전에 비해 조금쯤은 약해졌음도 느낀다.


장흥으로 오기 직전 몸담았던 풀무학교(충남 홍성 소재) 전공부 1년 과정은 농촌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을 북돋았다. 정직하게 농사지으며 사는 삶의 정당성, ‘여성의 일’이라 낮게 평가된다고 믿었으므로 부정적으로 대해 왔던 밥 지어 먹는 일의 소중함도 그곳에서 새로이 배웠다. 여성이고 남성이고를 떠나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기 밥상을 스스로 차릴 수 있어야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스승들, 도반들과 더불어 논밭이며 도서관이며 생협 등지를 오가며 별다른 고립감이나 결핍감 없이 즐거이 한 해를 살았다. 그


러다가 귀농지로 택한 장흥에 들어와 본격적인 농촌생활을 하게 되면서 맨 먼저 큰 무게감으로 찾아든 것이 유감스럽게도 ‘병(病)’이라는 동무였다. 수십 년간 도시에 몸 담아온 ‘도시것’이 농촌에서 정착하여 살아가려니 몸이 먼저 힘들다며 앓아누웠다. A형 간염 진단을 받은 데다 우울증까지 겹치는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속 깊은 옆지기와 함께 이 상황을 이겨나가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각종 출판물이나 매스컴에서는 귀농한 여성들 대부분이 자족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떠들어댔지만 그녀에게는 머나먼 세계의 얘기 같았다. 귀농살이가 헤어날 길 없는 터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 생활을 접고 갈 곳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존 방식을 두고 당위와 욕구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맸다. 도시에 살면서 느꼈던 여성으로서의 정체감이 거주지가 바뀜으로써 급격하게 변화되는 괴리감도 컸다. 귀농인이라면 으레 ‘귀농남성’을 일컫기 마련인 듯했고, 귀농여성들은 투명집단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느꼈다. 낯선 행성에 내던져진 느낌이 이럴까. 도시에 비해 교통 환경이 티 나게 열악한 농촌에서 별다른 경제적 기반이 없는 여성인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통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도, 문화생활이나 공부에 대한 욕구가 있어도 무엇 하나 그때그때 채울 수가 없는 환경도 견디기 힘들었다. 몇 해를 끙끙 앓았다. 무엇보다 질병이 기력을 앗아갔다. 체념과 좌절, 갑갑함에 집 밖으로 걸어 나가 헤매 다니다 투항하는 기분으로 돌아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조차 저만치 밀쳐둔 채 그렇게 몇 해가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말과 눈빛이 통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주변에 귀농 귀촌한 이들이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으나 맘을 터놓을 수 있는 이웃이라야 한두 손가락 꼽을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 최근 일이 년 새 제법 늘어났고, 그녀들과 공부 모임을 꾸리면서 그야말로 ‘숨통이 트이는’ 게 어떤 건지 경험 중이다. 도시에 살 적부터 오랫동안 해왔으므로 이곳에 와서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던 공부와 글쓰기를 그녀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꾸준히 해 나갈 수 있었다. 정서나 관심사가 비슷한 그녀들이 전하고 나눠 준 위안과 치유의 기운과 힘으로 조금씩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갈 의욕을 얻을 수 있었다. 공간과 관계에 대한 결핍감을 채워주는 실험과 시도를 한두 가지씩 도모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기껍게 맺어져 이어지고 있는 이 관계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해방구 역할을 해오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 속에 있다. 그녀들과의 공부가 확장되면서 존재와 삶과 세계에 관해 더 알고 싶어 한 주에 한 차례씩 서울을 오가며 시작한 12주에 걸친 ‘의역학 공부 기초 및 심화 과정’도 얼마 전에 마쳤다. 이제 제법 “고립감에 압도되지 않고 사주(四柱)를 도구삼아 자신에 관해 이리저리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앞선 관계들과 이러한 공부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담담한 기분으로 이렇듯 자신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지혜를 습득 중이다. 고립이 결핍을, 결핍이 고립을 불러오던 지난날과 시나브로 이별 중인 것이다.


이야기 말미에 그녀는 지금과 같은 땅에 기반한 생태적인 삶으로 강하게 자신을 이끌었던 책들을 통해 마주한 얘기들이 활자들을 통해 이쪽 세계와 만나던 귀농 전인 그때는 자신의 ‘몸을 통과한’ 얘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앞으로도 농사지으며 농촌에 살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 현재 자신의 몸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힘겹게 통과하는 과정에 있으며, 이 과정이 지나면 귀농한 여성으로서 농사지으며 농촌에서 산다는 게 어떠한 것인지 더 잘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바라는 게 있다면 몸이 덜 아팠으면 하는 것과 심리적 안정을 이루는 것. 두 가지는 걸쳐져 있고 겹쳐 있는 문제로 보였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자신 안팎의 악재들과 고투하며 이제 터널의 끝에 다다른 듯도 보이는 그녀가 담담히 터널 밖으로 걸어 나갈 날을 손꼽아 본다. ‘자기의 이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더 적극적으로 일상을 조직해 나가길 바란다. 농사짓는 삶이 전하는 지혜를 통해 주변의 지인들과 더불어 온전한 몸의 평화를 일궈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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