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어야 할 코로나19 이후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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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코로나19 사태의 세계사적 의미


코로나19 사태는 기존의 바이러스 팬데믹과는 다른 차원의 역사적 사건으로서 14세기 유럽의 흑사병과 비유될 수 있다. 비록 사상자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만, 이후 정치, 경제, 문화, 생활 방식의 변화 전반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14세기 흑사병과 마찬가지로 기존 삶의 방식이 종식을 고하고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지금 코로나 사태를 ‘세상의 종말’이라고 받아들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20세기 대공황과 세계대전처럼 한 세기를 대표할 만한 역사적 사건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평가되겠지만, 1930년대 대공황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1930년대에는 금융위기-산업 공황-실업-사회 위기-정치 위기-국제적 위기로, 즉 금융에서 터진 위기가 줄줄이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는 순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는 금융과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시스템과 국제 질서에까지 동시에 영향을 주는 전면적이고 파상적인 형태의 위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금 여러 사회 세력들이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코로나19 피해를 빨리 극복하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기, 둘째, 코로나19가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고 그 변화에서 경제적 기회 찾기, 셋째, 코로나19 경고에 주목해서 현 체제를 성찰하고 새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국가들의 대응은 대체로 첫째 수준이고, 거기에 둘째를 섞는 수준이다. 첫째는 가능하지 않고 둘째도 불가능하거나 오로지 부분적으로만 가능하다고 본다. 아래에 설명하듯이 코로나 사태로 지난 40년간 지구적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중요한 구조적 장치들이 근본적으로 무너지거나 변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서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전제로 이루어지는 예측 모델이라는 것이 작동할 수 없고,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불확실성uncertainty이 지배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고 바람직한 대처 방식은 세 번째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현재의 인간 집단이 어떤 성찰에 근거하여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 나갈지는 스스로의 결단이 유일하게 확실한 요소이며, 이것이 확실해질수록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역설적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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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체제와 삶의 방식에 주는 구체적인 경고


1980년대 이후 40년간 작동해온 지구적 문명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나타난 몇 가지 조건들이 합쳐진 것이었다. 첫째, 지구화. 전 세계 산업은 이른바 가치사슬 형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둘째, 도시화. 단순히 도시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거대도시들끼리 지구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었고, 지방 주민들도 거대도시와의 연관 속에서만 삶이 가능해졌다. 셋째, 금융화. 경제와 산업, 나아가 사회 전체 조직과 질서는 금융 시장에서의 가격 등락으로 결정된다. 그 전제로서 금융 시장은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넷째, 인간 서식지 팽창. 특히 90년대 이후로 자본 축적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어떤 것도 무한히 이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제도화되면서 지구 환경에 대한 인간 활동의 충격이 극대화되었다. 


코로나 사태는 이 네 가지의 ‘메가트렌드’ 모두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 식량 위기나 각국의 공장 이전 등에서 보듯 지구적 가치사슬은 상당한 재편을 겪게 되며 키신저가 말하는 ‘성곽도시’의 세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단위 면적에서 최대한의 수익성을 뽑아내는 기존 도시화 모델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으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금융 시장과 금융기관 어디에서도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고 각종 자산 가치를 산정할 수 있는 모델과 데이터를 가진 곳은 없으며, 당분간 금융과 재정은 대단히 변칙적인 국가 주도 논리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생태적 위기는 호주 산불과 기후 위기에서 보듯 이미 시작된 상태이며 코로나 사태는 그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인과율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위기들이 줄지어 벌어질 것이며 산업 활동의 지구적 팽창에 대해서는 분명한 한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코로나19 이후의 변화


첫째,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적 방역’이다. ‘곡선 평탄화flattening curve’ 개념을 옮겨온 것으로 질병뿐만 아니라 실업이나 각종 사회적 위기로 인해 삶이 무너지는 이들의 숫자가 사회 조직의 ‘수용 능력carrying capacities’을 압도하는 일이 없도록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가장 취약한 이들을 찾아내어 사회적 지원 역량을 집중하고, 이를 통해 시간을 벌어 이후 보건, 노동시장, 사회정책 등 보다 중장기적인 사회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둘째, 사회의 산업과 경제의 조직을 오로지 시장 기구에만 맡겨야 한다는 기존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를 뺀 대부분의 산업 국가들은 균형재정 등의 운영 준칙을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재정 운영 원리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일자리 창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경제의 3% 정도 재정 순투입으로 모든 이들에게 최저임금 일자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장치이다. 이는 시장 경제를 부인하거나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장 원리에만 산업 조직을 맡겨야만 한다는 지난 40년간의 시장근본주의적 경제 원리의 극복일 뿐이다. 


셋째, 기존의 지구화/도시화의 방법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무한히 성장하는 국제 무역과 지구적 경제란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또 이를 전제로 한없이 공간을 집약화하는 기존의 도시화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수출과 부동산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경제 모델을 운영해온 대한민국에는 큰 함의점을 가진다. 


넷째, 훨씬 포용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민주주의가 나타나야 한다. 이번에 유럽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 비해 단점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책임 회피와 우유부단함으로 볼 때 기존의 무능력한 민주주의 체제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은 맞지만, 이렇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사태를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로마의 독재관 임기가 6개월에 불과했음을 기억하라. 지금과 같이 예측하기 힘든 각종 사회적 생태적 위기가 상시화된다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과 정서를 더 많이 공유하고 합칠 수 있게 하는 포용적인 민주주의가 훨씬 효과적이다. 무능력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이면서 유능한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다섯째,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무한한 욕망의 긍정’이라는 원리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 위기보다 더욱 근본에 있는 것은 기후 위기를 위시한 각종 생태 위기이다. 이는 기술적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가 자신들의 욕망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할 때, 즉 ‘욕망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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