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기다림 끝에 모습 드러낸 전태일기념관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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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전태일기념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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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열린 전태일기념관 개관식(@전태일기념관)


2019년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05번지에서는 아침부터 풍물패의 힘찬 울림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각양각색 사람들이 반갑게 손을 잡으며 모여 들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개관식이 있는 날이다. 전태일의 친구들, 가족들, 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종교운동, 민주화운동을 했던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수많은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격이 넘쳐흘렀다. 49년 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청계천에 다시 울려 퍼진 것이다. 전태일기념관을 세우려 했던 열망은 38년 전부터 모였다.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해산되고 이소선 어머니를 비롯한 핵심 간부들이 구속된 상황에서 1981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11주기 추도식이 비장함 속에 열렸다. 여기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절망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조직으로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를 구상했고 12월 14일 발족했다. 그러나 기념관을 세운다기보다는 구속, 수배자를 지원하고 탄압을 이겨내기 위한 연대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 2003년에도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 청계천 인근 미공병단 자리에 전태일 기념공원을 만들고, 그 안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태일재단은 2015년 45주기 추모행사를 하면서 50주기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25주기에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제작했고, 35주기에는 전태일다리에 동상을 세우고 다리 주변에 동판을 설치했다. 40주기에는 ‘전태일다리’ 선포식을 했다. 반세기가 되는 50주년은 지난 5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50년을 시작하는 행사를 기획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몇 가지 중요한 사업을 구상했는데 그중 하나가 전태일기념관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못 이룬 기념관 건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재단이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지만 돈이 없고, 성금을 모아도 1, 2억이면 모를까 몇 십억 원이 넘어가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현실 가능한 방법은 국회를 움직이는 것과 서울시에 요구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박원순 시장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자 박원순 시장이 바로 호응했다. “지금까지 전태일기념관이 없었느냐”며 적극 나섰다. 전태일 동지가 일했던 평화시장 삼일사나 한미사의 매입을 알아보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있었던 평화시장 옥상에 증축하는 방안도 제시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예산 확보가 중요해 2015년 국회에 지역특별예산을 신청했고, 2016년에는 기념관 타당성 연구용역이 진행되었다. 서울시의회도 적극 나서 6월 의회에서 기념관 건립 예산이 대폭 증액되어 통과되었고, 가을에 현재 건물을 매입하기로 확정했다. 2017년 부지 매입과 함께 8월에는 서울시장과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각계 전문가 15명으로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기념관 리모델링 설계를 완료했다. 이 설계를 바탕으로 2018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해 1년여 만에 현재의 멋진 기념관이 태어난 것이다. 


전태일재단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재단과 기념관 성격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토론을 이어나갔다. 재단은 전태일 동지와 이소선 어머니가 중심축이므로 축소되거나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다. 취약한 재정을 보강해나가고 추모제와 전태일 평전 출판, 노동상, 문학상 같은 기본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45주기부터 전태일 동지의 풀빵나눔정신을 확장시키기 위해 시작된 장학사업과,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사회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회 활동가 지원사업, 이주 노동자 지원사업, 추모단체 지원 등 풀빵나눔사업을 지속하며 학생과 노동조합을 위한 노동인권교육도 재단 중심으로 더욱 활발히 벌여나가기로 했다.


그렇다면 재단과 달리 기념관은 어떤 방향으로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 기념관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와 다양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전태일 동지의 투쟁과 헌신, 분신항거 정신과 함께 고난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희망의 정신을 알려내며, 사람을 사랑했던 삶과 철학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건물과 시설 분위기를 무겁지 않고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전태일 동지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바라던 세상, 꿈은 무엇이었을까? 기념관을 이용하는 주요 대상을 노동과 청년, 학생으로 하고,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태일의 사랑, 연대, 행동을 주제로 잡았다. 


전태일재단은 기념관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시키기 보다는 비워놓고 점차 채워나가기로 했다. 전시와 교육, 문화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모시고 문화예술자문위원회, 교재영상자문회의, 노동역사자문회의를 통해 내용을 만들었다. 건축 과정에도 전태일 동지와 가장 가까운 청계피복노동조합과 70년대 노동운동 선배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20여 회에 거쳐 건립 과정을 설명하고 조언과 자문을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념관 주요 고객이 될 서울 시민들 반응과 참여가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시민들이 함께하는 과정을 밟았다. 예를 들어 기념관 이름을 지을 때 시민공모전을 열자 1,300여 명이 참여했다. 전문가 심사를 거쳐 9개 명칭을 1차 선정하고, 시민선호도조사로 여론조사를 해 최종 결정하는 과정을 밟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이 선정됐다. 


그리고 지난 3월 20일 임시로 문을 열었고, 개관 축하 초청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 ‘태일피복’전도 좋은 평가 속에 열리고 있다. 학생과 노동조합 등의 교육과 전시실 방문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제 문을 열었는데도 하루 평균 1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  


전태일기념관은 서울시에서 노동복합시설로 설계했다. (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위탁 운영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5층에 입주했고, 4층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소규모 노동단체에게 사무 공간을 제공하는 ‘노동허브’ 사업을 하고 있다. 7월이면 7개 단체가 입주해 한식구가 될 것이다. 


이제 기념관을 개관해 아직 부족하고 개선할 것이 많다. 현재 비어있는 1층 로비는 특별전시장으로 활용해 ‘의문사 진상규명 30년 사진전’과 ‘한국노총 통일사진전’을 시범 실시했으며 전태일기념관부터 전태일다리까지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전태일거리도 조성할 계획이다. 극도로 이기적인 사회에서 미래가 없는, 희망을 찾지 못하는 이 시대 청년과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만나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기념관에 오면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고 함께 살고자 했던 전태일 동지의 꿈과 연대와 나눔의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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