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엄마들이 나섰다

by 센터 posted Ap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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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2018년 12월 27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을 제쳐두고 ‘유치원 3법’을 신속처리안건(일명,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들은 당초 민주당이 발의한 안이 아니라 바른미래당이 내놓은 중재안으로, 사립유치원에 투입되는 국고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변경하여 유치원 회계 비리에 횡령죄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조항은 빠져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이사장)가 교비 회계로 벤츠, 루이뷔통, 콘돔, 술 등 교육과 무관한 재화를 구입했을 때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으려면 오는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유아교육법을 개정해야 한다. 내 딸 두리가 유치원에 다니는 2021년 말까지는 법을 개정하겠다고 ‘정치하는 엄마’는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국회 안에 있건, 밖에 있건 나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이고, ‘정치는 육아의 최전선(신임 공동대표 인터뷰에서 따온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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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열린 비리 유치원·어린이집 명단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 기자회견(@정치하는엄마들)


2018년 10월 11일,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3년간 교육청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고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가 이를 단독보도하면서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함께 분노해주신 덕분에 올해부터 사립유치원도 국가 관리 온라인회계시스템(에듀파인)을 사용하게 되었고(원아 수 200인 이상 대형 유치원은 올해부터, 2020년에는 모든 사립유치원에서 의무 사용), 온라인 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를 사용하는 사립유치원도 지난해 2.8퍼센트에서 올해 60퍼센트로 급증하는 등 현장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에듀파인’이 도입됨으로써 적어도 유치원 회계장부에 벤츠, 루이뷔통, 성인용품, 술 등을 구입한 영수증을 버젓이 첨부할 수는 없게 되니 큰 변화라면 큰 변화다. 그러나 교비 회계로 대형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을 샀다면? 매달 수백만 원을 숲 체험시설 이용료로 송금했다면? 텔레비전이 유치원 교육실에 걸려있는지, 이사장 안방에 걸려있는지 현장 감사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한 달에 몇 번이나 숲 체험을 했는지, 숲 체험장은 정말 ‘체험’이 가능한 장소인지 아니면 덤불이 우거진 야산인지 가서 눈으로 확인해야 된다. 매년 2조 원의 국가 재정이 사립유치원에 투입되는 만큼 에듀파인 도입은 아주 초보적인 조치였다. 지금까지 사립유치원 회계자료를 작성·보고하는 규칙을 마련하지 않고, 수기 관리하도록 사실상 방치한 교육부의 직무유기를 탓할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사립유치원 소유자들의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는 에듀파인에 대해 재산권 침해니 사유재산 몰수니 하는 억지 주장과 가짜뉴스를 퍼트렸고, 자유한국당은 이를 거들고 나섰다. 물론 한유총의 주장들이 조금의 애매한 구석도 없이 완전 억지스러웠기 때문에 한유총에 대한 언론 보도와 여론은 점점 악화되었고, 지난 3월 4일 집단휴원으로 비난여론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의 설립취소 절차를 밟아 나갔고, 22일 취소 여부를 결정·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니 꿈만 같은 얘기다. 4월 22일은 정치하는엄마들이 2년 전 첫 모임을 한 날짜이기도 하다.


엄마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엄마들이 해내다니···. 내가 활동하는 ‘정치하는엄마들’은 2017년 6월 창립해 위에 장황하게 설명한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촉발시켰고 아마도 이 문제를 가지고 끝까지 싸울 비영리시민단체이다. 나는 19대 국회에서 민주당 비례의원으로 일했고 임기는 2012년 6월부터 2016년 5월이었는데, 임기 중인 2015년 2월에 두리엄마가 되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의 임신·출산·육아를 정치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엄마가 되는 과정은 매순간 부조리의 연속이었고 나는 당사자의 정치, 엄마의 정치를 강하게 열망하게 되었다. 아기엄마 국회의원 한 사람이 있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20대 총선에서 낙선(당내 경선에서 낙선)하여 두리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꿈꾸던 엄마들의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진짜 새옹지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말 나는 기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만약 20대 국회에 들어갔더라면 이 싸움을 (박용진 의원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았겠냐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이건 박용진 의원이 한 일도 아니고, 장하나 의원이라도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이건 과장도 억지도 아니다. 내가 《비정규노동》 독자 분들께 말하고 싶은 건 단 하나, 바로 ‘당사자 정치’다. 


대한민국 엄마들을 둘러싼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엄마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하는 엄마들’이 필요하다고 확신한 이유는 ‘고학력 부유층 중년 남성’이 우리 국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 83퍼센트가 남성 국회의원이고, 평균 연령은 55.5세에 평균 재산은 53억이다(참고로 출신 학교는 서울대 81명, 고려대 38명, 성균관대 27명, 연세대 23명 순).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아이 키우는 엄마·아빠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 힘들다. 내가 50억을 가진 50대 남성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그들도 마찬가지다. 그걸 그들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진보적인 또는 착한’ 고학력 부유층 중년 남성을 찾을 게 아니라, 저학력(?) 저소득층 청년 여성 정치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라는 오디션을 통과한 특출한 ‘개인’으로서 정치권력을 사유화하여 자기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00들의 대변자’로서 특정 부류의 (예측 가능한) 정치적 요구를 담아내는 도구로서 활동해야 한다. 정당다운 정당이 없는 것도 문제고, 정당다운 정당에서도 아줌마=엄마와 같은 존재들은 권력에서 배제되고 있기에 우리는 당사자 정치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2017년 2월, 즉 박근혜 정권 말미에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전국적으로 1백여 곳의 유치원·어린이집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보도자료에는 지난해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때 비로소 알려진 온갖 비리 수법과 상상을 뛰어넘는 비리 액수가 적혀 있었다. 100곳 중 95곳이 감사 적발되었고, 유치원은 55곳 중 54곳이 적발되었는데 평균 적발 금액은 3억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다. 정치하는엄마들말고는. 우리는 비리 유치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비리를 저질러도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알 수 없다면 비리는 재생산될 것이다. 비리 유치원 이름을 비공개할 때 이득을 보는 건 비리 유치원 밖에 없는데 대체 왜 감추는 것인가? 납득할 수가 없어서 엄마들은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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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유치원 관련 집회에 참석한 아빠와 딸(@정치하는엄마들)


엄마들은 난생 처음 정보공개청구를 해보고(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엄마들이 이제는 정보공개청구를 즐겨함), 전국 177개 교육지원청으로부터 받은 답변서를 함께 정리했다. 상근활동가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은 전국 각지에 사는 엄마들이 구글 문서와 텔레그램을 이용해서 협업했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는 다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일하는 방법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공무원들로부터 “대체 누군데 비리 유치원 이름을 묻는 거냐?”는 식의 무례한 전화를 받는 불쾌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지애는 저절로 돈독해졌다. 그 결과 전남 지역 22개 교육지원청 등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교육지원청은 177곳 중 28개소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며 비리 유치원 이름을 숨겼다. 100퍼센트 전부 비공개였다면 모를까, 공개하는 교육청도 있고 위법이라는 교육청도 있으니 어떤 엄마가 이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엄마들은 2018년 5월에 행정소송을 하고 기자회견을 했고 MBC에 제보했는데 정치부 기자가 박용진 의원실을 통해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을 입수하고 국정감사 때 폭로한 것이다. 2018년 10월 27일 교육부가 지난 5년간 유치원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향후 공개 원칙을 세웠으나 소송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교육부가 밝힌 명단에도 ‘수사 또는 재판 중인 유치원 명단’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판사에게 말했다. 사립유치원이 감사를 거부하거나, 비위사실이 위중할 경우 교육청이 수사를 의뢰하고 재판으로 이어지는데, 수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이 과정 동안 학부모들이 몰라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판사는 어렵지 않게 수긍했지만 판결이 날 때까지는 일 년이 족히 걸렸다.


지난 정기국회와 12월 임시국회 때 유치원 3법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난항을 겪었는데, 우리는 25일 연속으로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들과 각 당 원내대표들에게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수백 명의 회원들이 동참했고 통화 내용과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같이 웃고 같이 분노했다. 처음에는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과 통화하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러웠지만 한 달 동안 조금씩 단단해졌고 함께할 때 우리는 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5일 인천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엄마들이 승소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미 수사 및 재판 중인 유치원 명단을 제출하여 사실상 백기를 든 상태였다. 공무원들이 법대로만 했으면 엄마들은 노력과 시간,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겠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당사자 정치에 대한 확신을 얻었으니 지난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승소했기에 인천시교육청과 국무조정실로부터 소송비용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돈으로 ‘스쿨미투 관련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의 소’를 제기하기로 했다. 이런 정치를 우리 말고 누가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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