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거부 운동이 낸 작은 틈새

by 센터 posted Mar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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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병역 거부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 거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인권 운동


한국에서 병역 거부는 처음에는 인권 문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국가가 침해한다는 것이죠. 이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1년이었는데, 그 당시 감옥에 있는 병역 거부자가 1,600명 정도였고, 병역 거부로 감옥살이를 한 병역 거부자는 모두 1만 명에 달했으니까요. 이들 대부분은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이었습니다. 남자라면 꼭 군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사주의 문화, 여호와의증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일체의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여호와의증인 특유의 방식 때문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었는데도 사회적으로는 조용했던 것이죠.


병역거부자의 날.jpg

2015년 5월, 세계병역거부자의날 자전거 행진(@전쟁없는세상)


병역 거부가 인권의 문제라는 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입니다. 유엔은 회원국들에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합니다. 한국 정부는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가두는 문제로 늘 권고 받는 대상이 됩니다. 유럽의 경우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병역 거부권 인정입니다. 국제사회에선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는 진보와 보수가 모두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인권인 거죠. 특히 한국은 가장 많은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인권 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례가 있는데요, 병역 거부자 중 한 명이 유럽에서 초청을 받아 한국 병역 거부 운동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청중 가운데 한 명이 그 병역 거부자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근데 너 사우스 코리아에서 온 거 맞냐. 노스 코리아에서 온거 아니냐? 삼성이 있는 그 나라 맞냐? 근데 어떻게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병역 거부,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 운동


하지만 병역 거부는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평화 운동입니다. 역사적으로 병역 거부가 가장 활발하게 대중적으로 일었던 시기가 두 번 있었습니다. 가깝게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때입니다. 권투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이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치며 병역 거부를 했습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 중에서도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고 난 뒤 문제의식을갖고 탈영을 한 병역 거부자들도 있습니다. 또 한 번의 대중적인 병역 거부 운동은 그보다 훨씬 먼저인 1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이 일으킨 식민지 획득 전쟁 때 전쟁 반대 운동으로 병역 거부를한 그룹은 크게 두 그룹이었습니다. 퀘이커와 메노나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주의자 그룹과, 전쟁은 부자들 배만 부르게 하고 노동자들을 희생시킨다고 생각했던 노동자 그룹이 그들입니다.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도 이들처럼 전쟁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으로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를 읽어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견서 내용에도 유행(?) 같은 게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에는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 씨의 죽음이 주된 병역 거부 이유로 소견서에 담겨 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으로 오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과정에서 보여준 국가와 군대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 병역 거부로 이어집니다. 2009년 이후로는 용산 참사 당시 국가 공권력의 모습과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을 무참히 때려잡는 경찰특공대가 이들을 병역 거부로 이끌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나오는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에는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며 국가의 역할과 안보의 의미를 묻는 내용이 담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대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사실 병역 거부자들은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며, 우리 삶에서 한 그룹은 크게 두 그룹이었습니다. 퀘이커와 메노나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주의자 그룹과, 전쟁은 부자들 배만 부르게 하고 노동자들을 희생시킨다고 생각했던 노동자 그룹이 그들입니다.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도 이들처럼 전쟁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으로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를 읽어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견서 내용에도 유행(?) 같은 게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에는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 씨의 죽음이 주된 병역 거부 이유로 소견서에 담겨 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으로 오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과정에서 보여준 국가와 군대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 병역 거부로 이어집니다. 2009년 이후로는 용산 참사 당시 국가 공권력의 모습과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을 무참히 때려잡는 경찰특공대가 이들을 병역 거부로 이끌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나오는 병역 거부자들의 소견서에는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며 국가의 역할과 안보의 의미를 묻는 내용이 담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대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사실 병역 거부자들은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며, 우리 삶에서 국가안보란 대체 무엇입니까?


기자회견.jpg

작년 대통령 선거 후, 국정자문기획위원회 앞에서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합리적인 대체복무제도 원칙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전쟁없는세상)


전쟁없는세상이 병역 거부 운동을 하는 까닭


지금까지 ‘병역 거부 운동이 무엇이다’에 대해 설명했는데요. 사실 이 설명은 저의 견해에 불과합니다. 병역 거부자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이들의 병역 거부는 서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병역 거부자 개개인이 스스로 부여한 의미는 더욱 다를 것이고, 사회적인 의미 또한 똑같지는 않습니다. 병역 거부자 중 한 명인 제가 모든 병역 거부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할 자격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병역 거부 운동을 가장 오랫동안 열심히 해온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로서 전쟁없는세상이 생각하는 병역 거부 운동은 과연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지, 우리가 병역 거부 운동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병역 거부 운동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사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전쟁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시민불복종입니다. 병역 거부를 좁게 보자면 단순히 징집을 거부하는 것만이 병역 거부가 되겠지만, 현대의 전쟁은 군대만 가지고 치를 수 없습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물자 생산을 거부하는 노동자들, 전쟁을 지원하는 역할 수행을 거부하는 공무원들 (전쟁세를 따로 걷는 국가의 경우) 전쟁세 납부를 거부하는 시민들 모두 넓은 의미에서는 전쟁을 거부하는 병역 거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병역 거부 운동은 결국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혹은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 전쟁 참여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거나 전쟁 수행이 어렵도록 방해하는 평화운동입니다. 


물론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이 병역 거부 같은 시민불복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승인하는 국회를 압박하는 대규모 거리 집회를 조직하거나 참여할 수도 있고, 전쟁으로 이득을 취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전쟁 수혜 기업을 찾아내서 그들의 정체를 까발리고 그들이 전쟁으로 이득을 취하는 행위에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들과 함께할 때 병역 거부는 시너지를 내면서 더욱더 효과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겁쟁이기 때문에 폭력을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가장 많이 듣는 비판 중 하나가, 바로 ‘비겁한 겁쟁이’입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기피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 비판에 절반만 동의합니다. 저희는 비겁하지 않습니다.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고 떳떳하게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갑니다. 비록 현행법으로는 전과자가 되지만 우리의 신념과 행위가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인류에 대한 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겁쟁이가 맞습니다. 겁쟁이이기 때문에 폭력을 두려워하고 전쟁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쟁처럼 폭력이 극대화된 시공간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가장 큰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부하들 예컨대 일반 사병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과 공포는 죽고 싶지 않다는 자기애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생겨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없다면, 인간은 죽는 것뿐만 아니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겁쟁이가 되는 것이야 말로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자각을 소중히 간직하고, 인간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들에 저항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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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박람회 아덱스 행사장. 전 세계에서 전쟁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무기 회사 록히드 마틴 부스 앞에서 살인무기 거래 반대 캠페인(@전쟁없는세상)


병역 거부가 던진 질문들, 평화를 위한 첫걸음


평화와 인권 두 가지 측면에서 병역 거부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이 중 인권적인 측면, 병역 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지 않고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대체복무제도 도입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미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부작용이나 악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생각지도 않은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웃 나라 대만은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했는데, 군 당국이 젊은이들을 대체복무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알아서 개혁을 하기 시작해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군대 내 사병들의 처우와 인권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직자들은 대체복무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어쨌든 대체복무제도는 멀지 않은 미래에 도입될 거 같습니다. 문제는 어떤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느냐입니다. 어떤 대체복무제도를 만들어야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 안보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북한을 이길 수 있을지, 군사 전략과 작전에 대해서는 엄청난 재원과 인력을 들여 연구하고 연습하지만,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평화이고, 또 그 평화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병역 거부자들이 던진 질문들 -강한 군사력만이 우리를 평화롭게 하는지, 오히려 강한 군사력을 추구하는 것이 군사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군사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더 가난해지는 것은 누구이고 더 부유해지는 것은 누구인지, 군사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어떤 언어로 이야기하고 상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게 평화를 위한 노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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