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와 선거제도

by 센터 posted Feb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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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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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퇴진관악행동 주최로 열린 ‘선거제도 개혁 토론회’에 함께한 참석자들.(@비례민주주의연대)


왜 선거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중요한가?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권이 있었다. 마거릿 대처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12년 동안 집권하며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영화를 추진하며 자본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12년 동안 집권하고 나서 퇴임한 1990년 영국의 아동 중 28퍼센트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다. 대처의 보수당 정부 집권 시기 동안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1979년 0.25에서 1990년 0.34로 악화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단 한 번도 선거에서 50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역구에서 1등을 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영국의 지역구 1위대표제(소선거구제) 선거제도 덕분에 보수당은 40퍼센트 대만 득표하고도 늘 과반수 이상 의석을 획득했고, 이것은 영국의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이런 영국 사례는 선거제도가 노동자들의 삶에, 그리고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소한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였다면, 대처가 집권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삶을 악화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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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20세기 초반 보통선거권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역구 1위 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들이 있었고,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이 있었다. 전자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영국, 미국, 캐나다 같은 국가들이었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들이었다.


1백 년이 지난 지금, 두 선거제도 가운데 어느 선거제도가 더 나은 제도인지는 이미 판가름이 났다. 지역구 1위 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영국, 캐나다 등의 국가가 그렇다. 캐나다에서는 현 총리가 2015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이 지역구 1위 대표제로 바꾸려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왜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더 민주적인 제도라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정치라는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는 정당이 만들어져도, 지역구 1위 대표제 국가에서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 같은 국가에서도 ‘노동당’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을 대표하겠다는 정당이 만들어졌지만, 지역구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을 희석화 시키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진보적 성향의 정당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라졌거나 미미한 영향력만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국회는 철저하게 거대 양당(공화당, 민주당)으로 채워져 있다. 반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에서는 사회민주당, 좌파당 같은 정당이 비교적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 8월 노동자대투쟁의 결과 일정한 진전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끊임없이 그 성과들이 위협받고 후퇴해 왔다. 국회 구성을 보면, 거대 기득권 정당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은 국회에 들어가도 원내교섭단체조차 꾸릴 수 없었다. 만약 10퍼센트 득표를 하면 300석 중 30석을 보장받는 선거제도였다면, 한국의 진보정당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과거 10퍼센트 이상 득표율을 보였던 민주노동당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의 정치적 대표성이 이렇게 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대의민주주의로만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참여민주주의와 ‘거리의 정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를 하는 이상, 선거제도가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노동 운동이 주장해야 할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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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일 국회 정문 앞에서 했던 ‘선거법개혁공동행동’ 기자회견.(@비례민주주의연대)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거듭하면 국회 구성은 점점 더 기득권화된다. 실제로 지금 20대 국회는 매우 획일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50대 이상, 그리고 남성이 대부분이다. 20대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고, 30대 국회의원도 세 명뿐이다. 여성 비율은 17퍼센트에 불과해, 세계평균인 23퍼센트보다도 더 낮다. 계급·계층 대표성도 약하다. 대한민국 국회에 농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한 명뿐이다. 1천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국회 안에서 찾기 어렵다. 영세자영업자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도 없다.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장애인을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도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거대정당에 들어가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이 41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구성된 국회에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에 서는 정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결국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선거제도는 거대한 정치기득권을 낳게 되고, 그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패 없고 삶의 질이 높은 국가들을 보라


어떤 선거제도를 택하느냐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삶의 질이 높고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2015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1~7등까지 한 국가들을 보더라도 덴마크(1위), 핀란드(2위), 스웨덴(3위), 뉴질랜드(4위), 네덜란드(5위), 노르웨이(공동5위), 스위스(7위)이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면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형성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 없는 국가인 덴마크는 13개나 되는 원내 정당이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정당이 얻을 수 있는 최고 득표율 수준은 3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특정한 정당이 독주를 하거나, 특정한 정치인이 권력을 마구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최고 권력자인 총리라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의 협력이 없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숙주가 되는 ‘박근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예방법’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노동과 선거제도의 연관관계


선거제도는 노동자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몇 가지 지표들만 살펴보더라도, 노동과 선거제도 간의 연관 관계는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노조 조직률은 감소 추세에 있지만, 국가별로 편차는 크게 나타난다. 여전히 노조 조직률이 50퍼센트를 넘는 국가도 있다. 예를 들면, 덴마크 66.8퍼센트(2013년), 스웨덴 67.3퍼센트(2014년), 핀란드 69퍼센트(2013년), 벨기에 55.1퍼센트(2013년), 아이슬란드 86.4퍼센트(2014년), 노르웨이 52.1퍼센트(2013년) 처럼 노조 조직률이 높은 국가들도 있다. 이런 국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나라의 정치가 노동 친화적인 정치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당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회 내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들(대표적으로 사회민주당 같은)이 존재하고, 이 정당들이 국회 내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지표들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연간 노동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를 꼽는다면, 2015년 기준으로 독일  1,371시간, 네덜란드 1,419시간, 노르웨이 1,424시간, 덴마크 1,457시간이다. 이 나라들은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25.1퍼센트(2012년 기준)로, OECD 평균 16.3퍼센트를 훨씬 웃도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우리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은 국가는 25.3퍼센트를 기록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표적인 소선거구제 국가로,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 반면에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벨기에로 3.4퍼센트에 불과하다(2015년 기준). 벨기에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가이다.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 차이가 제일 적은 나라도 벨기에였다.


대체로 소선거구제 국가에서는 자연스럽게 양당제 구조가 형성되고(뒤베르제의 법칙), 거대 양당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소극적이고 자본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형성되고,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력한 정당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입장이 현실 정책으로 입안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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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노동자·농민의 정치개혁 방향과 제도개선 과제’ 토론회.(@비례민주주의연대)


대한민국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어떻게?


선거제도 개혁은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을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시기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반대하면 어려운데, 지금은 국회 안에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없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2015년 2월, 독일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라는 의견을 냈다. 중앙선관위가 이런 의견을 냈기 때문에 보수 세력도 개혁에 반대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노동계,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이 출범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함께 만 18세 선거권과 유권자 표현의 자유 확대,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를 공동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선거제도 개혁은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그래서 바꾸려면 지금 바꿔야 한다.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은 대선 후보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한다.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설득과 압박을 해 나갈 것이다.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운영 중에 있지만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구조 개편은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국의 사례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선 선거제도 개혁, 후 개헌’의 과정을 밟도록 요구해야 한다. 개헌 내용도 권력구조 개편만이 아니라, 직접·참여민주주의 확대, 지방분권 등의 내용이 담기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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