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무해한 화학제품은 없다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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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나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TF 팀장, 19대 국회의원



1천여 명의 죽음을 부른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신고자가 지난 11월 30일 기준 5,226명으로 늘었고, 이 중 사망자는 1,092명(20.9퍼센트)에 달한다. 2012년 9월, 국회 토론회 당시 피해 사례 178명 중 사망자 53명이라는 수치 앞에서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제 피해 규모는 30배 가까이 늘었고 사망자는 1천 명을 넘어섰다. 즉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안방의 세월호’ 사건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2011년 5월, 원인미상 폐질환으로 산모와 영유아가 연쇄 사망하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의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라는 생활 화학제품이 원인미상 폐질환의 발병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당시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사건은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이후 언론도 여론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올해 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뒤늦은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일어났다. 5,226명의 피해 신고자 가운데 3,944명은 올해 4월 이후 신고했으니 사실 사건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2백만 촛불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듯, 대중의 뜨거운 관심이 결국 가해기업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국회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국정 조사 특위를 구성했고, 정부는 지난달 비로소 ‘생활 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은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즉 가습기 살균제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과 죽음은 아직도 정당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2백만의 촛불은 단지 박근혜 퇴진만을 위해 타오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다른 세상, 다음 세상, 나은 세상, 지옥이 아닌 사람의 세상을 향한 열망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정부의 사과로서만 매듭지어질 수 있다. 그리고 정부의 사과를 통해서만이 우리의 삶도 달라질 수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가해 기업과 피해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화학 물질 관리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할 국가가 그 의무를 완전히 방기한 사건이었고 그 피해자는 국민 전체라고 봐야 옳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제대로 해결됐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가해 기업으로부터 얼마의 보상금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나의 삶이 변화했을 때 비로소 인정해야 할 일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람들은 그리고 나 역시도 정부로부터 필요한 유해 화학 물질 정보를 제공 받은 적이 없다. 언론을 통해서, 에스앤에스SNS를 통해서, 카톡방을 통해서 가습기 살균제 주요 성분이 들어간 물티슈, 치약,  화장품 등이 시판되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리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나 환경부는 그제서야 논란이 된 제품들을 판매 중단시키고 회수 조치한다.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가습기 살균제 국정 조사를 통해 생활 화학제품 관리 체계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관리 체계가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19대 국회 임기 4년간 환경부를 상대로 유해 화학 물질 관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싸워왔는데 나의 노력은 헛수고에 가깝다는 사실을 임기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20대 국회는 가습기 살균제 국정 조사를 실시했고, 나는 전문가 위원으로 조그만 역할을 했다. 사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와 제대로 싸워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화학 물질은 경부가 관리하고 화학제품은 산업부가 관리하는 시스템 하에서 아무리 물질 관리를 강화한들, 산업부가 제품 관리를 안 하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사건은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산업부는 심지어 KC마크를 부여할 때 해당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업체에 확인하지도 않는다. 산업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단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천착해 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산업부는 기업이 하라는 대로 일하고, 환경부는 산업부가 하라는 대로만 일한다. 경제 권력이 행정 권력과 일을 도모할 때, 국회의 일부는 거기에 동조하고 반대하는 일부 의원은 여론의 지지와 관심 없이는 뜻을 관철하지 못한다. 언론 또한 경제 권력에 복속하기 때문에 여론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일부 국회의원은 무기력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9월,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19대 국회가 (부족한 수준으로) 강화한 ‘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에관한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대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2014년 3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규제는 암덩어리이고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말했다. ‘박근혜 게이트’로 드러난 경제 권력과 행정 권력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주고 받기)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이고,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이다.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초미세먼지의 원인이고, 아토피·비염·천식·자폐 등 환경질환의 원인이다. 박근혜 게이트의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자녀, 미래세대다. 나는 사실 박근혜나 최순실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박근혜와 최순실이 어떤 관계였는지 관심이 영 없는 편이다. 나는 전경련과 청와대의 ‘거래명세서’에 꽂혀 있다. 다행히 99퍼센트는 박근혜 퇴진으로 정경 유착 관행이 청산될 거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내 삶을 바꾸는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생활 화학제품 관리 시작하겠다는 정부


지난 11월에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규명된 지 만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생활 화학제품 안전 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와 불매 운동 등의 외부조건이 아니었으면 피해 대책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도 수립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쨌든 추진 방향 및 비전에 ‘생활 화학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딴지를 걸 수밖에 없다. 생활 화학제품 사고로 1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함에 있어 유해 화학 물질이 들어간 모든 제품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그렸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생활 화학제품과 산업용 화학제품을 굳이 분리해서 이제 생활 화학제품 관리를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소비자로서의 국민과 노동자로서의 국민은 하나다. 치약과 샴푸와 화장품은 안심하고 쓰지만, 일터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누가 이 대책을 진일보라고 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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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나서부터 세탁세제를 따로 구입하지 않고,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로 빨래를 한다. 이름표가 없는 통은 구연산이 들어있는데, 섬유유연제로 쓴다. 빨래에서 인공 향이 나지 않는 게 처음에는 어색한데, 이제는 각종 화학제품의 강한 향이 죄다 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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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소다·구연산·물을 섞으면 부글부글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이것으로 씽크대와 가스렌지의 기름때, 도마의 찌든 때를 닦으면 전용세제만큼 잘 닦인다. 아기 젖꼭지나 아기 빨대, 텀블러 뚜껑 등 수세미로 잘 닦이지 않는 등 플라스틱 제품을 담아두면 때와 냄새가 빠지고 정균 효과도 있다. 


생활 화학제품 중독에서 벗어나야


필자는 지난 7월부터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TF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생활 속 유해 화학 물질에 대한 글을 의뢰받았고 마무리는 제대로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독자여러분에게 생활 화학제품 사용을 최소화하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굳이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 이외의 주제로 전선을 흐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나는 (생활) 화학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생활) 화학제품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다.


생활 화학제품의 종류와 용도는 다양해지고 기능은 더해지고, 여러 가지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분화되고 있다. 심지어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은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추세다. 세계 최장의 노동 시간으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사 노동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생활 화학제품에 의존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단언컨대 인체에 무해한 화학제품은 없다.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무해한 것도 아니며, 화학 물질의 칵테일 효과(복합사용에 따른 영향)는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규제 대상이 아니다. 외투에 냄새가 배었을 때, 만약 자는 동안 통풍이 되는 곳에 걸어 놓을 수 있다면 섬유탈취제를 뿌리지 않기를 권한다.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과탄산소다를 구비하면 세탁세제와 부엌의 기름때, 각종 찌든 때, 욕실 청소용 세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 천연비누로 세수, 목욕, 샴푸를 대신하고 헤어린스 대신에 구연산 녹인 물을 쓰면 된다. 치약대신 죽염을 사용하거나, 설페이트류 계면활성제·파라벤·향료·불소·타르색소 등 무첨가된 치약을 구매하면 좋다. 물티슈 대신 건티슈(면 100퍼센트로 필요할 때 정수된 물에 적셔 쓰는 제품)를 쓰고, 일회용 기저귀 대신 천기저귀, 일회용 생리대 대신 대안 생리대를 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9월 경향신문이 창간 70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독한 사회-생활 화학제품의 역습-일회용 컵·물비누 안 쓰니 ‘환경호르몬’ 5분의 1로 줄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꼭 검색하여 읽어볼 것을 당부 드린다. 경향신문과 서울대·을지대·한양대 연구진은 올해 8월, 20~50대 남녀 7명에게 4박 5일간 ‘생활 환경 유해 물질 노출 회피실험’을 실시했고, 단 5일 만에 참가자들의 소변에서 검출된 환경 호르몬의 양이 5분의 1로 줄었다는 놀랍고도 반가운 기사다. 인체에 영향이 적은 제품은 환경에 대한 영향도 적게 마련이다. 그리고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 두말 하면 잔소리, 이제 실천하는 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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