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도 함께하는 노동운동

by 센터 posted Oct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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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성소수자들은 일상에서 수많은 차별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일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적인 발언을 듣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또한 성별이 구분된 화장실이나 탈의실은 트렌스젠더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고민과 갈등에 시달리도록 하며, 부양가족이 있는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가족 수당은 게이, 레즈비언 커플들을 배제하고 있다. 커밍아웃이나 아웃팅 이후에, 심지어는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비자발적 퇴사를 당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일터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사례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노동 운동은 노동 현장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보다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 운동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것은 전체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표상을 획득하고 확장해나가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 적어도 필자의 체감 상으로는, 노동 운동과 성소수자의 만남은 갈 길이 멀다. 앞으로 이 문제를 놓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행동에 나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판단을 전제로, 이 글에서는 노동 운동이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차별에 가장 단호하게 맞서는 운동 중 하나로 거듭날 수 있기 위해, 2016년 한국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혹은 이미 시도되고 있는 몇 가지 방안들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성소수자를 노동 운동 주체로 세우기


당사자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모든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자신이 일터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드러내고, 이를 철폐하기 위한 실천을 벌여나갈 수 있도록 하는 주체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단위 사업장 노조, 지역본부, 산별연맹, 또는 총연맹 차원으로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모임을 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혹은 노동조합 자체적으로 성소수자 모임을 꾸리는 것이 어렵다면 노동조합 바깥에 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자발적 모임의 실제 사례로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구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을 참고해볼 수 있다. 2012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5년째 진행되고 있는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에서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모여 각자가 일터에서 겪은 차별 경험을 공유하는 한편, 2016년에는 노동조합 혹은 노동 운동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올해는 《전태일 평전》을 함께 읽고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하는 기획을 시도하는 등 성소수자들과 노동 운동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기 위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집회.jpg

2016년 노동절 대회에서 성소수자 노동권 요구를 알리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회원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미조직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포괄하기 위한 전략


이처럼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은 차별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기층의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내지는 노동 운동의 필요성을 설득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실제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퍼센트 남짓한 수준이며, 전체 노동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할 때 시정은커녕 문제제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운동이 계급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성소수자를 포함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너르게 포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는 사회적 캠페인 및 이슈파이팅을 통한 의제 선점이다. 최저 임금 투쟁을 비롯하여 노동조합 차원의 이슈파이팅이 사회 전반에 걸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었던 사례는 이미 국내·외에 차고 넘친다. 지난 8월에는 생과일주스 프랜차이즈인 쥬시 가맹점 중 하나가 ‘외모에 자신 있는 분만 지원하라’는 채용 공고를 올려 문제가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기자 회견, 피켓팅, 본사 면담 등의 이슈파이팅을 통해 해당 가맹점 점주와 본사 차원의 사과를 받아낸 적이 있다. 이러한 사례를 일터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적용한다면 성소수자 차별이 유독 심각한 특정 기업을 집중 타격한다거나 모든 기업에서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이나 개별 탈의실을 설치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 및 상급단체가 성소수자를 위한 노동 상담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미 지역 노동단체에서, 혹은 민주노총에서 지역본부 차원으로 수행하고 있는 상담 업무를 강화하고 체계화하여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전문적인 상담 역량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총연맹 차원에서 성소수자 운동 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일터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각종 차별과 불이익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인력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소수자 문제와 노동 운동의 전망


노동 운동이 성소수자 노동자들 문제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투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앞서 제시한 방안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안팎의 다양한 주체들 사이에 활발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필자는 노동 운동과 성소수자의 만남을 위한 논의들이 앞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하며,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난 10월 6일,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 금융부문 노조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자본과 정부는 늘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등 다양한 차원에서 노동자들을 분할시켜 전체 노동 운동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전략에 맞서 노동 운동이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만들어가는 것은 언제나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이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이주 노동자와 정주 노동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은 노동 운동의 장기적 전망과 결부된 문제이며, 노동 운동 안팎에서 관련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뚝심 있게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의 운동 세력에 필요한 리더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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