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지우는 ‘손배가압류’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조합원 모두 미안합니다. 저 너무 힘들어 죽을 랍니다. 제가 죽으면 꼭 정규직 들어가서 편히 사세요. 현대에게 이기세요.” 1)


2014년 11월 6일 새벽,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동료들에게 위와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는 사건 보름 전, 현대자동차가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하 손배소)에서 ‘70억 원을 현대차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출범 후 처음 발생한 손해 배상 소송 선고는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청구한 70억 원 손배소 건이다. 2014년은 쟁의 행의를 한 노동자에 대한 손해 배상 및 가압류의 심각성을 두고 사회적 관심이 정점에 이른 해다. 노동3권에 보장된 쟁의 행위로 인해 경제적 압박을 받고 목숨을 버리는 일만큼은 막아보자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시작해 ‘노란봉투캠페인’을 이끌었다. ‘손잡고’도 같은 시기 법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한 사회적 기구로 출범했다. 이같이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음에도 재판에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법원은 회사가 청구한 금액 70억 원을 그대로 판결했다.


자살 기도한 조합원은, 다행히 동료들이 빠르게 발견해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현대자동차가 2010년 파업 건으로 노동자에게 청구한 손해 배상은 70억 원 건을 포함해 총 7건이었고, 청구 대상은 466명(최초 청구 대상 기준)이나 되었으며, 총 금액은 213억 5천만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살 기도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같은 지회 조합원으로부터 절박함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저희는 돈도 없어서 손배 항소(상고)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 3일 90억 손배소 판결이 부산고법에서 있습니다. 이걸 어찌 연기시켜야 할까요. 우리를 도와줄 분들은 없을까요. 두렵습니다. 어제와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 같아서요.” 2)


‘돈이 없어서 항소를 포기’한다는 건 소송비용을 말했다. 213억 5천만 원의 선고액에 대해 항소하기 위해 내야하는 법정수수료인 인지대만 해도 ‘억 원’대에 이른다. 이 ‘억’ 소리 나는 인지대를 선고 후 보름 안에 지불해야 항소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막상 손해 배상 선고를 앞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선고가 미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대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어디 갔을까. 2010년 파업에 무엇이 노동자들을 두려움과 절망으로 내몰았을까?    


불법파견에 대한 비정규직 쟁의 행위는 ‘불법’?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손해 배상 청구는 사용자가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데  ‘손배소’를 어떻게 악용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차는 제조업이고, 제조업에서 파견업체를 두고 사용하는 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같은 해 11월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는 울산공장을 25일 동안 점거해 ‘불법파견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단체 소송에 참여했다. 3년이라는 시간을 견뎌 2014년 9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 승소해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을 일궈냈다. 법원은 ‘불법파견’을 법적으로 인정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다. 밀린 임금도 모두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2013년 현대자동차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사내하청 노동자 단 한 명에 대해서만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2014년 9월 판결로 모두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싹텄다. 소송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말이다.  


그러나 2014년 10월, 법원은 ‘희망’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었다. 불법파견을 인정한 후 한 달 뒤에 진행된, 2010년 파업에 대한 70억 원에 대한 손배소 선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 자체가 ‘불법’이 됐다. 법원은 ‘현대차와 파업을 한 노동자들이 직접 근로 계약 관계에 있지 않아 단체 교섭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쟁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3) 또한 당시 공장 점거 파업이 미리 신고된 파업이 아니라며 절차도 문제 삼았다. 이 역시도 판결에서는 당시 공장 점거는 사내하청 폐쇄로 인한 해고 위기, 경비들에 의한 폭력이 이유가 되었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문제는 2010년 파업이 ‘불법’이라면 이후 다른 판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2010년 파업에 대해서는 7건, 총 213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손배소가 걸려있다.  회사는 이점을 노동자를 압박하는 데 노골적으로 이용했다.


경계-현대차.jpg

2014년 11월 27일 현대차비정규직투쟁 공동대책위원회 ‘노조 탈퇴 강요하는 현대차 부당노동행위 고소 기자회견’(@손잡고)


“현대차는 손해를 배상받을 생각이 없었다”


“18명에게 청구된 90억 원 손배소 건을 예로 들어볼게요. 현대차가 주장한 것처럼 하청 노동자 평균 연봉이 5천만 원을 받는다고 쳐요. 그래도 90억은 18명의 노동자가 10년을 아무것도 쓰지 않고 모아야만 갚을 수 있는 돈이에요. 현실적으로 갚는 것이 불가능한 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청구하고 있어요. 얼마 전 현대가 10조 넘는 돈을 들여 부지를 매입했다죠. 그런 현대가 정말 이 돈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청구한 걸까요?” 4)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묻는다. “현대차는 받아내기도 어려운 돈을 왜 청구할까?” 하는 질문에 현대차는 행동으로 응답했다. 70억 판결 이후 현대차는 손배소 대상자들에게 “노동조합을 탈퇴하면 손배소 취하해주겠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포기하면 손배소에서 제외시켜주겠다”며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실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신규채용에 합의’한 조합원에 대해서는 손배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지회에 따르면 70억 원에 대한 선고 직후 손배 대상자 323명 가운데 135명이 사측의 종용으로 소를 취하했고, 134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70억 원 손해 배상 판결은 사측에게 정규직 전환의 불씨를 꺼뜨릴 ‘기회’가 된 셈이다. 


2014년 11월 꾸려진 현대차비정규직투쟁공동대책위원회는 “현대자동차가 손배소의 소취하를 빌미로 노동조합 탈퇴를 요구하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의 소취하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며 정몽구 대표이사를 부당노동행위 위반으로 고소했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조 탈퇴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취하를 하면 손배소송을 취하해주겠다고 했을 때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현대차의 손해 배상 청구에 대해 “결국 손배 목적이 조합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것과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취하, 노동조합 활동과 정당한 재판 청구권을 봉쇄하는 용도 등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아무리 손배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더라도 다른 부당한 목적으로 남용되면 소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 말했다.


손배가압류 대상자에게 ‘권리’는 없다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손배소는 노동자들의 투쟁 목적인 ‘정당한 권리’도, 사용자가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도 효과적으로 지워버린다. 민주노조 보장, 정규직 전환, 원직 복직, 노동 환경 개선, 임금 등 처우 개선, 차별 반대 등 어떤 목적도 손배소가 제기되는 순간 ‘포기’ 대상이 된다. 수십억 손배 폭탄이 주는 경제적 압박 앞에서 진행되는 사측의 회유는 겉으로는 노동자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같지만, 손해 배상 대상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당하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법적 권리마저 ‘선택’의 범위에 넣도록 강요받는다. 사실상 ‘포기’를 강요한다. 이 ‘선택’에는 이미 ‘노동권’은 물론 ‘인권’마저 없다. 손배소가 21세기 야만인 이유다.


노동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린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노동조합을 포기하는 것은 그동안 지켜오고 주장해왔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한다. 조건이 ‘손배소’이기에 어떤 이는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권리’를 포기했다는 데 대한 자책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일부 신규 채용된 조합원은 “그동안 지지해주셔서 고맙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끝까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선택하는 것도 고된 선택이다. 말 그대로 수백억 원의 배상액을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불법파견임을 인정받고도 정규직 전환을 정당히 보장받지 못한 현실에서 갚을 수도 없는 수십억의 손배 청구 금액은 ‘억울함’과 ‘절망’이 된다.


손배소가 노동3권을 침해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례는 다른 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측이 요구하는 손배소 취하 조건은 ‘노동조합 탈퇴’는 기본이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해고 무효 소송이나 임금 체불 소송 등이 걸려있는 노동 현장은 여지없이 소취하를 주고받는 방식의 회유와 협박을 받는다. 심각한 곳은 ‘퇴사’를 요구한다.


“시간도 힘없는 노동자의 편이 아닙니다.”


생탁막걸리 노동자들은 ‘근로 기준법 개선,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2년이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1억 2천 5백만 원의 손배소를 청구했다. 그러나 민주노조에 소속된 노동자 대부분 정년에 가깝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간싸움이 되어버렸다. 촉탁계약직 노동자들은 계약 기간과 정년 시기를 넘겼고, 복직 대상자는 이제 세 명만이 남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해고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 승계, 복직을 요구하는 기간은 사실상 수입이 없을 것으로 각오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버텨내기 어렵다. 더구나 손배소는 청구 금액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라도 일단 소가 제기되면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가압류의 경우 공탁금만 걸면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바로 집행된다. 최근엔 전월세 임차보증금까지 가압류된 사례도 있었다. 반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은 몇 백만 원에서 많아봐야 2천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사용자보다 가진 게 없고, 손배가압류로 경제적 타격까지 입은 노동자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최대한 소장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가장 최근 손배소 소장을 받게 된 동양시멘트지부 노동자들은 임시방편만 늘었다고 헛웃음을 짓는다. 회사는 위장도급 판정을 받고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금만 내며 시간을 끌고 있다.


“기온이 30도를 넘고 요즘처럼 더운 날에도 창문을 못 열어요. 창문이 조금만 열려있으면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송장을 창문 틈새로 던져 넣고 가요. 송장을 최대한 늦게 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이것도 재판을 조금이라도 미뤄보려는 임시방편이죠. 어쩌다 집에 있던 가족이 모르고 받기라도 한 집은 서로 미안해하죠. 미안할 일은 아닌데.”


경계-동양시멘트.jpg

2016년 3월 22일 ‘위장도급 분쇄! 정규직 전환 쟁취! 동양시멘트 투쟁승리 400일 공동행동 선포 기자 회견’(@손잡고)


손배소가 정당한 권리를 다 지우기 전에


더욱이 정부가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한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법과 차별을 마음 놓고 실행할 것이다. 불법과 차별에 저항하면 손배 폭탄이 당연한 수순처럼 따라 붙는다.

결국 입법이 답이다. ‘노란봉투캠페인’ 기금을 디딤돌로 만든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은 아쉽게도 19대 국회에 입법되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다. ‘손잡고’는 하반기부터 20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입법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8월 20일 예비법조인들과 서울대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노동법 모의법정 경연대회’를 여는 등 캠페인 활동도 계획되어 있다(www.son-abgo.org).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지기까지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계속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언제고 판결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시민들이 ‘손잡고’와 함께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길 바란다. 

------------------------------------------------------------------------------

1)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공개한 조합원의 유서. 2014. 11. 6

2) 손잡고 운영위원에게 온 조합원 문자메시지. 2014. 11. 7

3) [2014.10.04 한겨레] ‘손배 소송의 천국’ 한국은 이상한 후진국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58239.html

4) 손잡고 노동현장간담회 기록 중. 2014. 11. 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