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유감

by 센터 posted Ap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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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센터 이사,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감기 기운으로 병원에 갔다. 진찰하던 의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님의 증세는···” 나는 “저 어머니 아닌데요.”라고 응수했다. 의사는 매우 당황하며 “아. 네”라는 짧은 신음을 냈다. 나는 그 의사를 낳은 일도 기른 일도 없다. 그가 나를 호명할 이름은 환자나 고객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적절한 호칭은 그것이다. 그 의사가 나를 어머니라고 호명한 것은 한국 사회가 갖는 익숙한 존칭의 비겁한 습관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 여성을 부르는 최고의 존칭은 어머니이다. 그것은 여성의 공적 지위를 삭제하고 폄훼하여 사적 공간에 가두는 익숙하고도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다.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원을 나가면 청년들이 찾아와 청소 노동자들을 어머니로 호명한다. “어머니, 힘내세요.” 뉴스 헤드라인도, 현수막도 청소 노동자를 늘 어머니로 호명한다. 관리자들은 청소 노동자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여사는 결혼한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모두 사적 관계에서의 호칭이며 동시에 결혼과 출산을 가정한 이름이다. 청소 노동자들은 여사님이 되었다가 낳지도 기르지도 않은 이들의 어머님이 된다. 공적인 노동을 하지만 사적인 호칭으로만 불린다. 식당을 가면 또 어떤가. 세상의 이모님이 다 거기 계시다. 어머니의 자매님들은 모두 식당에서 일하신다. 청소 노동자도, 식당 서비스 노동자도 자신을 호명하는 정확한 이름이 없다. 이름은 없으나 존칭은 써 주고 싶을 때 우리는 사적 호칭에서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이름을 빌려오고 친근감과 존중의 표상으로 이해된다. 사회는 그렇게 여성들에게 공적 영역을 포기하고 사적 영역에 머무를 것을 종용한다.     


기본적으로 여성은 공적인 일을 하는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종은 그 노동을 지칭하는 정확한 이름이 없고, 호명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청소 노동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노동이다. 우리가 청결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청소 노동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 노동은 감추어진 그림자 노동이다. 다른 노동자들이 일하기 전 새벽에 출근해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일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은 그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불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공적인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채 사적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  


간호사들은 이와는 다르게 간호사라는 직업적 명칭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종종 아가씨로 불린다. 간호사들이 간호사로 불리지 않고 아가씨로 불리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 않다. 발화자는 간호사가 가진 전문적 지식과 경험의 권위를 깎아 내리기 위해 아가씨로 호명한다. 나이가 어린 생물학적 여성은 손쉬운 하대의 대상이다. 상대방이 가진 직업적 권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부리고 싶을 때 간호사를 아가씨라고 부른다.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런 호칭은 필연적으로 반말을 부른다. 상대방을 하대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하대의 언어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여성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차별은 다양한데 그 중 기본은 부적절한 호칭과 반말이다. 엄연히 직책이 있지만 직책으로 불리지 않고 아가씨나 아줌마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아가씨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숨어 있다. 아가씨로 불리는 이는 친절할 것과 아름다울 것을 기본값으로 요구 당한다. “아가씨가 화사해야지.”, “아가씨가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지.” 등 남다른 기본값을 당연한 듯 요구당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대상으로서의 존재라는 가정도 포함한다.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의 위치는 언제든성적 대상으로서 소비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아줌마는 무시와 불인정의 아이콘이다. “아줌마가 뭘 알아.”, “아줌마라서 저래.” 등 아줌마는 언제나 부정적 술어를 동반한다. 대체로 여성들에게 쓰이는 말들은 주어를 사람으로 바꾸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화사해야지, 사람이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지, 사람이 뭘 알아, 사람이라서 저래 등의 말은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이것으로 결국 여성에게 쓰이는 술어는 사회의 기본값인 사람에게 쓰이는 술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입사동기이지만 여성에겐 반말을, 남성에겐 존댓말을 쓰는 경우도 흔하게 겪는다. 무심코 넘겼지만 어느 순간 자신과 남자 동기가 다른 존재로 취급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분노할 수밖에 없지만 조직의 신입 노동자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많지 않다. 반말은 쉽게 폭언이 되고 성희롱으로 이어진다. 


여성노동자회는 2004년 가사 노동자들의 조직인 전국가정관리사협회를 만들었다. 가사 노동자들은 가정부, 혹은 파출부로 불리다가 최근에는 가사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조직의 출범과 동시에 가사 노동자들을 가정관리사라고 불러달라는 운동을 하고 있다. 가정부나 파출부는 직업적 호명이 아니고 가사도우미는 노동자로서의 주체성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고객들은 가사 노동자들을 그저 ‘아줌마’로 불렀다. 가사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가정관리사 OOO입니다.”라고 소개하고 관리사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할 것을 연습했다. 스스로를 가정관리사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을 때 고객들의 응대가 달라졌다. 아줌마 뒤에 따라 나오는 것은 반말이었고, 관리사님이라는 호명 뒤에 나오는 것은 존댓말이었다. 


말은 관계와 존재를 드러내는 바로미터다. 남성들은 투쟁하지 않아도 획득할 수 있는 인정과 존중을 여성들은 힘겨운 투쟁을 거쳐야만 쟁취할 수 있다. 여성의 노동은 존재의 인정부터가 투쟁의 연속이다. 그 노동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 정확한 명칭으로 호명하는 일, 그 명칭을 정착시키는 일, 반말을 금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힘겨운 과정이다.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나 인격적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관습, 그 뒤에 숨은 거대한 가부장제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노동자로서 자리 잡는 것은 제대로 된 직업적 호칭과 직책을 획득하고 존댓말을 획득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사소한 일로 보이지만 기본적인 존중을 다지는 일이다. 여성 노동자 문제는 이렇듯 끊임없이 기본부터 체크해보아야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당신은 누군가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가? 그 이름에는 존중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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