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조 조직화, 최저임금, 사회적 대화

by 센터 posted Feb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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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센터 상임활동가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와 사회적 대화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가 명료하게 결정되지 못한 채 끝나는 바람에 사회적 대화 전망도 더욱 미궁에 빠졌다. 촛불항쟁이 마련한 노동 문제 개선의 호기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법인데 가장 목말라해야 할 민주노조 운동이 우물을 도외시하니 답답하다. 설사 기대에 못 미치는 수질을 가진 우물이더라도 떠먹어보고 뱉어내면 그만인 것을 청정한 1급수만 고집하다 물 근처에도 못 가게 생겼다. 그나마 양대노총에 소속된 노조 조합원들이야 스스로 작은 우물이라도 파서 자신의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지만, 보호막 구실을 해야 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조건에서 노조 밖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난민 신세다. 사회적 대화에 목맬 필요야 없지만 현 시점에서 그 중요성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물론 최선의 정답은 있다. 노조 조직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상당 기간 2퍼센트 내외에 머무르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면, 한국 사회의 최우선 선결과제로 대두된 불평등 양극화 문제 해소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고,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논란도 줄어들면서 정상적인 방식으로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참담하게 목숨을 잃은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 씨 어머님의 절절한 호소처럼 노동자들이 노조로 가입해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워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주성과 단결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노조 운동이라면 더욱 비정규 노동자 노조 조직률 제고에 온힘을 다해야 한다.


노조 조직화 성패를 가름하는 변수


하지만 헌법기본권이기도 한 노조 조직화가 갖는 중요성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노정된 실천적 한계도 분명하게 짚어봐야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화두가 된 공공부문이거나 민간부문의 대기업 계열과 연관된 비정규 노동자들 중심의 조직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영역이다 보니, 압도적 다수의 비정규직·청년·여성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그림의 떡으로 전락했고, 도리 없이 부조리한 노동 현실 속에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터에서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만 노조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힘겨운 일이다. 학교비정규직 조직화 등 주요 사례에서 사용자가 노조에 친화적이거나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정규직 민주노조의 지원과 연대가 있을 때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가 상당한 규모로 성과를 내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현실을 고려한다면 일반시민과 사용자들이 노조에 대해 갖는 잘못된 선입견과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부분 부당한 차별과 착취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민간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무릅쓰고 노조를 만들자고 나서긴 참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사회여론의 지지는 노조 조직화 성패를 가름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터져 나온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일거에 민주노조 조직화가 이뤄진 것처럼 제2의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전략적인 기획과 실행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여전히 재벌 자본의 힘의 우위가 지속되는 사회적 조건에서는 장기적/중기적 전략에 기반한 노동빈곤층 노조 조직률 배가와 친노동 사회여론화 작업이 중요하다. 그 경로 중 하나가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성사와 진전이다. 


1천만 명이 넘는 다종다양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미 하나가 아니다. 처지가 다른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선 양동작전을 펼쳐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고 조직화가 성과 있게 진전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비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준법 수준에서 일상적으로 보호할 방도를 게을리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정규 당사자 투쟁과 조직화가 사회적 대화 진전 속에서 이뤄질 때 사회적 차원에서 이전과 다른 수준의 투쟁과 교섭도 병행할 수 있고 조직화 확대가 가속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조직률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한계와 제약이 있겠지만, 지금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정부의 노동 정책 우경화를 막고 압도적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익 개선을 위한 길을 열어가는 게 급선무다.


최저임금과 사회적 대화


당장 최저임금 전선도 사회적 대화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어 잘 넘어서야 한다. 노정협력의 대표적 의제로 기대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번 사회적 대화에 악재가 돼온 최저임금 문제가 올해도 연초부터 뜨거운 감자가 됐다. 작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서부터 주휴수당 논란을 거쳐 이번엔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로 번졌다. 특히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를 강행한 문재인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최저임금 문제가 이렇게 악화된 근본 원인도 따져봐야 한다. 이만한 우여곡절을 겪고도 근본 대책을 수립해 실행하지 않고 개별 현안에만 매몰돼 똑같은 양상으로 노사정 갈등만 확대 재생산된다면 가장 힘없는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만 고통을 전가 받게 되기 때문이다.


복기해보자. 2018년과 2019년 두 해 연속 두 자리 수 인상률로 오른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긍정 효과보다 부정 효과 여론이 압도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사회 건설과 소득주도성장 공약의 대표적 마중물로 각광받았던 최저임금 인상이 어쩌다 죄인이 돼버린 걸까. 수구보수 언론과 기득권층의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대중선동 때문일까. 물론 그런 점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자영업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된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높은 임대료와 고율의 프랜차이즈 수수료, 원하청 불공정거래 및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등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조건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 선순환 효과가 퇴색해버렸고, 소상공인단체 중심으로 최저임금 불복종운동이 확대되면서 을들끼리의 이전투구가 격화돼 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주휴수당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기본급을  최소로 하고 수당과 상여금, 성과급 중심의 기형적인 구조로 된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임금체계 구조에선 온갖 꼼수와 편법이 횡행할 수밖에 없어 최저임금 인상 효과도 제대로 측정하기 힘들다. 노사가 모두 동의하는 기본급 중심의 정상 임금체계가 확립되면 산입범위와 주휴수당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설적으로 이 모든 논란과 갈등으로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이면서도 임금 교섭권이 박탈된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을들의 연대 실현


결국 최저임금 인상의 선순환 효과가 담보돼야 빠른 시일 내 1만 원 달성도 가능하고 을들의 연대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근본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주휴수당, 그리고 한 자리 수 인상률로 끌어내리기 위한 꼼수로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결정구조 이원화 강행 등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현안으로 계속 소모적 논란이 불거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힘없는 을들 간 대립만 심화되는 결과만 반복된다.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주는 대표적 사용자인 영세자영업자는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다. 재벌 중심 양극화 경제구조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바로 과실을 독식해온 재벌대기업 집단이므로 공동피해자인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는 손 맞잡아야 마땅하다. 사회적 대화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계층별 대표들이 들어가 있는 만큼 을들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여러 수준의 대책을 협의하고 사회적 합의 수준에서 내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시비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적폐세력 활로가 돼선 안 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유일하게 작동해온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를 살리고 중앙 사회적 대회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제 몫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불의한 권력자를 응징하고 불평등 양극화 사회 극복을 선결과제로 제시한 촛불항쟁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대화는 한 궤다. 촛불항쟁에 주요세력으로 함께한 민주노조 운동이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무겁게 받아 안고 사회적 대화에 임해야 한다. 올해 그 첫 번째 시금석이 최저임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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