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별 분리 처리해야 할 노동법 개정안

by 센터 posted Feb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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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대 센터 이사,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



20대 국회가 개원한지 8개월이 지났지만 주요 노동 관련 법률안 중 국회에서 가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2017년 2월 8일 현재 환경노동위원회 소관 법률안 중 국회에서 가결된 법률은 총 21건인데 그 중 노동 관련 법률안은 8개이다. 그러나 이 법률안들은 모두 노동 행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거나 지극히 당위적인 권리관계를 규율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은 현재까지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개혁 5대 입법안’ 통과 어려운가


지금 2월 임시국회가 개회되어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의미 있는 법률안이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야 간의 인식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체적인 심사가 이뤄지고 있는 법률안은 발견되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고용노동부가 사활을 걸다시피 한 이른바 ‘노동개혁 5대 입법안’ 중 큰 논란을 야기했던 기간제법과 파견제법을 제외한 세 가지 법률안, 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은 조만간 통과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그에 대해서도 이견이 제기되어 위 법률안들도 조만간 통과될 것 같지는 않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노동개혁 5대 입법’은 사실상 좌초되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 뻔했던 기간제법과 파견제법이 저지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잘된 일만은 아니다. 위 두 법률안을 제외한 나머지 세 법률안에는 노동자의 삶에 유용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고 위 두 법률안에도 일부나마 유용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법률안을 논의할 때 법률안 단위로 논쟁을 하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조문별로 논쟁하고 조문별로 합의해 나가도 된다. 실제로 특정 조항들은 여야 간에 이견이 있지 않다. 그런 조항들 중 다수는 노동자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여당과 고용노동부는 그 조항들을 분리하여 통과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조항들과 함께 묶어 놓은 채 그 조항들의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법률안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법률별 주요 쟁점만 알고 있고 위와 같은 실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있다. 이에 위 ‘5대 입법안’ 중 노동자에게 유용하여 우선적으로 통과되어야 하는 조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자에게 유용한 5대 입법안 조항은?


먼저, 기간제법과 파견제법에 들어 있는,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기간제근로자와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제한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본격 제기된 내용으로서 노동계가 나서서 통과를 주장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세월호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근로형태를 분석해 보니 정규직 노동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점이 참사의 규모를 키우는데 한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반성이 일었다. 이에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기간제근로자와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제한하고 대신 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주장이 힘을 얻어 정부가 주도하는 입법안에 위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는데도 아직 통과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생명·안전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는 점 및 여야 및 노사 간에 위 조항의 입법화에 이견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 조항을 이대로 묶어 놓고 있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재해 문제 등 생명·안전과 관련된 일에 관여해 오고 있기 때문에 이러다가 위 조항이 사장되어 버리지는 않을지 매우 조바심이 난다. 생명·안전 문제에 있어서 위 조항은 매우 중요한 조항이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입법화 되어야 한다. 


다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들어있는, 출퇴근 중의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조항이다. 출퇴근 중의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근로자가 출퇴근 중에 사고를 많이 당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공무원·교사 등은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어 보상을 받는데 반해 일반 근로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다만, 법원이 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을 해 왔다. 즉,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근로자가 이용하거나 또는 사업주가 이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의 통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대법원 1993. 9. 14. 선고 93누5970 판결).


법원이 이렇게 좁게 보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는데, 대법원도 2007년도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뒤 전원합의체 판결로 판례를 남겼다. 결과는 기존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래와 같은 빛나는 소수의견이 남겨진 것 외에 바뀐 것은 없었다.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출·퇴근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과 경로는 사업주가 정한 근무지와 출·퇴근시각에 의해 정해지므로, 합리적인 방법과 경로에 의한 출·퇴근 행위라면 이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러한 출·퇴근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대법원 2007. 9. 28. 선고 2005두12572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계속 되었다.


대법원 이후의 전장은 헌법재판소였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도에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아니하는 통상의 출·퇴근 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아니한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2012헌가16, 2013. 9. 26.). 그러다가 작년에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그러면서  2017년 12월 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할 것을 명령하였다(2014헌바254, 2016. 9. 29.). 이런 상황에서 산재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는데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음, 고용보험법에 들어있는 구직급여(실업급여)의 소정급여일수를 연장하는 조항이다. 현재의 소정급여일수는 피보험기간의 장단에 따라 90일부터 240일까지이다. 이를 120일부터 270일까지로 연장하자는 안이 제출돼 있다. 실업 상태에서 받는 구직급여가 얼마나 소중할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인바, 그 기간을 연장하는 조항 역시 하루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


또 근로기준법에 들어있는 연장근로의 한도 및 가산수당의 지급기준을 분명히 하는 조항이다. 즉, 1주간에 허용되는 연장근로 12시간에 휴일근로도 포함된다는 점과 휴일에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100 이상이 가산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들에 대해서는 굳이 개정의 필요성이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있기는 하다. 현재 조항의 해석에 의해서도 위와 같이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가 달리 해석하고 있어 일선 사업장에서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가 별도로 운용되고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법령에 근거규정이 없어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위 조항들을 법령에 분명히 규정하는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가 일정 기간까지 휴일에 한하여 1주 8시간까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자는 안을 제출해 놓고 있고,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드는 일선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그 안을 지지하는 입장이 있기는 하지만, 과로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어 있는 점 및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도 연장근로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그 안은 타당하지 않다. 결국 해석상으로나 사회정책적 필요성으로나 1주의 연장근로는 예외 없이 12시간으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한 입법은 우리 사회가 ‘과로사회’에서 탈피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상이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조항들이다. 법률안에 대한 논쟁시 조항 자체의 의미 외에도 여러 정치적 쟁점들도 함께 고려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런 쟁점들은 부차적으로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생활상 이익 외에 다른 것을 우선할 논리적 필연성이나 정치적 정당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2월 국회에서 위 조항들에 대한 분리 처리가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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