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계급 시대에 던지는 화두, 사업장이 아니라 노동 시장이다!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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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센터 대표


대통령 탄핵과 사회 변화의 착각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시민들의 분노는 수십만, 수백만 촛불로 타올랐고, 우리 모두는 함께 솟구치는 촛불 물결을 보며 우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회주의 정치세력들도 촛불에 무릎을 꿇었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차례가 되었지만, 촛불을 거스르는 이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어느 때보다도 권력 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의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치러지는 2017년 대통령 선거는 분명 사회 변화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이 정치적 불안정 비용을 기꺼이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토해낸 분노와 염원의 격랑만큼 우리 사회도 크게 변화되어 있을까? 대통령이 교체되고, 국가 권력이 극우 보수 세력에서 온건 보수 세력으로 옮겨가면 세상이 크게 바뀔 것처럼 믿는 것은 아우성과 불안정의 시간들이 가져다준 착각이다. 권력이 시장에 있는데, 시장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규제가 수립되지 않는 한 청와대와 여의도의 바지사장들이 교체된다고 어떻게 사회 진보가 가능하겠는가.


두 계급 시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


사회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은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주체로 형성하여 도전할 때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약화와 함께 노동 계급 형성은 후퇴했고,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 분절은 과도한 노동 시장 유연화 공세 속에서 두 계급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두 계급 시대를 연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시장과 자본의 전제적 지배의 최대 피해자인 비정규직은 보편적 이익의 담지자이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주체 형성과 대안적 전망 수립은 진정한 사회 진보의 기본 전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현재 1,200만 명 정도로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 이상을 점하며 꾸준히 증대되는 비정규직 규모, 그리고 두 배 이상의 격차로 확대일로에 있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 조건의 양극화다. 비정규직의 입장에서 보면 전자는 고용 불안정성 문제, 둘째는 소득 불안정성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인 동시에 비정규직 주체 형성의 조건을 형성하는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의 효과도 수반한다.


우리는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시민의 생명·안전을 담보하는 업무와 함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비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사용사유를 제한하여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할 것을 주창해 왔다. 이는 상시적 업무의 경우 사용업체가 정규직을 고용하고 기업의 내부 노동 시장으로 통합하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하고, 비상시적 업무의 경우 사용업체가 외부 노동 시장을 통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은 사회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비상시적 업무의 경우 개별 사업장 단위로는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체 노동 시장 차원에서는 산업·업종과 광역 지역 단위로 수요 예측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따라서 정부는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을 통해 광역 지역별, 산업·업종별로 비상시적 업무의 총수요량과 비정규직의 총공급량을 관리하며 개별 사업체의 구인 수요와 구직자 공급의 매칭을 통해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비용은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 유연성 확보라는 편익을 취한 수혜자들, 즉 사용업체들이 부담해야 한다.


노동 시장 차원의 해법 vs 노동조합의 사업장 단위 대응


사용업체가 책임지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노동 시장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함에도,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호하는 장치는 찾을 수 없다.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사용업체의 비정규직 사용 동기 자체가 고용안정성 보장 책임의 회피라는 점에서 차별처우는 소득안정성보다 고용안정성 측면에서 더 심각하다.


유연성 과잉 노동 시장의 최대 피해자는 정리해고 위험의 정규직이 아니라 합법적·자의적 해고가 전제된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물론 사회적 논의에서조차 비정규직은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다. 민주노조 운동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업체 단위에서 노동력의 사용 여부와 고용 형태가 결정·집행되는데, 민주노조들은 사업체 차원에서 노동력 사용의 유연성에 대응해왔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 단체 협약이나 별도의 고용 보장 합의를 쟁취하더라도 그것은 사업체 내부 노동 시장의 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일 뿐이다. 이처럼 현재 직장의 일자리를 보전하는 직장 보장(job security) 방식은 합법적·자의적 해고를 위해 사용되는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 민주노조운동이 민주성, 자주성과 함께 이익집단을 넘어서는 계급 조직의 정체성도 표방하고 있지만 사업장의 이익집단을 넘어 노동 시장 차원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실천으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기업별 노조주의가 조직 체계뿐만 아니라 민주노조들의 정체성까지 위협하고 있는 현실은 그 뿌리가 깊다.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비정규직은 노동계급 구성원의 70퍼센트 이상을 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민주노조 운동에 의한 사업장 수준 직장 보장 방식은 노동 계급의 나머지 30퍼센트를 구성하는 정규직에 대해 모두 고용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중소영세 사업체의 경우 아무리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더라도 기업 자체가 재정 위기와 부도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직장 보장 방식의 고용안정성 보장 장치는 무용지물이 된다. 


직장 보장 방식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위기 상황의 전환 배치가 가능한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들을 거느린 재벌그룹, 상품주기가 길고 시장 상황의 불안정성이 적은 제조업, 시장경쟁력이 확보되고 인력 활용 융통성의 여지가 큰 대기업, 사용업체가 내부 노동 시장 통합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제도화한 정규직, 사측에 고용안정성 보장의 책임을 부과할 수준의 동원 역량을 지닌 노동조합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직장 보장 방식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은 재벌그룹, 제조업, 대기업, 정규직, 강력한 노동조합의 조직 노동자들에 한정되며 그 규모는 전체 노동계급의 1퍼센트에도 못 미칠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이 99퍼센트의 노동 계급을 배제한 채 1퍼센트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에만 매진한다면 계급성의 정체성은 이미 포기한 것 아닌가.


노동 시장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


이제 민주노조 운동이 노동 시장 전략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가 왔다. 사업장을 넘어 노동 시장 차원의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직장 보장 방식으로 고용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비정규직을 위시한 나머지 99퍼센트도 포괄하는 전체 노동 계급 구성원을 위한 보편적 고용안정성 전략이 요구된다. 그것은 직장이 바뀌더라도 노동 시장 차원에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취업 보장(employment security) 방식으로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는 전략이다. 물론, 민주노조들이 동원 역량을 지니면 사업장 차원에서 정규직 노조원들을 위해 직장 보장 방식의 고용안정성 보장 장치들을 쟁취하여 노동 시장 차원의 보편적 취업 보장 방식을 보완하면 된다.


취업 보장 방식의 고용안정성 보장을 위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사용업체들의 노동력 수요를 상시적으로 파악하고, 미래의 노동력 수요에 상응하는 교육훈련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구직자들의 직무 경험과 자격요건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강화다.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잘 발달되어 있는데, 한국은 구직자들의 공적 고용중개 기구 이용률이 10퍼센트 수준에 불과한 반면, 스웨덴의 경우 거의 모든 구직자들이 공적 일자리중개청(Arbetsförmedlingen)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구인업체의 만족도가 90퍼센트 수준에 달하여 양질의 일자리들이 대부분 일자리중개청을 통해 중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사가 단체 협약을 통해 스웨덴의 TSL(Trygghetsfonden), TRR(Trygghetsrådet) 같은 산업·업종별 기금을 조성하여 비정규직을 포함한 구직자들에게 교육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보완책을 수립할 수도 있다.


고용안정성뿐만 아니라 소득안정성 장치들도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임금체계의 골간을 이루는 연공급과 각종 수당은 정규직의 근속년수를 기준으로 사업체 별로 설계되어 비정규직은 근속년수가 짧고 사용업체의 결합도가 약해 불이익을 받는다. 또한 임금인상률도 단체 교섭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노동조합 조직력에 의해 좌우되는데, 사업장 단위의 단체 교섭을 통한 임금인상률 결정 방식은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확대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한편 실업기간의 소득안정성에 있어서도 정규직은 거의 모두 고용보험제의 혜택을 받는 반면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적용률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처럼 소득안정성 장치들도 사업체 수준에서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취업기간과 실업기간 모두 정규직-비정규직의 소득안정성 양극화 정도는 심각한 수준에 있다. 따라서 취업기간 비정규직의 소득안정성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 시장 차원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제대로 수립·집행되도록 하고, 노동자에게 입증 책임이 부과된 차별처우 금지 방식을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동등처우 원칙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편 노동계의 최저 임금 대폭 인상 요구와 지자체 수준에서 진행되는 적정 생활 임금 설정 정책은 노동 시장 차원의 취업기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의 소득안정성을 강화하는 정책으로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실업기간의 소득안정성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고용보험료를 사용업체에게 부과하고, 비정규직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수급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수급 기간을 연장하고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등 고용보험제를 확충해야 한다.


하나된 노동계급을 위하여


노동 시장 전략의 패러다임을 사업장 차원에서 노동 시장 차원으로 전환하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불평등 수준을 완화함은 물론 정규직-비정규직 이해관계 적대성의 구조적 조건을 일정정도 해소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패러다임 전환은 정규직-비정규직의 사회·경제적 거리를 가깝게 하는 동시에 두 계급 분열을 고착화하는 계급분절화 과정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의 파이가 사업장 수준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제로섬 게임으로 상호 적대적 관계를 보강하지만 노동 시장 수준에서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연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한다. 민주노총이 2000년대 중반 전개했던 비정규직 권리입법 요구 투쟁도 두 계급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계급 통합 전략으로써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민주노총이 2004년 말부터 3년 동안 16차례에 걸쳐 비정규직 권리입법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단위들이 전국 연대체인 전비연(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을 중심으로 전국 순회투쟁을 진행했던 것은 두 계급 극복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해 준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이 단위 사업장에서는 불법파견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비정규직 투쟁에 쇠파이프를 휘둘러댔더라도 민주노총이 조직한 노동 시장 차원의 비정규직 권리입법 총파업 투쟁에 동참한 것은 정규직 노조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한편 두 계급 분열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의 중요성도 확인해준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노동 시장 차원의 대응 전략이 정규직-비정규직의 이해관계 적대성을 약화함으로써 사업장 수준의 적대적 관계가 연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조성해준다는 사실이다.


노동 시장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은 노동 계급의 두 계급 분열 극복을 넘어서 거시적 사회경제 변화도 견인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자본 편향의 보수 언론과 정치세력들은 노동자 임금 문제를 다루며 비정규직의 저임금에 대해서는 기업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는 한편 정규직 특전적 부분의 고임금에 대해서는 노동귀족이라고 매도한다. 이처럼 노동자 임금이 사업장 차원에서는 비용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노동 시장 차원에서는 유효수요를 의미하며, 내수시장 활성화와 경제위기 대응 탄력성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2008~09년 세계 금융위기는 노동자 임금과 복지 지출을 사회적 비용이 아니라 튼실한 경제 발전과 위기대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투자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는데, 이는 노동 시장 차원의 접근을 통해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보편이익 실현도 담보할 수 있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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