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센터에 거는 하나의 기대

by 센터 posted Dec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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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센터 이사


카르페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해진 말이다. 키팅 선생님은 부유한 집에서 자란 총명한 학생들에게 엘리트로 성장하라는 기대와 학교 규율에 짓눌리지 말고 자신을 아끼면서 성장하기를 권유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만끽하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런 나의 현재 모습은 미래에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미래의 평가나 주변의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현세의 부와 권력에 집착하는 최고 권력자와 이에 빌붙는 권력 지향적 인물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곤궁한 삶이 비참의 경지로 치닫고 있다. 그들은 가까운 미래의 영달을 위해 현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거부하고 있다. 역사와 미래가 오늘 자신의 모습을 엄정하게 평가하리라 생각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일 터이다. 역사까지 권력의 관점으로 뒤바꾸려는 시도는 이런 속물주의자들의 필수품이다.


박근혜 정권은 교과서 국정화로 시대를 되돌리려 하며 언어의 왜곡마저 일삼는다. 현재의 권력을 내려놓은 후에도 똘똘 뭉친 지지자 집단에 기대어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개인의 야망이 퇴행적 쟁점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도 비정규직과 청년, 노인, 여성을 필두로 모든 노동자의 삶을 한 점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길 고수하면서 경제권력과 타협하려는 정치권력이 벌인 협잡의 산물이다. 이에 편승해서 이득을 보려는 관료, 전문가 집단이 이참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 권력을 향한 거래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염치와 냉정한 현실 인식, 합리적 판단이나 미래의 평가 같은 건 걸리적거리는 장식품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속물주의는 사회 곳곳, 개인의 뼛속까지 침투한 듯하다. IMF 위기 직후 ‘부자 되세요’가 오히려 순진한 말이었다. 속물근성은 결코 현실에 충실한 모습이 아니다. 결코 자신을, 또 삶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다. 냉정한 역사의 평가에서 자신이 난도질당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만용에 찬 추한 모습일 뿐이다.     


우리나라 소설가의 미국 일주 여행기를 보며, 미국의 영토 곳곳에 감추어진 팍스 아메리카나의 음습한 속살을 느낀 적이 있다. 요즘 어쩌다 읽고 있는 《미국의 거짓말》이라는 책도 그렇다. 초·중·고등학생이 배우는 미국사 교과서가 국민적 자부심을 높인다는 이유로 누락과 왜곡을 일삼고 있다는 걸 넓고 넓은 미국의 각 지역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기념비와 박물관을 헤집으며 비판하고 있다. 인종주의자를 기리는 기념 동상이 남부의 흑인 대학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고, 명문 대학의 건물 입구에도 들어서 있다. 미국 곳곳에서 비판적 지성과 판단력은 죽었음을 목격하는 일이 너무 많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 대목 한 대목마다 역사의 왜곡을 멈추게 하는 일이 현재를 바로잡는 일이라는 각오를 읽을 수 있다. 현실을 왜곡하는 자가 역사마저 편취하는 일이 이미 너무 많다는 생각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며 늦가을의 씁쓸함을 더한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올 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많은 일을 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서울 도심을 휩쓴 통신 케이블 노동자의 농성 파업 등 굵직한 노동 사안에 연대의 한 축으로 또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노동시장구조개혁 등 노동 쟁점에서 의견 개진과 대안 제시를 위해 참 많은 일을 했다. 이 가운데, 필자가 속한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서울시로부터 위탁, 운영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울한 뉴스의 바다에서 건진 모처럼 생기 돋는 신선한 꺼리라는 인사를 많은 분들이 해주셨다. 비정규센터의 활동 폭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계기가 되고 비정규 운동과 연대의 흐름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기대였으리라고 믿는다.


올 1년이 다 저물어가는 시점에 과연 ‘그 기대는 어느 정도나 충족되었을까’ 자문해 본다. 권익센터의 운영과 활동은 이제 안착이 되었다는 평가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격려에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과연 얼마나 유익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것에 두려움도 느낀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며, 그렇다고 현명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니다. 노력과 방식보다 중요한 건 실제 비정규센터와 권익센터가 내세운 과제인 ‘아래로의 연대’와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그리고 비정규센터와 함께 질적인 동반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의 긴 서두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함축한다. 현실에 충실하고, 현실의 과제에 대면해서 충직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대답이다. 작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큰 시행착오 없이 권익센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비정규센터가 쌓아온 연대 활동과 정책 대안 제시라는 양날개의 자산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을씨년스런 괴물 사회로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딛고 일어설 작지만 단단한 발판이 되고자 하는 두 센터의 역할에 한 단계 진전을 준비하는 때이다. ‘양극 분해된 사회의 비극’이 도래하고 있다. 이를 막아서는 연대와 대안의 기틀이 되어야 할 비정규센터와 비슷하나 또 다른 반(半)제도권의 장에서 그 역할을 나누어 맡을 권익센터의 역할 분담과 공유를 통해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와 억울하고 힘들어도 하소연할 길 없는 많은 노동 빈곤층에게 힘이 되고 새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담론과 아이디어에서 공중전과 함께 고통 받는 노동자와 연대, 그리고 지역에서부터 그 기틀을 형성하는 일을 다양한 장에서 펼쳐나가면서 두 센터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 연대의 양 날개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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