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노동으로_네이버 웹툰 '송곳'의 최규석 작가

by 센터 posted Ma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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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어쨌든 나는 세상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네이버 화요웹툰에 연재되는 웹툰 ‘송곳’의 소개다. 프롤로그부터 ‘떼인 월급’을 받는 지역의 노동운동가 구고신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웹툰은 노동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노동을 주제로 한 웹툰 연재를 시작한 최규석 작가는 《공룡둘리》,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 보고서》, 《100도씨》 등 사회에 대한 풍자와 문제의식을 담아온 작가다. 《비정규노동》은 최규석 작가를 만나 ‘송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규석1.JPG

   
일주일에 한 번씩 작품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일텐데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만화가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 저만 특별히 힘든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제가 이전에 원래 긴 내용으로 연재를 한 적이 없어요. 항상 단행본 작업을 중심으로 했죠. 연재를 하더라도 짤막짤막한 것만 연재했었는데 극화를 연재하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그렇다보니 힘에 부치기는 해요. 또 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어려운 것도 있어요. 일주일에 10페이지 정도 분량이 나가는데 진행도 느린 것 같고···. 일 도와주실 분을 한 명 구하면 분량도 좀 늘고, 좀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인물이야 제가 다 하니까 상관이 없는데 배경 같은 것은 누가 도와주면 편하기는 하죠.


단행본 중심으로 작업을 하다 웹툰으로 연재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일단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고민을 계속 물고 늘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죠. 예전에는 한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오직 내 판단만 가지고 연재를 했었는데요. 이제는 연재다 보니까 독자 반응을 볼 수가 있잖아요. 나는 잘 했다고 생각
하는데 독자들 반응을 보면 ‘잘 안 된 건가.’ 이런 의심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죠. 예전에는 그런 의심을 하더라도 더 이상 손 댈 수 없는 상황에서 출고가 됐었는데 지금은 매번 그런 고민이 드니까 그런 곳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어
요. 작품에 어떤 요소를 넣어야 순위가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고요.(웃음) 그런데 세이브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크게 반응을 할 수도 없어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죠.

세이브 된 원고가 있으면 매주 마감하는 고통에서는 자유로우시겠군요.
네. 연재 초기인데 세이브가 없으면 죽죠. 그리고 저는 4주 단위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2주 동안 스토리를 쓰고, 2주 동안 그림을 그리는 방식. 그래서 매주 마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에요.

 

‘송곳’이라는 작품은 노동을 주제로 그린 만화잖아요. 노동이라는 주제로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기획하게 된 것이 언제였을까요. 그리고 어떤 문제의식으로 송곳이란 작품을 기획하게 되셨는지요.

2008년인가. 아마 《대한민국 원주민》 연재할 즈음인 것 같아요. 기획은 오래됐어요. 《100도씨》 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답답함이 있었어요. 《100도씨》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에서 의뢰를 받아 연재한 작품인데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를 기념비적으로 다루기 위해 의뢰가 들어온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노동은 오히려 힘들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100도씨》를 그리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어요. 작품 의뢰를 받은 것이 노무현 정권 때였거든요. 87년 6월 항쟁 20주년 때에는 우리가 이룬 업적이 이렇게 위대하다며 특집방송, 다큐도 많이 할 때였고, 제 작품도 그런 맥락에서 제안이 된 거였죠. 그런데 그 당시 우리는 ‘88만원 세대’라면서 다들 ‘나 죽겠네.’ 하고 있었거든요. 우리들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열악해졌던 거죠. 제 주변도 그래요. 생각해보면 제 주변 형들 세대는 일정하게 누려왔던 것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공고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30대 중반이 되면 최소한 ‘엑셀’ 정도 되는 차를 끌고 다니고, 작은 아파트가 있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죠. 물론 《100도씨》가 이명박 정권 들어오면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게 됐지만 처음 작품을 할 때 느꼈던 그런 답답함이 있었죠. 그리고 ‘민주화’라는 퇴보된 논의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기획을 하게 된 거였죠.

 

사진1.jpg


준비를 굉장히 오래 하셨네요.
중간 중간 하다말다 했었어요. 불타올라서 준비를 하다가도 ‘아, 내 능력으로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포기를 하고. 다시 불타오르고···. 몇 년 동안 반복되었죠.


‘송곳’에 대한 질문을 해 볼께요. 이 작품은 성장물인가요.
네. 현재 구체화가 된 부분까지는 이수인의 성장물이에요. 이제 2부에서 구고신을 만나면서 이수인이 성장해가는 모습들이 그려질 겁니다. 슬램덩크 같은 성장물이죠.

 

주인공으로 택한 인물이 이수인인데요. 이수인을 주인공으로 택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일단 제 성격이랑 비슷해요. 자기가 부조리한 일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놓으며 반응하는 스타일. 이런 스타일이 대중들이 따라가기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민도 많고, 어느 정도의 정
의감은 있지만 의심도 많은 스타일.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차곡차곡 쌓이면서 점차 복잡한 과정 속으로 밀어 넣는 스타일. 그리고 약간의 용기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수인 이라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풀어가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이수인은 평조합원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부잖아요. 주인공으로 평조합원을 잡았을 수도 있고 혹은 구고신과 같은 경력 많은 노동운동가를 잡을 수도 있었을텐데 왜 노동조합 지도부인 이수인을 주인공으로 잡으셨나요.
우선 구고신과 같은 노동운동 전문가들. 그러니까 많이 배우고, 노동운동의 경험도 많고. 이런 사람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그 분들의 사고와 고민을 따라가고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고 본 거죠. 평조합원의 시선으로 작품을 그리는 것은 일정 정도 이야기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평조합원에게는 삶에서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지만 간부에게는 다르잖아요. 모든 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간부들의 경우 노동운동이 본인의 정체성이 되어버리죠. 그런 사람의 시선에서만 보이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본 거죠.
이런 고민도 있었어요. 평조합원 시선으로 가면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이야기들하고 차별점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회문제를 다뤄왔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택했던 방식과 차별점이 없어질 것이라고 본거죠. 소재
의 차이점만 있는 거지. 평조합원의 애환, 갈등, 가정사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았을 때 독자들은 ‘한국사회는 문제가 많구나.’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보여주려면 간부의 시선이 나와야 된다고 본 거죠.
예를 들면 대학에서 축제를 한다고 했을 때 학생의 시점과 총학생회 간부의 시점은 완전 다르잖아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대학 생활의 추억의 한토막이 될 수 있지만 학생회 간부들에게는 아무리 즐거운 축제라 하더라도 그 과정
은 지옥 같을 수 있죠. 학생회 간부의 시선으로 축제를 그리는 것과 학생들의 시점으로 축제를 그리는 것은 아예 장르가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송곳’을 시작할 때 좀 더 내부의 시선, 깊이 들어가 있는 시선을 채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한거였어요. 제 능력으로 그런 부분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진3.jpg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영화화 하다보면 개인들이 부각되면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노동운동은 다양한 공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만나고 어우러지면서 상승효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부분이 작품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될까요.
굉장히 어려워요. 일단 독자에 대한 생각을 버린다 하더라도 작가로서 잘 조율하기 힘들어요.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왔던 쉬운 드라마의 틀을 쓰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건져서 그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야죠. 최소한 한 명의 영웅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안 갈 것 같아요.
그리고 구고신과 이수인이 아직 만나지 않았는데요. 구고신이 지금 있는 곳이 일종의 지역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정규직 활동가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죠. 여기가 작
품 안으로 들어오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기는 할 겁니다. 또 그 속에서 이수인이 많은 것들을 배우겠죠.
하지만 구고신이 능력 있는 사람처럼 등장을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별 능력이 없잖아요.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자그마한 소규모 사업장 일반노조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겠지만. 대형 마트에서 관여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게 이 구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면서도 또 뭔가 성취해야할 목표가 아닐까 싶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멘토 캐릭터가 있고, 처음에 엄청난 것을 해 줄 것처럼 작가가 깔아놨는데 실제 하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어떻게 많
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까. 이런 고민들이 있어요.


‘송곳’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열망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또 그런 실천들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좋은 사회가 되었
으면 좋겠다는 열망은 그냥 ‘바뀌겠지.’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2008년 촛불집회의 한계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왜 아무것도 안 바뀌지.’ 이런 것. 그래서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실제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한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고, 그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드러내고 싶은 것을 예로 들자면 이래요. 가령 어떤 사람이 월급을 안 주는 사장이랑 싸우고, 사표 쓰고 나가면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회는 저런 것도 안 지키는 사용자가 많네.’라는 메시지는 주겠죠. 하지만 이 사람이 노동청에 가서 뭔가를 쓰고, 월급을 받아내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사람들에게 ‘아, 이렇게 하면 월급을 받는구나.’라는 것이 보여지겠죠. 저는 제 만화가 최소한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미있고 좋은 작품인데 웹툰 순위가 안 올라서 문제인데요.(웃음) ‘송곳’이라는 웹툰이 어느 정도 이슈를 만든 것은 이 만화가 ‘노동’을 다뤘기 때문이죠. 저는 이것이 한편으로 한국 사회 노동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이 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은 어떠신가요.
일단 독자들이 10대가 많더라구요. 데이터를 다 받아보고 선택했었어야 하는데···. 10대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웃음) 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잖아요. 그렇다보니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만 하더라도 부딪히는 것이 노동이죠. 그런데 2000년대 넘어서고 나서 노동에 대한 인식들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따로 노동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생각들이 자기 계발서, 혹은 그런 것을 설파하려고 하는 이데올로기에 아예 싹이 죽어버린 거죠. 그렇다보니 전혀 다른 생각이 사람들을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어떤 책에도 나와 있었지만 IMF 이전에는 사람들이 짤렸다고 하면 그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짜를만 했겠지. 회사가 어려웠나 보네.’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오히려 제가 80년대에 이런 만화를 그렸으면 대중들에게 더 잘 다가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어떻게 그려야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드는거죠. 그러니 힘든 부분이 많아
요. 차라리 시사만화를 그리라고 하면 독자층이 한정이 되잖아요. 이 신문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이 만화를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지를 대충 아니까. 그런데 이건 힘들어요. 어떤 사람들까지 이 만화를 보는 것인지 상
상이 안 되니까.


시즌제로 가신다고 하셨는데 언제까지 연재가 되는 건가요.
모르겠어요. 일단 많은 이야기가 나올수록 좋을테니 할 만하다 싶으면 계속하겠지요. 물론 내가 이걸 해서 내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계속 하겠지만 ‘쓸데없는 일 하는 것 같다.’ 싶으면 최대한 짧게 하고 끝을 내겠죠.

 

 

 인터뷰 진행·정리|오진호 센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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