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 노동자] 우여곡절 끝에 조직한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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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호 광주광역시비정규직지원센터 센터장



성급했던 첫 시도


센터 사무실에 고연령대 경비 노동자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계약만료, 입주민 갑질, 최저임금 문제 등 한참을 상담하지만 “나이 먹어 이거라도 어디냐?”며 더이상 다른 방안을 진행하지 못하고 고개를 내젓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 먹어 노동하는 게 왜 서러워야 하고 왜 꾹 참아야만 하는 것인지, 뭔가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했다. 상담을 통해 친분 있었던 몇 분에게 경비원 노동조합 결성을 목표로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피해 의식 때문에 의견이 갈렸다. 일단 모임부터 만들고 노조는 그 후에 판단하기로 하고 월 1회 모임을 시작했다. 자신들이 일하는 아파트 현장을 대상으로 동료들의 합류를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24시간 맞교대와 단기계약으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힘들여 10여 명이 모이긴 했지만 현안문제가 해결되자 대부분 흥미를 잃어갔다. 대중사업 없는 경비원 조직화의 첫발은 이렇게 중단 위기에 놓이게 된다.


5.야유회.jpg

2019년 10월, 전라북도 부안으로 공동주택 경비 노동자들과 함께 가을 야유회를 갔다.(@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


접촉면 넓힌 실태조사와 가을 야유회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에 입주민 갑질 문제가 매스컴에 오르내렸고, 이 점에 착안하여 센터는 2016년 11월 광주지역 최초로 아파트 경비 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였다. 센터 구성원들이 경비초소를 직접 방문하여 212명의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연락처 수집도 병행했다. 이 연락처 수집은 이후 각종 경비 노동자 사업에 든든한 밑천이 된다. 실태조사는 지역 언론에 발표돼 경비 노동자들에게 센터를 홍보하는 역할을 하였고 「광주광역시 고령자 경비원의 고용안정 조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2017년도에는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제1회 가을 야유회를 개최했고 120명이 참여했다. 해마다 참가자가 늘어 2019년도에는 350명이 참여했다. 


노동조합의 실패    


노동 상담과 각종 대중사업을 진행하면서 기존 노동조합에 경비 노동자 노조 가입을 타진했다. 노조들의 분위기는 “성공사례가 거의 없다.”며 대부분 힘들어했다. 그러나 지역 바닥에서 닳고 닳은 선배의 강권에 못 이겨 광주일반노조가 나섰다. 센터는 가을 야유회를 개최하여 참가자들을 모으고 광주일반노조가 노동조합 교육을 실시한 후 가입원서를 돌렸더니 50명이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경비 노동자들은 주로 “조합비가 얼마냐?”, “가입하면 용역회사에 불이익과 해고를 당할 텐데 보호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고, 노조에 대한 거부 반응도 컸다. “50명을 바탕으로 혹시!” 그러나 이 기대가 깨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노조 가입을 가장 많이 한 아파트에서 최저임금 집단해고가 발생했다. 일반노조에서 센터와 함께 조합원 회의도 개최하고 입주민 대표자와 용역업체 면담을 진행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인 결과 절반 정도 고용 승계를 따냈다. 그러나 일반노조는 조합원들의 저조한 참여와 투쟁 상대가 입주민이란 점을 들어 향후 조직화에 난색을 표했다. 물론 일반 노동자 조직화도 어려운 과업이지만 고연령대와 입주민과의 관계 문제는 더 많은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일반노조에게 좀 더 다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며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결국 다시 공은 경비 노동자들과 센터로 넘어오고 말았다. 


새로운 각오 새 출발, 초동주체 모임 구성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조직화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여러 차례 센터 내부 논의를 진행했다. ‘변함없는 조직화 명제인 당사자들의 초동주체 형성’ 과업은 항상 우리 안에 존재할 뿐이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사업 구상을 했다. 2018년도부터는 어떻게 해서든 초동주체 모임을 결성하자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사업을 전진 배치시켰다. 


기초지자체인 구청에서 아파트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구청별 경비 노동자 간담회’를 공동 추진하자고 제안해 진행했다. 구청이 회의 장소를 제공하자 초대장을 만들어 경비초소를 돌기 시작했다. 왜 간담회를 하는지,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노동 상담도 함께 겸하다 보니 한 초소당 30분 이상 소요되었다. 휴게시간이 아닌 때에 방문하다 보니 접촉자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간담회 일주일 전부터는 센터 전 구성원이 초청장을 들고 뛰었으며 한 조당 120~130명을 접촉하였다. 이때도 연락처 수집은 필수였다. 간담회는 한 회당 30~50명 정도씩 참여했으며 광주 서구청의 경우 공무원들이 직접 뛰어다니며 교육간담회를 조직해주기도 했다. 간담회를 통해 단기계약, 최저임금 꼼수, 퇴직금 미지급 등 공통 애로사항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뒤풀이 식사 자리였다. 서로 인사를 건네며 센터와 경비원 간 각종 애로사항을 함께 풀어갈 대표단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활동적인 두세 명을 추천받아 구별 대표진을 구성했다. 간담회나 초소 방문 시 눈여겨봤던 분들을 포함해 한 조당 10여 명씩, 총 20여 명의 대표단을 구성했다.(이 정도면 나름 초동주체 구성은 성공한 셈이렸다~) 곧바로 조별 모임을 소집하여 매월 1회 정기모임을 갖고 일단은 내부 역량을 키우는 교육과 토론, 경비 노동자 권익단체 설립을 추진해 나아가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 


뜻이 있으면 길도 열린다


대외협력사업 담당자가 아파트 경비 노동자 사업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센터는 다른 사업들이 적체되기 시작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해질 무렵 가마득히 잊고 있었던 낭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2018년 4월, 전국 최초로 「광주광역시 고령자 경비원의 고용안정 조례」가 제정된 것이다. 이 조례는 경비원 실태조사, 교육, 모범사례 홍보, 경비원 협의체 구성, 비정규직지원센터의 상담업무 등이 주 내용이었다. 센터는 이 조례를 바탕으로 경비원사업안을 제출해 추경이 편성돼 4/4분기부터 관련 사업비와 한 사람 인건비를 받기 시작했다. 


초동주체 모임은 참여자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동료 한두 명을 더 모셔온 덕택에 10명에서 출발했던 규모는 40~5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경비원 협의회 구성을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고, 초동주체 모임은 협의회 결성을 안건으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협의회 운영 규정을 만들고 연말 창립대회를 목표로 가입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여한 경비 노동자 스스로가 가입원서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찾아다녔다. 센터에서는 ‘경비원 협의체 구성 지원’을 담고 있는 조례 내용을 제공하며 광주시가 지원한다는 것을 뒷받침했다. 그 결과 경비 노동자 700여 명이 합류하게 된다. 이런 흐름과는 별개로 정치권에 경비 노동자 권리를 요구하자며 권익단체 가입원서를 받아온 또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센터는 응당 이 흐름과도 접촉해 연말에 하나의 협의단체를 만들자며 설득했고 내부 논의를 거쳐 승인을 받게 된다.


난관과 어두운 그림자들      


그러나 준비 과정이 다른 두 흐름이 하나로 합쳐지다 보니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것이 협의체 명칭이었다. “우리는 경비원이기 이전에 노동자다. 노동자 권리 찾기 활동을 벌여야 한다.”와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일자리 사업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그러나 고령의 경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용역업체 측의 불이익에 대한 피해 의식이 만만치 않아 결국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이하 협의회)’로 결정된다. 그리고 조직 통합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대표단 구성 문제가 떠올랐다. 1인 대표로 할 것인가, 공동대표로 할 것인가, 집행부 운영위원은 누가 할 것인가. 여느 단체들처럼 품평회 신경전이 등장했고 감정 자극으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센터 중재로 몇 차례 조율을 거쳐 대표 1인, 수석 부대표 1인, 구별 부대표 2인씩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임시 임원단을 내정해 창립총회 날짜를 잡고 출범준비위를 구성해 실무 준비를 진행했다. 그러나 출범을 며칠 앞두고 임시 대표의 일방적 운영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흐름에서 자꾸 소외되고 있어 도저히 함께 못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대로 뒀다가는 창립총회가 연기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센터는 즉각 모두를 접촉하여 조직의 올바른 회의체계 확립과 민주적 운영을 합의하고 위기를 가까스로 수습했다. 


5.창립총회.jpg

2018년 11월 27~28일 이틀 동안 광주 YMCA에서 진행한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 창립총회(@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


마침내 협의회 출범 그러나···


초동주체 실패, 노동조합 실패, 대중사업 전개, 초동주체 형성, 내부 불협화음··· 각종 우여곡절을 거친 후 2018년 11월 27일과 28일 1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전국 최초 아파트 경비원 권익단체 등장이라며 중앙 매스컴까지 오르내릴 정도였다. “어떻게 그런 조직화가 가능했느냐?”는 타 지역 센터 문의도 많았고 한비네 수련회 때 발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들이 해냈어야 할 일을 지자체 위탁센터라는 곳에서 해냈다는 것에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지난 3여 년 동안 쏟아부은 땀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었다. 


광주지역에서 경비 노동자 조직화 사업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연간 3~4천만 원의 사업비와 전담 인력 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광주시의회의 경비 노동자 고용안정 조례 제정은 사업추진의 큰 동력이고 사업기반이 되었다. 또 다른 점은 접근성이다. 공장이나 일반 사무실의 경우 노동자들을 쉽사리 만날 수 없으나 경비초소의 경우 항상 열려있어서 주말에도 방문이 가능했다. 그리고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의 ‘광주시’라는 타이틀이다. “시청에서 이런 것도 합니까?”라는 반응은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와는 또 다른 동기 부여가 돼주었다. 


한계와 단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비 노동자 운동을 주도해나갈 현장 활동가의 부재다. 고연령층이다 보니 386 이전 세대로서 은퇴하기 전 직장에서의 노동운동 경험들이 매우 취약했다. 그에 따라 경비 노동자 신분인 현장 활동가를 만날 수 없었으며 사업 하중은 센터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현장 활동가 부재는 이후 출범한 협의회 운영에 큰 숙제가 된다. 경비 노동자 권익단체 결성은 해냈으나 조직의 민주적 운영과 회비 납부, 각종 권익사업 진행 등의 과제들이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고 노동조합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땀방울이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아버님 세대들의 마지막 직장이라 불리는 아파트 경비원, ‘나이 먹어 이거라도’가 아닌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마지막 직장이 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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