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 노동자] 나, 아파트 경비 노동자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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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환 아파트 경비 노동자



12년째 일하고 있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 박요환입니다. 한 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이후 경비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 58세였는데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아파트 경비원뿐이었습니다. 막 입사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경비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경비원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용역업체에 찾아가 취업을 했습니다. 30년 동안 양복만 입었는데 처음 제 몸보다 큰 경비복을 입었을 때 많이 낯설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니 경비복을 입은 제 모습이 나름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큰딸을 근무하는 아파트에 불렀습니다. 처음엔 경비복을 입은 저를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큰딸은 “이런 일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으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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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GD컨벤션에서 열린 안산·시흥경비노동자모임 창립총회에 120여 명의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모였다.(@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처음 경비원으로 일할 때 일을 지속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심적으로도 힘들었고, 지금과 같이 24시간 맞교대이지만 쉬는 시간도 없었고, 월급도 7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폭언과 무시도 많이 당해 1년에 세 번씩 이직했고, 이런 과정을 5~6년 겪고 나서야 현재 아파트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업무가 없습니다. 시키는 모든 일이 업무예요. 개똥을 치우라고 하면 개똥을 치워야 하고, 안 치우면 관리소에 가서 “몇 초소 경비원이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관리구역에 개똥도 치우지 않는다.”라며 민원을 넣습니다. 분리수거도 하고, 담배꽁초도 줍고 다니고, 보이는 입주민들에게 인사도 해야 하고, 인사를 안 하면 또 민원이 들어갑니다. 출근할 때 집에다 오장육부를 빼놓고 출근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버티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며 성격도 조금 유해졌습니다. 30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불같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습니다. 몇 년 전 여름날이었어요. 초소에 앉아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닦고 있는데 웬 젊은 사람이 오더니 “초소에 에어컨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없는 걸 확인하고 관리소 가서 얘기하고 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관리소에 갔다 오더니 “한 달 안에 에어컨 설치가 안 되면 몇 동 몇 호에 살고 있으니 연락을 주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난 후 바로 관리소 직원이 와서 에어컨을 어디에 설치하면 좋겠냐고 묻더군요. 그 순간 ‘아, 이거다! 배운 것을 바로 써먹자’ 싶어 퇴근하고 제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 초소를 싹 다니며 에어컨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역시나 없었고, 곧장 관리소로 들어가 에어컨을 끄라고 소리쳤습니다. 경비원들이 어떻게 근무하고 있는지 보라고, 하루만이라도 초소에서 일해보라고, 폭염에 경비원들의 건강이 잘못되면 어떡할 거냐고 소리쳤습니다. 저보고 앉아서 얘기하라는 관리소장의 말을 무시하고, 이번 주 안에 설치 안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경고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러고 다시 초소에 가서 일주일 안에 설치가 안 되면 몇 동 몇 호에 살고 있으니 나를 찾아오라고 얘기했습니다. 며칠 후 제가 사는 아파트 초소에도 에어컨이 설치되더군요. 


지금 아파트에서 6년째 근무 중인데 관리소에 나에 대한 민원이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입주민이 책장을 버리겠다고 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으로 돈을 받았는데 다른 입주민이 그 책장을 보더니 쓸만하다고 가져가더라고요. 그래서 책장을 버리겠다며 저한테 준 폐기물 처리 비용을 돌려주기 위해 입주민을 불렀고,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쓰게 했습니다. 이 영수증을 받고 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받고 경비반장 본인한테 주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를 공금 횡령한 도둑으로 몰았습니다. 내 초소에 관리소장이 와서 “왜 폐기물 처리 비용을 반장에게 주지 않고 그것을 사용했냐.”고 묻더군요. 바로 영수증을 보여줬습니다. 그 이전에도 경비반장 이야기만 듣고 해고당한 사람이 네 명이나 됐기에 저는 “왜 한 사람 이야기만 듣고 경비원들을 해고했냐.”고 따지며 경비반장을 해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아파트에 들어오고 나서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곳곳의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해고를 종용하고 진실을 왜곡해서 얘기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특수한 경우였기에 해결할 수 있었고, 대다수 경비원은 해고하면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가는 게 태반입니다. 사직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면 그냥 쓰는 게 경비 노동자고, 그만큼 무기력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경비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와서 경비원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올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당장 가고 싶다고,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연락을 주겠답니다. 당일 거기에 참석해 교육을 받아보니 ‘진작에 생길 것이 이제야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만들었어야 할 것을 앞장서서 해주니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산·시흥경비노동자모임 창립총회 때 부대표 추천을 받고 무대에서 인사말을 했을 때 30년 전 노동조합에서 첫 간부를 했을 때 기분이 들었고, 머리통이 쪼개질 정도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안산·시흥경비노동자모임이 안정적으로 잘 운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부대표들이 희생하더라도 아파트 경비 노동자를 더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이곳에 있었다는 것만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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