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_우수상] 열심히 일하지 마세요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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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화  도서관 사서


3.강선화.jpg


‘도서관에 근무하고 싶은 A씨’는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 구인·구직란에 들어가요. ‘비정규직’을 선택하면 병가나 육아휴직으로 대체 근로자를 구하는 학교의 채용공고가 보여요. ○○초등학교 사서 대체 채용, 주 5일, 일 8시간, 일급 82,400원, 6개월 근무···. 학교 도서관 근무 경력이 있거나 자격증이 있어야 한대요. 다행히 ‘도서관에 근무하고 싶은 A씨’는 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요. 


이력서를 제출해요. 면접을 보러 오래요. 대체 노동자 한 명을 뽑는데 다섯 명을 불렀어요. 그리고 여섯 명의 면접관 앞에서 한 명씩 면접을 봐요.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싶은 A씨’에게 교감 선생님이 첫 질문을 해요. “사서 업무 외 업무를 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안 하는 것이 맞죠?” 질문인지 협박인지 모르겠어요. 어처구니가 없지만 ‘도서관에 근무하고 싶은 A씨’는 세상 마음씨 좋은 미소로 “학교장이 지시하는 업무를 하는 것이 모든 교직원의 역할이지요.”라며 뽑아만 준다면 뭐든 하겠다는 심경을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우며 말해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날부터 출근하래요. 


‘도서관에 근무하고 싶은 A씨’는 행복해요. ‘열심히 하면 학교 도서관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열심히 해야지!’ 책과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일하는 것이 ‘도서관에 근무하고 싶은 A씨’의 꿈이에요. 


“이름을 왜 물어봐요?”


출근 첫날, 먼저 행정실로 출근하래요. 근무하는데 필요한 것들,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등 기본 사항에 대해 이야기해주려나 봐요. 하지만 처음 마주친 행정실 공무원은 인사도 하지 않아요.

“어떻게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된 ○○○입니다.”

“아, 네. 도서관은 2층이에요. 올라가서 근무하세요.”

“네.”


‘인수인계를 못 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A씨’는 도서관을 찾아 올라가요. 새로 온 교사에게도 이렇게 할까란 불쾌감이 잠시 스쳤지만 올라가면 누군가 있겠지 생각하며 도서관에 들어서요.


역시나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어른 한 분이 계세요. ‘인수인계를 못 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A씨’는 누군지 몰라 “안녕하세요. 새로 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된 ○○○입니다. 선생님은 누구세요?”라고 물어요. “네, 저는 수업 전까지 아침 돌봄을 해요. 봉사직이에요. 도서관에서 8시 40분까지 근무해요.”라며 자기를 소개해요.

“아, 네. 돌봄 선생님이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네? 왜 물어봐요?”

“아니···  그냥··· 몇 달간 아침마다 뵐 분이니 여쭤본 건데···. 실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입니다. 이 학교에서 7년간 근무했는데 이름 물어본 사람이 처음이라.”

“아··· 네···.”


“열심히 일하지 마세요.”


원래는 ‘일 두 시간 근무 근로자’였는데 올해부터 근무시간이 ‘수업 전’까지로 적힌 애매한 ‘봉사직’ 계약서를 썼다는 아침 돌봄 선생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컴퓨터 책상에 앉아요. ‘인수인계를 못 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A씨’지만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것에 즐거워 쌓여있는 반납 도서를 제자리에 꽂아 놓으며 도서관이라는 공간이면 어디나 할 법한 일들을 시작해요. 


잠시 뒤 전산실무사 선생님이 들어와요. 역시 이름은 말하지 않고, 자신은 육아휴직 대체로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해요. 그리고 학교 메신저를 연결시켜 줘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래요. 드디어 소통할 사람이 생겨서 좋아요. ‘인수인계를 못 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A씨’는 학생 수, 학교 규모, 수업시간 등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고, 도서관 근무 시 유의해야 할 점 등 궁금한 것을 물어봐요.

전산실무사 선생님이 한마디 해요. 

“선생님,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세요. 잘 웃고 애들한테 친절하게 하시면 돼요.” 

‘대체 근로여서 무시하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해요. 그게 사회생활이니까요.


“가만히 있으세요. 시키는 일만 하세요.”


우연히 학교 달력을 봐요. 다음 주가 ‘도서관축제’래요. 학교 달력에 찍혀 나올 정도면 누가 봐도 큰 행사예요. ‘큰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난감한 A씨’는 점심 식사를 하며 비정규직 선생님들께 여쭤봐요. 

“도서관축제가 뭐예요?”

이름도 소속도 밝히지 않았지만, 함께 밥을 먹기에 비정규직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눈을 놀란 토끼처럼 뜨며 “선생님, 그거 엄청 큰 행사예요. 담당 부장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알고 계세요?”라고 물어요. “아니요. 제가 방금 학교 달력에서 본 거예요.”라고 답해요. 비정규직으로 추정되는 선생님은 ‘큰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난감한 A씨’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낮추며 작은 목소리로 충고해요. 

“선생님, 가만히 있으세요. 먼저 나서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가 시킬 거예요. 시키는 일만 하세요.”


‘큰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난감한 A씨’는 불쾌했지만 다들 왜 같은 이야기를 할까 생각해봐요. ‘열심히 일하지 말아라.’, ‘시키는 일만 해라.’ 뭔가 찝찝한 기분도 잠시, 당장 일주일 앞둔 행사를 망칠 수 없어서 빨리 상황을 해결하기로 해요.


‘그래 이게 기회야, 열심히 해서 잘 보여야지.’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A씨’는 그날부터 열심히 행사를 준비해요. 짧은 준비 기간 때문에 퇴근 후에도 열심히 일해요.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A씨’는 혹시나 이번 기회에 교장, 교감 선생님께 잘 보이면 삶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요. 


행사 당일, 수백의 사람들이 도서관에 찾아오고,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A씨’는 점심도 거른 채 행사를 치러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다행히 행사가 잘 끝났고,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A씨’에게 모두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해요. 정말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행사 다음 날, 도서관은 거짓말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요. 큰 행사를 치렀다는 것이 꿈같이 느껴져요. 행사 보고라든지 보완할 사항이라든지 평가할 게 수두룩한데 다시 그냥 일상이에요.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A씨’는 약간 허무해요. 그때 도서관 담당 부장교사가 들어와 행사에 사용했던 전시물 파일과 사진을 달래요. 부장교사 수행 보고해야 한다고. 그때 ‘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깨달음을 얻어요.

‘내가 한 일이고, 보고든 평가든 주체인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보조일 뿐이구나.’


출근 첫날, 비정규직 선생님들의 “열심히 일하지 말아라. 나서지 말아라. 시키는 일만 해도 된다.”라는 말은 “열심히 나서서 일해도 주인공은 안 된다. 괜한 힘 빼지 마라.”라는 현실적 조언이었어요. 교사와 같은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평생 보조인 ‘학교 비정규직’이니까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함없는 비정규직


학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교장, 교감, 교사, 그리고 행정실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과 ‘교육공무직’이라 불리는 비정규직으로 나눠요. 비정규직은 또 무기계약이 된 8시간 전일 노동자, 8시간 근무지만 무기계약이 아닌 단기 노동자, 4시간 근무 노동자, 2시간 50분 근무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4시간부터 1시간, 1시간 반 근무인 봉사직 등으로 수없이 쪼개져요.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에만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비정규직은 준비시간 따윈 근무시간에 들어가지 않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선생님은 수업이 일찍 끝나는데 수업을 더 오래 하는 고학년 담임 선생님과 같은 시간 동안 근무하고, 월급도 같은 것과 비교하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요.


노동조합이 생기고 처우 개선은 되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위치는 불변의 법칙이에요. 7년 근무했다는 봉사직 선생님 이름이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대체직’이라는 것과 ‘전산’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개가 본인의 이름과 같은 이유는 그 불변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겠죠. 


이○○ 선생님에서 이○○ 부장 선생님, 이○○ 교감 선생님 등 교사는 열심히 일하는 것에 따라 진급도 하고 재능도 발산하는데 평생 전산 선생님, 사서 선생님, 돌봄 선생님으로 불리는 학교 비정규직은 언제 학교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을까요? 아니, 이름 세 글자가 불리는 날이 올까요?


“고생하셨습니다.”


계약 기간 마지막 날, “선생님 덕분에 큰 행사도 잘 치르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라는 교감 선생님의 상투적인 인사말을 끝으로 퇴직을 해요. 그때 불현듯 면접 때 교감 선생님이 “시키는 일 잘할 거죠?”라는 질문이 아니라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 펼치고 싶은 꿈은 뭐예요? 장점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의미 없는 생각을 해요.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싶은 A씨’는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곳,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졌지만, 비정규직 천만 시대에 그런 곳이 있을지 회의적이에요. 힘없이 핸드폰을 켜고 ‘사서직 공무원 시험’을 검색하며 정문을 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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