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임금] 최저임금 노동자가 말하는 최고임금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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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순  마트산업노동조합 이마트지부 부위원장



자본론


줄잡아 그의 재산이 5조 원을 넘는단다

그 돈은 일년에 천만 원 받는 노동자

50만년 치에 해당한다

한 인간이 한 세대에

50만년이라는 인간의 시간을 착취했다

50만년!       

(이하 생략)

- 백무산 시집 《인간의 시간》, 창작과비평사, 1996


5.공론장.jpg

조합원들과 함께한 ‘최저임금과 상관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2020최저임금 공론장’(@이마트지부)


아이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어떤 사람을 노동자라고 하는지 질문했더니 경비 아저씨와 마트 아줌마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마트 아줌마입니다. 경비 아저씨와 마트 아줌마 모두 최저임금 노동자입니다. 아이들 눈에는 땀 흘리고 몸을 움직여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보였을 겁니다.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모든 사람을 노동자라 하는데, 아이들 눈에 노동이라는 것이 이렇듯 힘들고 터부시되는 게 현실인 거죠.


과연 어린아이들 눈에 비친, 힘든 일을 하는 우리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정당하고 공정할까요? 대재벌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마트를 빛나게 쓸고 닦고 진열하는 노동을 하는 마트 아줌마에게 재벌이 줄 수 있는 최고임금은 해마다 나라에서 정해서 인상해줘야 그만큼만 올려 받는 최저임금입니다. 우리에게 그들이 준다는 최고임금과 그들 스스로 책정해서 그들 몫이라고 가져가는 최고임금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는 최고임금은 그들이 책정해서 가져가는 최고임금 이야기입니다.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최고임금에 대한 글을 쓰라고 했을 때, 말이 되나? 생각했습니다. 우린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는데 최고임금 그 어마어마한 수치를 본 적도 없고 얼마만큼의 양인지도 모를 돈을 받는 그네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감히 어찌 가늠이 된다고.


신세계 이마트, 무늬만 정규직인 비정규직 노동자 2019년 월급은 170만 원 조금 넘고 연봉 2천3백만 원입니다. 반면 2018년 신세계 이마트 정용진 일가 3인의 연봉은 97억 원입니다. 그것도 비등기 임원이라 회사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해도, 회사를 말아먹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으면서 받는 연봉입니다. 97억 원이라는 돈은 최저임금 노동자가 463년을 허리 한 번 못 펴고 동동거리며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최저임금 노동자인 우리는 퇴근 후에도 매장에서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카톡이나 전화로 지속되는 노동을 하고 그에 대한 소소한 책임도 져야 하는데,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재벌 대기업 부사장은 노동자가 살아보지도 못할 463년을 연봉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신세계 이마트는 2019년 경영이 어렵다며 성과급 81만 2,000원 받는 전문직 직원들에게 5퍼센트 삭감한 72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신세계 이마트 직원들은 올해에도 늘어나는 매장과 줄어든 인력으로 날마다 더 힘들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한번이라도 더 웃고 그보다 더한 친절로 응대해야 매출이 늘어난다는 상사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애썼지만 한해 유일한 여윳돈이 될 성과급마저 줄어드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회사는 늘 유통업이 위기라고말합니다. 그러나 신세계 이마트 정용진의 연봉이나 이익배당금은 위기였던적이 없습니다.


요즘 ‘살찐 고양이법’이라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살찐 고양이는 탐욕스럽고 배부른 자본가나 기업을 지칭하는말로 기업 임원과 일반 직원의 급여차를 규제하는 법을 말합니다. 프랑스의경우 급여차를 20배 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했고, 미국은 매년 CEO 연봉이 직원 중간 값의 몇 배인지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최고임금 규제법’을 발의했지만 최고임금의 또 다른 벽인 국회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립니다. 사용자 측과 노동자 측, 그리고 공익위원들이 동수로 모여서 논의하고 결정하지만 대부분 사용자 측의 의견이 많이 반영됩니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다소 큰 폭으로 인상되어서 자영업자 다 망한다는 프레임에 걸렸습니다. 올해는 속도 조절하라는 아우성으로 소폭 인상하는 결과가, 그것도 기업들의 삭감안을 뚫고 가까스로 나왔습니다. 이렇듯 기를 쓰고 내리기만 하려는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국가가 임금 결정에 개입하지만, 기를 쓰고 올리려고만 하는 사용자들의 최고임금에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과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국가가 재벌 입장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그들만 배불리는 일에 눈감고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회도 살찐 고양이들이 사는 집단입니다. 노동자 편이 아니면서 노동자들의 표를 구걸하다가도 그곳에만 들어가면 사용자 편이 되어 그들에게 불리한 모든 것을 막아줍니다.


5.선전전.jpg

적자사업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인력 감축하려는 사측에 맞서 선전전을 펼치는 조합원들 (@이마트지부)


오늘 최고임금에 대한 글을 준비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최고임금의 성 같은 대재벌의 지하에서 근무하는 우리가 최저임금 노동자의 대명사로 불릴 것인지를, 정당하게 나누어 갖고 공정하게 나누어지는 세상이 언제나 올 수 있을까를.


이제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최고임금을 이야기하라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없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는 사람 심정을 모릅니다. 자기 월급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걸 느껴보지 못한 최고임금 재벌들의 월급을 결정하는 건 바로 최저임금 노동자여야만 합니다. 우리들만이 그들의 임금을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같이 많이 가져가려는 사람들은 나도 이만큼, 너도 이만큼, 서로 많이 가져가자고 결정할 것입니다. 주는 대로 받으면서도 나라 눈치, 회사 눈치, 소상공인들 걱정에 내 아이들 미래까지 걱정해가며 최저임금 받았던 우리는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갖 것들에 대한 걱정들을 모아서 최고임금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공정한 일인가 하는 생각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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