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해외 사회적 대화와 시사점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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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적 대화란 대체로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사회 세력이자 이익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 자본의 조직적 대표들, 그리고 정부가 함께 모여 전개하는 정책 형성 활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이 열리는 이유는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정치적 의사 결정을 보다 원활히 할 수 있고, 또 보다 타당하고 수용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이해당사자, 정책당국자는 물론 사회구성원 전반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 사회적 대화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시스템을 운용해 나가는 민주적 거버넌스democratic governance의 한 방편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 기제들은 부르주아 상공인들의 전제적despotic 시장 지배가 초래하는 사회적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정부와 노동조합이 함께 참여해 시장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려는 시도를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사회적 대화가 주로 관심을 갖는 영역은 노동력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 바로 노동시장이다. 그렇지만 노동시장은 언제나 생산물시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생산물시장의 변화는 노동시장에 직격으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가 다루고 규제하려는 시장은 노동시장과 생산물시장 모두를 아우른다. 각각 정부의 정책 영역으로 구분하면 전자를 노동 정책 내지 고용 정책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산업 정책 내지 경제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 대한 국가와 사회 개입이 높은 나라들을 흔히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라고 부른다. 우리가 아는 중서부 대륙 유럽 국가들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경제체제는 이익집단 간 조율 메커니즘이 넓고 깊게 제도화되어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산업 수준에서 조직화된 노사 대표들 간의 파트너십이 잘 발달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서유럽의 조정시장경제에서 사회적 대화는 자연스럽고 또 나름 원활히 작동하면서 대중으로부터도 보편적으로 선호 받는 거버넌스 기제다. 국가 개입이 지배적인 한국이나, 중간집단이나 국가 개입 모두를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미국과 같은 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는 유럽을 토양으로 하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를 단지 특수한 조건과 규범을 지닌 지역의 독특한 시도라고 그 의미를 축소, 폄하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는 서양의 것이며 동양은 오랜 전통의 군주제가 적합하다는 식의 오도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적 거버넌스 기제로서 사회적 대화는 정책 형성 방식이기도 하지만 이해실현 내지 이해대변interest representation 방식이기도 하다. 흔히 다원주의pluralism냐 조합주의corporatism냐를 놓고 이해대변 시스템을 구별하고 거기에서 이익단체들의 역할을 구분한다. 사회적 대화는 조합주의적 이해대변과 관련성이 깊다. 특히 강한 조합주의에서 이익단체들은 비단 정책형성자뿐 아니라 정책의 실행 내지 집행자로서 역할을 한다. 


다원주의적 이해대변 하에서라고 사회적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익단체들은 어디까지나 의회의 정당들에 대한 로비의 주체로 존재한다. 국가가 이익단체들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 결정의 한 국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합주의적 이해대변 체계 하에서의 사회적 대화에 비하면 그것의 역할과 위상은 훨씬 약하다. 


사회적 대화가 민주적 조합주의의 이상적인 형태로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익단체들의 조직 구조가 중앙집권화 되어 있고 정당들과의 정치적 네트워크가 긴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이론가들의 분석 결과다. 정치시스템상으로나 노사관계 제도상으로 조합주의적 이해대변에 적합한 구조적 조건을 지니고 있지 못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사회적 대화가 강력한 조합주의로 기능하기 어렵다.2)


사회적 대화는 대개 사회 협약social pacts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것이 단지 정치적 장식물이 되거나, 상징적 효과를 유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현장의 노사는 물론 국가에 의해 수용되어 실행되기 위해서는 노사 간의 ‘정치적 교환’이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밀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특정 국면에서 노가 사의 이해를 상당히 받아들이고 사도 노의 요구를 상당히 수용한 방식이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노사단체로 하여금 상당한 내부 정치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심각한 경제위기 같은 상황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밀도 있는 정치적 교환은 일상화되기 힘들다. 많은 나라에서 사회 협약 체제가 어느 정도 지속한 후에 붕괴하거나 소멸하는 이유에는 이러한 어려움이 내재해 있다. 


사회적 대화의 위상과 기능에는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다. 조합주의적 조직 구조와 무관하게 사회적 대화의 결실체로서 사회 협약은 다양한 국면에서 출현할 수 있다. 한국에서 90년대 민주적 노동개혁과 신자유주의 노동개혁 과제가 충돌했을 때 김영삼 및 김대중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한 것이 한 예이다. 스페인도 1970~80년대에 우리의 90년대와 비슷한 맥락으로 개혁을 시도하면서 사회 협약 활성화를 경험한 바 있다.


90년대 이후에는 많은 나라들, 특히 조합주의적 이해대변 구조를 갖추었다고 말하기 힘든 나라들에서 사회 협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이었으며, 학자들은 이를 ‘경쟁력 코포라티즘competitive corporatism’이라고 칭했다.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잘 자리 잡고 기능했는지는 단지 사회적 대화를 운용하는 기구, 즉 대화의 플랫폼이 얼마나 잘 제도화되어 있느냐 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누가 뭐래도 사회적 대화의 선진국이다. 기업 수준의 노동이해대변이 종업원평의회 제도화를 통해 발전했고 그를 통해 공동결정이라고 하는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대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거대한 산별노조들이 임금 교섭의 주도권을 쥐고 노동력의 가격 결정에 국가 간섭 없이 사측 대표들과 교섭을 통해 깊게 간여한다. 고용, 노동, 사회 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기구들은 상식적으로 노사정의 협치로 작동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으로 잘 ‘배태된embedded’ 나라가 바로 독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독일에는 네덜란드나 한국처럼 중앙에서 독자적인 법률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대화기구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독일인들 특유의 중앙정부 과잉화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나치의 비극을 겪은 2차 대전 후 독일은 많은 것들을 지방분권화시키려 했고 중앙에 상징적인 정상체제를 일상화하는 것에 심리적인 반감을 지녔다. 어찌 보면 사회적 대화를 현장과 지역에서 실질화시키며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에, 굳이 중앙에 그런 기구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독일 같은 나라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의 형식적 제도화는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대화는 ‘관계’의 문제이고, 필요성에 대한 ‘집단적 성찰’의 결과임을 독일은 알려준다. 


실제로 개념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중앙의 사회적 대화만이 전부는 아니다. 업종별 단체협약 체결,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노사정의 공동조율 노력, 그리고 기업 수준에서 노동의 이해대변체와 사용자와의 협의와 교섭 등도 모두 사회적 대화의 일환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3) 최근 이탈리아의 경우도 지역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되는 양상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도 현재 상생형 지역일자리 정책을 통해 지역 사회적 대화 활성화의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어떤 층위의 사회적 대화가 민주적 거버넌스 기제로서 수준 높고 의미있는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참여주체들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즉 이해대변의 대표자들을 어떻게 정하느냐, 그리고 참여하는 주체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ILO 기본협약조차 비준하지 못하고 노조 조직률이 약 10퍼센트 수준이며 그나마 기업별 노조가 주를 이루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사실 사회적 대화가 정책 형성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사회적 대화에 너무 큰 기대를 걸고, 경직되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임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 정책가와 이론가들은 신자유주의 폐해와 한계에 대한 성찰 속에서 ‘포용적 성장’을 강조하며 불평등 해소가 필요함을 보편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화digitalization의 도전 속에서 일하는 방식 쇄신과 일자리 질서 재구성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으며, 이미 깊게 글로벌화된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 하에서 일자리에 대한 초국가적cross-border 공동규제 메커니즘의 발전에 대한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는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적 대화가 이러한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해가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나라는 잘 나타나고 있지 않다. 경제의 디지털화와 관련해 독일이 그나마 산업4.0을 넘어 노동4.0을 만들어내면서 거대한 사회 협약을 체결하는 데에 성공한 정도이다.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s에서 일자리 질이나 노동권과 관련해서는 ILO가 나서서 초국가적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동의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노사정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으로까지는 힘있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의 사회적 대화는 노동존중사회를 기치로 포용적 성장의 작동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시도로 의미있게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 듯 아직까지 그러한 미션을 담당하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힘있는 사회적 합의나 타협의 결과물을 내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세계사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정치경제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차분하게 사회적 대화의 ABC부터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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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의미에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는 제대로 제도화되지 못했다.

2)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조차 거북스럽게 생각하며 거부하는 민주노총의 태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대표적으로 한국의 노사협의회는 30인 이상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사회적 대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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