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노동인권교육] 서울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어디쯤?

by 센터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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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성동근로자복지센터



노동인권교육의 변화


‘청소년 노동인권’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5년 남짓인 것 같다. 그때만 해도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노동’이라는 표현은 매우 불편한 단어라서 ‘근로’라는 말로 어색하게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공공기관이 주최한 교육에서는 교재에 ‘노동’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제작한 교재를 전량 폐기한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청소년 노동인권’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청소년에게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지난 해 한 공공기관 교육에서는 사회자가 나서서 이제 ‘근로’가 아닌 ‘노동’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도 했다. 격세지감이다.


더 나가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활성화하는 노력들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노동인권교육활성화조례’를 만들어 고등학교에 의무적으로 학기당 2시간의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나 자치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등에서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중요한 사업으로 배치하고 있으며 광주시나 전라남도는 청소년노동인권센터를 만들어 교육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연계하고 있다. 언급되지 않은 많은 공공기관, 노동 관련 기관에서도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활성화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인권이라는 주제로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 발품을 팔며 학교 문을 두드렸던 10여 년 전의 상황과 견주어보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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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인권교육


서울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우선 정부 차원의 노동인권교육 상황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중 노동존중 사회 실현(100대 국정과제 중 63번) 항목 안에 학교 노동 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 있고,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의제별 위원회 중 ‘노동인권교육 강화위원회’ 설치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현재 정부 차원의 노동인권교육은 고용노동부가 주무부서이며 주로 고용노동연수원을 통해 강사 양성, 콘텐츠 생산, 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18년 시와 서울시교육청이 맺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안전 노동인권 보호 업무협약’을 기초로 작년 39개 학교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며, 2021년까지 연차별로 65개 학교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서울노동아카데미라는 사업을 통해 학교 등으로 찾아가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실재 업무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수행하는 상황이며, 자치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나 지역별 청소년노동인권단체들과 연계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시장의 노동존중특별시, 유니온시티 등의 발언과 맞물리며 노동인권교육의 내실있는 확대를 요구받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노동인권전문관을 배치해 노동인권 전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노동인권교육활성화조례’를 통해 산업수요맞춤형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 일반고등학교 중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재학생에게 학기당 2시간, 총 12시간의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실재 교육은 2017년까지는 학생인권교육센터가 지역별 청소년노동인권단체 등과 연계해 직접 주관해오다가 작년부터 학교 선택 공모사업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그 밖에 교육청은 교육자료 개발, 교사연수 등을 통해 교과 과정 내에서 노동인권교육이 시행될 수 있게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흐름이 정착되고 확산된다면 장기적으로 노동인권교육이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되는데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의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사실상 수행하는 곳은 서울노동권익센터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자체 노동인권교육 계획 외에도 서울시의 ‘서울노동아카데미’ 사업이나 앞서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협약을 통해 추진한 특성화고 교육을 실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 지역의 교육 수요를 발굴하고 연계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서울시의 민간위탁 기구다 보니 서울시의 실적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지만 실적 요구와 내실 있는 교육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자치구, 지역 노동단체 노동인권교육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외에도 자치구나 지역별 노동단체들이 다양한 노동인권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자치구별로 설치된 노동자종합지원센터(구 노동복지센터)들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주요 사업으로 배치하고 있다. 직접 교육활동가 양성 과정을 진행하거나 지역의 청소년 노동단체들과 연계해 교육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노동인권교육을 통해 만난 청소년들과 후속모임을 만들거나 노동 현황을 파악하고 주기적인 상담과 지원 활동도 하는 등 입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서울시나 서울노동권익센터의 교육을 지원하며 지역사회에 돌파구를 만들고 교육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지역별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노동인권단체들도 교육 활동에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2년경부터 자치구별로 하나 둘씩 만들어진 청소년노동인권단체들과 기존 단체 중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을 주요 활동으로 자리매김한 단체 등 10여 개 단체들이 연계해 2017년 ‘서울청소년노동인권지역단위네트워크(이하 서청지넷)’을 구성했고,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노동자종합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교육, 상담, 후속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광역시도별로 활동 중인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들과의 연계를 통해 특성화고 파견형 현장실습 문제 등 주요 이슈에 대한 대응에도 참여하고 있다. 아직 집계 중이지만 서청지넷을 통해 수행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학급을 기준으로 1,250여 학급으로 취합되고 있다. 서울 중·고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 정도로 잡았을 때 3만 1,250여 명 정도의 청소년이 이들과 함께 노동인권교육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자종합지원센터 등의 공식적인 노동인권교육 사업 예산 외에도 교육혁신지구, 노동조합의 사회공헌기금 등을 통해 360여 학급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영등포·마포·은평·용산·성북 등 지역에서는 교육혁신지구 사업으로, 성동·광진 등 지역에서는 노동조합과 연계를 통해 더 풍부한 교육 활동을 진행했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과제


이처럼 서울지역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매우 다양하고 또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교육 진행뿐만 아니라 내실 있는 교육을 위한 교육 콘텐츠 개발, 교육활동가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이 조직적으로 수행되고 있으며, 노동인권교육 교과화를 위한 제도 개선 요구, 교사연수, 교재 개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의 계기는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설치되고 지역별로 청소년 노동인권 단체들이 만들어졌던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고, 이를 제도화하려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역할이 컸다.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이 제도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넘어야 할 과제들이 계속 나타고 있다.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교과 과정에 대한 요구가 계속 높아지고 있으나 제도권의 부응은 여전히 답답하다. 교과 과정에 대한 직접적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고 사업 차원에서만 노동인권교육을 만들고 있다. 변죽만 울리는 것이다. 노동은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일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관계이므로 노동인권교육은 보다 더 친밀해져야 하고 일상화돼야 한다. 노동인권교육의 확산을 넘어 본질적인 제도화를 마련하는 전환의 시기를 맞아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기관별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사업을 주요 사업 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정작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담당하는 전담 인원이 없고, 서울시교육청은 노동인권전문관 1인이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교육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노동인권교육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강화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에 맞는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행정의 성과주의적 태도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는 지난 해 특성화고 노동인권교육을 강당 등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집체교육을 추진했다가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가들의 반발을 샀다. 노동인권교육은 현실 노동 안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일 텐데, 집체교육으로는 그런 것이 달성될 리가 없다. 몇 명이 노동인권교육에 참여했다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청소년이 교육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그만큼 예산을 늘리면 될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조례로 확보된 시간을 어떻게 채울 지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한 학기 2시간, 3년간 12시간은 어렵게 확보한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현재 그 12시간에 대한 교육 내용과 형태 등에서는 아무런 정함이 없어 자칫 사이버 교육이나 부실한 내용으로 진행되거나 혹은 사실상 취업교육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학교별 특성이 있을 수 있으나 교육청 차원에서 강화하겠다는 비전이 있는 만큼 최소한의 공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12시간에 대한 커리큘럼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 조건과 환경 변화 노력 함께해야


교육 조건과 환경에 대해서도 고민된다. 노동인권교육은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공간에서의 인권 감수성이 일터에서의 노동인권 감수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할 때 더 실천적인 힘이 생길 수 있다. 예로 학교에서 학생이 일상적으로 강압 등 인권 침해를 겪으며 ‘가만히 있으라’에 익숙해져 있다면 일터에서의 부당함에도 가만히 있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인권교육은 교육 참여자가 현재 처해있는 공간 특성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실천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인권교육은 일회성 교육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실천적인 힘을 만드는 교육이 불가능하다. 충분하고 안정적인 교육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꼭 외부 강사가 아니어도 좋다. 아니 가능하다면 교사들이 직접 하면 더 좋다.


또 학교라는 공간에서 노동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못 배운’ 사람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재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공간 안에도 숱한 비정규직이 차별과 인격모독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파견형 현장실습처럼 저임금 노동착취 현장으로 학생들을 내몰기도 한다. 어쩌면 현실교육은 한편으로는 노동인권교육을 얘기하면서 일상적으로는 노동혐오를 교육하는 이율배반적인 곳은 아닐까? 그 속에서 외부 강사의 일회성 교육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노동인권교육이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노동혐오적인 교육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민간과 행정이 협력하여 추진하고 있다. 민간의 창의적인 접근이 제도권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협력이라는 것이 상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하다면 지속되지 못하기 마련이다. 행정과 민간의 속도와 보폭, 방향성은 서로 다르다. 행정이 빠른 보폭과 속도로 표준화된 제도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민간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와 차분한 보폭으로 창의적인 영역을 만들어가게 된다. 서로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각자의 정체성에 맞는 역할을 유지했을 때 행정은 훌륭한 성과를 남기고, 민간은 자생성 있고 활력 있게 활동을 펼칠 수 있다. 그 밖에도 서울지역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과제는 더 많지만 지면의 한계가 아쉽다.


지난 9일 고 김용균 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태안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사망한 지 62일만이다. 노동 현장은 여전히 암흑인데 노동인권교육만으로 노동인권을 다 말할 수는 없다. 우리 곁의, 우리 공간의 또 다른 김용균이 있음을 인식하는 교육이 노동인권교육이어야 하며,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교육이 노동인권교육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내 공간의 주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내는 재기발랄한 교육이 노동인권교육이어야 한다. 노동인권교육이 많이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좀 더 자리 잡기 위해서는 노동인권교육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인권교육의 전환적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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