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빼기'사회]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 1년 반, 어떻게 볼 것인가1)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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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기 한신대 교수


1.

스스로 촛불정부라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되었다. 5년 임기의 반도 지나지 않은 현재의 시점에서 노동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일면 섣부를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 수구정부들의 정책과 크게 다르고 촛불혁명의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설적인 평가가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현재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인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후한 점수를 부여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기만적이며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모두 나름의 근거들이 없지 않다. 그리고 기존 논의들은 대체로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핵심 정책들과 그 진행 과정을 대상으로 삼아 평가하였다. 크게 보면 보다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평가는 아니었다.


이 글은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을 보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간략히 이해하고 전망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스로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결국 체제 전환적 노동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목표를 평가의 기준으로 두고 현재까지 상황을 평가하고 앞으로 남은 과제와 그 어려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또 이런 정치지형에서 민주노조 운동은 새로운 전략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결론 삼아 제시할 것이다


1.토론회.jpg

지난 5월 열린 ‘문재인 정부 1년 노동 정책 평가와 과제’ 토론회


2.

문재인 정부가 대선부터 현재까지 약속하고 있는 선거 공약, ‘노동존중사회 건설은 분명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크게 일자리 정책과 비정규 정책 그리고 노동기본권 및 노사관계 정책 등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내용과 정부 출범 이후 정책 현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일자리 정책은 새로 설치되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중심으로 2022년까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민간부문 일자리 5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또 이 과정에서 노동시간을 연 1,800시간으로 단축하고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 비율을 3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상향조정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문제에 관한 정책 실행 결과는 주지하듯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경기 악화 등으로 현재까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차별 해소와 비정규 노동 정책에서는 특히 획기적인 공약이 발표되었다. 오랫동안 여러 정부들이 거부했던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을 수용했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선언을 발표한 바 있었다. 또 상시 지속 생명안전업무의 정규직 직접고용 원칙도 확인했으며 원청의 공동사용자 책임성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놀라운 급진적 전환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컨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조차 이런 제도개선 공약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정책 실행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가 드러났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직후에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정책적 후퇴가 나타난 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에서 자회사 방식을 광범하게 도입한 점에 있었다. 또 최저임금 1만 원은 약속기간 내 이행이 어렵다고 발표하였는데 단순한 시기 조정이기보다 정책적 후퇴로 이해될 수도 있었다


셋째, 노사관계 정책에서도 중요한 공약이 많이 발표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노동 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여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점이었다. 적폐 청산은 그 기초 작업이었으며 단결권 관련 ILO기본협약 비준, 산별 교섭 확대 제도 도입,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개선, 부당 행정지침 폐기,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노조 조직률 제고방안 마련 등의 굵직한 공약들이 다수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정책적 성과는 미미하였다. 새로 구성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제를 개발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일부 진척은 있었지만 그 결과가 나온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후퇴 양상이 여러 군데서 드러난 점이었다. 우선 적폐의 대표적 사례였던 전교조 합법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부 장관 교체나 후반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구성에서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

집권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평가는 쉽지 않다. 예컨대 정책 공약 수준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지향은 과거 볼 수 없었던 개혁적 성격의 것이었던 반면 집권 초반기 정책 실행은 여러 모로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현재 상황이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평가하고 싶다. 2005년 경 노무현 정부의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공약이 크게 후퇴했던 것과 동일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치 정세의 몇 가지 구조적 조건들 때문이다.


먼저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 정부가 개혁 정책을 포기하는 데에는 상당한 정치적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경기 후퇴와 대자본의 자본 파업, 그리고 최저임금을 둘러싼 정치적 저항이 겹치면서 올해 중반 정부는 심각한 정치적 수세에 몰렸다. 그럼에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노동개혁의 정치 지향을 포기하지 않은 데에는 이런 정치적 지형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촛불혁명이 노동개혁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은 지난 20년 신자유주의정책과 사회양극화로부터 분출한 대중혁명이었다. 또 직접적으로도 민주노조 운동을 중심으로 민중 운동이 촉발한 대규모 사회 운동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수구정부에서 더욱 악화된 노동 기본권과 노동 탄압에 대한 반격의 과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임을 자인하는 정치적 지형 위에서 노동개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둘째, 노동개혁 정치에서 정치적 저항세력인 수구세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약화되어 있는 정치지형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촛불 과정에서 대 독점자본 재벌세력은 정치적 위기에 내몰려있고 여론을 주도하던 친 재벌 수구언론의 힘도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이는 2000년대 중반 형성되었던 신자유주의 대 동맹의 지배연합이 일시적으로나 해체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수구정치세력과의 전선 형성으로 말미암아 문재인 정부는 2022년 재집권 기획에서 노동개혁의 전략지향을 포기하기 힘든 조건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셋째, 집권세력의 성격도 과거의 개혁 국면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손쉽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떤 시기의 자유주의세력보다 개혁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이들은 자유주의 보수세력으로서 기존 경제사회정책의 전환 없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없다는 정치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은 노무현 정부 노동개혁 실패 과정을 직접 경험한 집단으로 그것이 야기하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부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미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북핵 문제에서 상당한 개혁적 성과를 만든 것도 노동개혁의 후퇴를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노동개혁의 주체 중 하나인 노동 운동의 조건도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민주노조 운동은 촛불주도세력의 핵심이었다. 또 오랫동안 수세기에 내몰려 있었던 민주노조 운동은 새로운 전환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운동역량을 제약했던 사회적 합의주의 갈등이나 진보정당 내의 이념 균열 문제의 강도는 최근 들어 크게 약화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세기에 국가와 자본의 강한 억압을 견디면서 조직 내부 역량도 크게 신장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이 줄어들고 민주노총의 조직 확대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최근의 정세 변동은 이런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노동정치의 구조적 지형에서 이상의 긍정적 요소들과 더불어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동개혁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 정권 초반기에 약속한 노동개혁이 대개 노동개악으로 귀결되었다는 점, 나아가 현 집권세력의 계급적 성격 등을 생각해보면 낙관이 금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현재 지배블록 내의 헤게모니분파가 균질적이지 않다. 즉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내에서 개혁분파 주도성은 매우 불안정하며 다수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분파라는 점이다. 또 관료기구들의 반개혁성도 다시금 최근의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 상황과 남북관계의 전개에 따라 반개혁세력의 득세 및 개혁국면의 급속한 후퇴 가능성도 항상 열려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불어 현재까지 대체로 숨죽이고 있는 재벌세력과 보수언론의 역공세도 국면 변화와 시간 흐름에 따라 재개될 것이며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4.

이상과 같이 긍정적 부정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현 정세라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민주노조 운동의 전략적 대응 방향은 향후 노동정치 전개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민주노조 운동 지도부의 정치적 지도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제안하기 전에 정세 인식과 관련한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먼저 민주노조 운동은 현 노동개혁 국면의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촛불혁명부터 현재의 개혁의제들을 사실상 만든 주체는 자유주의세력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이라는 자기인식이 그것이다. 또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의제들은 민주노조 운동이 확보한 채권목록일 것이므로 이를 위한 대화나 교섭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개혁후퇴 시 필요한 강력한 투쟁도 당연히 핵심 주체전략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조 운동이 수행해야 할 전략 방향 세 가지를 제안하면 먼저 전략적 집중이다. 모든 요구를 나열하고 그 중 하나라도 관철되지 않으면 투쟁으로 나아가는 전략운용은 현 정세에서는 매우 부적절하다. 이런 면에서 민주노조 운동은 경제적 의제보다 정치적 제도적 의제, 단기적 의제보다 중장기적 의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구체적 교섭 과정에서 이 둘은 교환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필자의 판단으로는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문제보다는 비정규 노동자 사용사유제한이나 ILO기본협약 비준이 훨씬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민주노조 운동에서 최고의 전략적 과제는 비정규 연대체제로의 노동체제 전환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둘째, 사회적 대화 참가 전략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침을 세워야 한다. 필자는 전술적 참가정도가 적절한 것으로 본다. 전술적 참가이므로 향후 상황 변동에 대한 조직적 판단에 따라 불참 결정이 항시적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판단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참가와 불참의 요건들을 조직 내에서 명료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과 관련해서 수세기에 확산되었던 민주노조 운동 내의 생디칼리즘 또는 투쟁만능주의, 그리고 전투적 경제주의 경향을 경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셋째, 노동개혁 국면을 민주노조 운동 내부 혁신사업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노동개혁 과정에서 역량과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자기 혁신이 꼭 필요하다. 오랜 수세기동안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던 제반 전략적 과제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예컨대 산별노조 운동과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새로운 재출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된다. 전자에서는 11노조, 지역지부원칙, 전략조직화사업의 확대, 산별노조와 총연합단체 및 지역지부 관계의 재설정 등의 큰 과제들이 포함된다. 후자에서는 노조 정당 관계의 재정립, 노동 운동 이념노선 재정립, 현장 수준의 정치조직화 등이 중요하다. 요컨대 1단계에서 마무리되지 못했던 수많은 조직 내적 혁신과제들이 제기되고 이것이 노동개혁 국면에서 적극 실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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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노중기(2018), ‘문재인정부 노동 정책 1년 : 평가와 전망’, 한국산업노동학회 편, 《산업노동연구》, 제24권 2호에 실린 논문을 간략히 요약 정리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논문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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