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빼기'사회]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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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 평가1)

황선웅 센터 정책연구위원장,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조교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이 매우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다. 지난해 4월 대선공약을 통해 대규모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이 첫 외부 공식행사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7월에는 전환 대상, 기준, 추진체계 등을 구체화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10월에는 기관별 특별실태조사 결과와 연차별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12월에는 정규직 전환자 표준인사관리규정 개정안과 주요 5개 전환 직종에 대한 표준임금체계를 발표했다.
1단계 전환은 총 853개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2020년까지 4년에 걸쳐 진행된다. 2018년에는 지방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과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를 대상으로 2단계 전환이 추진되며, 2019년에는 민간위탁기관을 대상으로 3단계 전환이 추진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유사한 정책이 추진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이전 정책과 비교해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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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찾아가는 대통령 1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간담회를 열었다.(@공공운수노조)

전환 규모는 역대 최대

우선, 전환 규모는 1단계 대상자만 고려해도 역대 최대 수준인 17.5만 명으로 확대되었다. 고령자 등 추가 전환 가능 인원과 2~3단계 전환 대상자도 포함할 경우에는 그 수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정부의 전환 규모는 노무현 정부 10.4만 명, 이명박 정부 6.4만 명, 박근혜 정부 8.1만 명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7년에 5,177명을 전환할 계획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보다 10배 이상 많은 61,708명을 2017년에 전환했다. 대책 추진 시점 비정규직 규모 대비 전환율도 이번 정책이 42.1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이전 정책의 경우에는 전환율이 20~25퍼센트 수준이었다.

세부 지침에서도 진일보한 변화가 많았다. 가장 큰 변화는 직접고용 기간제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정책과 달리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전환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유형의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가 다른 유형의 비정규직 활용을 늘리는 풍선효과를 억제하고 비정규직 규모 전체를 규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최근 몇 년간 빠른 속도로 증가한 주당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전환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이번 정책이 처음이다.

상시지속성 판단기준도 완화되었다. 연중 계속 여부 판단기준은 10~11개월에서 9개월로 단축되었고, 과거 2년 이상 지속된 업무여야 한다는 요건은 삭제되었다. 현행 기간제법은 업무 성격이 아닌 개인의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최초 2년간의 기간제 사용은 아무 조건 없이 허용하고 그 이상의 사용만 사후적으로 규제한다. 계약기간 종료 후 다른 기간제로 교체해 비정규직 사용을 이어가도 전혀 규제하지 않는다. 그와 달리 이번 정책의 과거 2년 근속 요건 삭제 조치는 현 재직자의 근속기간과 상관없이 업무 자체가 2년 이상 지속되는 업무인지를 기준으로 기간제 사용을 선제적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사용사유제한에 근접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전환 예외사유를 현행 17개에서 5개로 축소한 것, 기간제 계약 종료 시점이 아니라 연내 완료를 목표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환토록 한 것, 비정규직 신규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비정규직 채용 사전심사제를 도입한 것, 처우개선 조치로 연 30만 원이던 복지포인트를 연 40만 원으로 10만 원 인상하고 월 13만 원의 식비를 추가한 것, 용역업체의 이윤·일반관리비·부가세를 간접고용 비정규직 전환자 처우개선에 활용토록 한 것, 전환 심의·결정 과정에 전환 당사자와 노동조합 참여를 명시한 것, 생명·안전 업무 간접고용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규정한 것 등도 이전 지침보다 전향적인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비정규직 제로? 이번에도 절반 이상을 전환 대상에서 제외

하지만 기존 대책들의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 문제 중 상당수는 이번에도 극복되지 못했다. 
첫째, 이번에도 전체 비정규직의 절반을 넘는 24.1만 명(57.9퍼센트)이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상시지속적 업무임에도 60세 이상, 교사·강사, 산업수요 변화, 민간전문성 활용 등의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인원 역시 14.1만 명에 달하며, 이는 전체 비정규직의 33.9퍼센트, 상시지속적 업무 비정규직의 44.6퍼센트에 해당한다. 가이드라인 자체의 모호성과 기관별 자의적 해석, 중앙부처의 관리·감독 소홀 등으로 인해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비정규직 신규 유입 억제를 위한 중앙부처 수준 정규직 정원 및 예산 확대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번 정부뿐 아니라 과거 모든 정부도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겠다는 목표 하에 비정규직 전담 및 총괄 부서 지정, 특별 실태조사 실시, 기관별 감시·감독 강화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 신설 및 결원 발생시 정규직 채용 원칙 확립, 무기계약직 전환 업무 비정규직 사용 금지, 상시지속적 업무 기간제 비율 목표관리제(공공기관 정원 5퍼센트, 지방공기업 정원 8퍼센트) 도입 방안도 제시했다.하지만 이러한 개별 기관 수준 비정규직 유입 억제 정책은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2004~2016년 사이에 총 20만 명 이상의 기간제 노동자가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는 2003년 23.4만 명에서 2017년 41.6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번 정책에서 새로 도입된 비정규직 채용 사전심사제 역시 개별 기관 수준 조치라는 점에서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같은 중앙부처 수준에서 정규직 정원과 예산이 확대되지 않으면 개별 공공기관은 업무량과 인력 수요가 증가할 때 다양한 예외규정을 활용해 또다시 비정규직 고용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셋째, 기관별 자의적 행태에 대한 규제가 미흡했다. 자율적 추진이라는 원칙이 본래 지침보다 후퇴된 전환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교육기관 비정규직 전환율은 전체 평균 42.1퍼센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퍼센트에 그쳤다. 한 가지 원인은 기간제 교사와 영어회화강사 등이 전환 대상에서 대거 제외되어 직접고용 비정규직 전환율이 14.5퍼센트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전환율도 38.4퍼센트로 전체 평균 60.3퍼센트에 크게 못 미쳤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업무는 청소·환경미화·경비·시설관리·사무보조·조리원 등에 집중되어 있고 기관 간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기관 간 전환율 격차 중 상당부분은 인적 특성 및 업무 특성 등의 객관적 사유가 아닌 기관별 자의적 판단과 소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임금·불평등 개선 조치 미흡

넷째, 고용계약기간 이외의 노동 조건 개선 조치도 미흡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일단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추후 처우개선·차별해소 조치를 추진한다는 단계적 접근법은 노무현 정부 2006년 정책 때 처음 등장한 후 과거 모든 정책에서 반복된 접근법이다. 하지만 일부 자치단체와 기관 등의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역대 어느 정부도 전환자 처우개선 및 차별해소를 위한 후속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2011년 정책을 통해 연 30만 원의 복지포인트와 연 80~100만 원의 명절상여금을 지급키로 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책의 전환자 처우개선 조치도 복지포인트를 연 10만 원 인상하고 월 13만 원의 식비를 추가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편, 전체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이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미전환자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별다른 조치도 제시되지 않았다.

다섯째, 전환 규모 확대 부담을 완화하려는 목적에서 이전 지침보다 후퇴된 조치도 도입되었다.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과 경쟁채용 방식을 정규직 전환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 정책이 처음이다. 공공부문 저임금 노동자 임금 결정 기준으로 노무현 정부 2006년 정책에서 도입되었던 민간 유사직종과의 비교 및 시중노임 적용 조항과 이명박 정부 2011년 정책에서 도입되었던 비정규직 경력 인정 조항은 이번 정책에서 삭제되었다. 이를 대신해 국민부담 최소화 원칙, 기관 예산사정, 전환 전 임금체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명시하고 최저임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표준임금체계를 제시한 것은 이전보다 후퇴된 조치로 볼 수 있다.

여섯째, 비정규직 당사자와 노동조합 참여를 요구한 것은 절차적 민주성을 제고하기 위한 긍정적 조치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추진 과정에서는 그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생명·안전 업무의 직접고용 채용 의무를 명시한 것 역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바람직한 조치로 볼 수 있지만, 구체적 기준이 부재해 기관별로 다르게 적용되거나 그 외 업무는 자회사를 설립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정책의 시금석으로 주목 받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기관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전체 60여 개 용역 1만여 명의 비정규직 중 8개 용역 854명을 생명·안전 업무 대상자로 분류했다. 반면, 같은 용역의 공동연구기관으로 참여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는 16개 용역 6천여 명을 생명·안전 업무 대상자로 분류했다. 최종적으로는 노·사·전문가협의회에 의해 4개 용역 3천여 명이 직접고용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러한 사례는 생명·안전 업무 범위를 둘러싼 기관별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진정한 시험대는?

패러다임 전환은 기존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유사 사례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틀 자체를 바꾸는 것, 즉 기존의 지배적 틀을 새로운 틀로 교체하는 것을 뜻한다. 문재인 정부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진정한 시험대는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규모가 아니다. 과거 다른 정부도 집권 첫해 주요 노동 정책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을 선택해 수만 명의 기간제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과거 모든 정부에서 유의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공공부문 고용구조 정상화, 공공서비스의 질 제고, 노동 기본권 확대, 저임금·불평등 해소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고용형태 전환과 부분적 처우개선 조치만으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과거 수차례에 걸친 비정규직 대책을 통해 입증되었고 지난 1년여간의 정책을 통해 또다시 확인되고 있다.

향후 어떠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지냐에 따라 이번 정책이 민간부문에 미칠 파급효과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민간부문은 공공부문과 달리 정부 가이드라인만으로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을 확산시킬 수 없다. 대선 공약과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에서 제시한 것처럼 비정규직법 개정을 통한 사용사유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외형상 정규직 전환율이 높아지고 비정규직 비율이 감소해도 직접적 차별해소 조치가 병행되지 않으면 저임금·불평등 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차별개선 없는 무기계약직 전환이 정규직 전환 표준모델로 자리 잡고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이 직접고용 회피수단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자회사 방식에 대한 엄격한 규제, 초기업단위 교섭 모델 활성화,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개편 사례 제시를 통해 민간부문 고용구조 정상화와 저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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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2018년 5월 민주노총·한국비정규노동센터·산업노동학회 공동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되고 《산업노동연구》 6월호에 출판된 글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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