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빼기'사회]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지만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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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민주노총 조직실장



장기투쟁사업장.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정리된 바 없으나 주변에, 그리고 이곳저곳에 장기투쟁사업장이라 구분되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기억을 소환하면 예전에는 쟁의가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나면 장기투쟁사업장으로 분류했으나 요즘은 6개월은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고 민주노총은 1년 이상 투쟁이 지속되는 사업장을 장기투쟁사업장으로 분류하고 관련한 상황을 취합, 대처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개입(?)하에 KTX승무지부, 쌍용차지부 등 아주 소수의 장기투쟁사업장들이 문제해결에 대해 합의하고 현장으로 복귀하거나 복귀 약속을 받은 사례가 있고, 2015년부터 긴 투쟁을 진행하고 사측과 합의해 투쟁을 일단락 지은 갑을오토텍지회의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고 과거 적폐 정권 아래서 시작된 투쟁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1년 반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되고 있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아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발생한 장기투쟁사업장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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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와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시민·사회단체는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매일노동뉴스)



장기투쟁사업장이 생기는 이유는 복잡다단해보이나 자본의 탐욕을 채워가는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최대 걸림돌인 노동조합 혐오에 기인한 치밀한 계획과 실행 속에서 발생한다. 또 이를 중재하거나 관리, 감독을 진행해야 할 정부 관료들의 업무 방기, 직무 태만, 일방적 자본 편들기에 기인하는 바 크다. 그리고 공안적 잣대를 들이대며 일방적 자본 편들기를 하고 있는 검찰,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정원, 기무사, 경찰 등이 시행하고 법원마저 사법거래의 대상으로 노동 문제를 처리하고 있기에 장기투쟁사업장 발생은 필연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즉, 초기에 제대로 된 사업장 관리와 감독만 있어도 대부분의 노사 간 분규는 해결될 수 있으며 이는 특혜적 요구가 아니라 업무 본연에 충실한 관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노조 파괴 과정, 현대기아차 그룹의 부품사에 대한 지배 개입, 심지어는 지방정부의 약속불이행 등 자본 편향 정권 편향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우리 사회에서 이는 아주 요원한 일이라 하겠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이러한 장기투쟁사업장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함께 장기투쟁사업장 문제해결을 위한 노정 협의를 진행해 왔으나 실제로 이 틀이 작용해 문제가 해결된 사업장은 아주 극소수 사업장이다. 


협상테이블에 앉은 고용노동부 관료들은 이미 법적으로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심문해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지만 검찰이 이를 되돌려 보내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나? 확실하게 부당노동행위가 드러난 케이스가 아니면 본인들이 나설 수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 하고 있다. 결국 이 노정협의는 공전을 거듭하다 최근 석 달간은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아니 민주노총에서 이러한 협의의 실효성에 강한 문제제기를 하며 논의 중단을 선언한 상태이다.


고공에서의 투쟁은 이제 1년은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단식도 예수가 했던 40일은 기본이고 훌쩍 넘어가야 “아, 어느 사업장의 어느 동지가 단식을 하는 구나.” 하는 자조의 쓴웃음이 나오는 현실이다. 이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장기투쟁사업장 문제해결은 근본적으로 상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지 않으면 난망하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법원에 의해 아주 불리한 판결을 받은 상황이고, 그 기간도 너무 오래된 나머지 투쟁의 대열에서 고개 숙이고 생계를 위해 떨어져간 동료들도 있다. 또 그런 동료들의 인간적 고뇌를 알기에 무작정 투쟁의 대열에 버티고 있으라고 요청하고 간청하는 것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묵묵히 거리로, 광장으로, 본사 사옥 앞으로, 굴뚝으로, 망루로 올라간다.


위에서 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언제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편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간 적이 있나? 무한경쟁 무한탐욕의 시대에 철저하게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가장 약한 자리에 서있는 노동자들에게 경도된 시각은커녕 균형 잡힌 시각과 사고가 거대한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적이 있었나?


2016년 10월 말부터 시작된 촛불이 이러한 비틀린 구조와 시각에 균열을 냈다. 나라다운 나라 인간적인 세상, 세상의 모든 모순을 드러내고 최상층에 있는 국가 권력에 균열을 내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이전과는 변화된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이는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확대와 분단으로 강요받은 전쟁에 대한 공포 해소 등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변화와 봄은 유독 작업장, 사업장, 공장 앞에서는 멈춰있다.


재벌과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했던 적폐 세력들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이념의 잣대를 드러내고 조장하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이 유린당한 채 해고와 해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장기투쟁사업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불법적인 방식의 투쟁을 전개하며 스스로를 묶은 것이 아니라 적폐세력에 의해 기획되고 계획된 피해자임을 확인하고 공유해야 한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 묵묵히 자동차를 조립하고 정비하던 노동자들, 삼성의 옷을 입고 묵묵히 에어컨을 설치하던 노동자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받았다고 노조 아님을 통보받았던 공무원과 교사들···. 모두 이러한 적폐 세력에 의한 피해자들이고 이들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촛불정신의 구현이고 완성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도 보여주기 식의 의지가 아니라 확고한 의지를 표하고 이를 관철하겠다는 천명이 절실하다. 글의 윗부분에서 언급한 고용노동부 관료들의 태도나 검찰 등 국가기관의 부적절한 대응과 판단, 그리고 드러난 재판 거래 사법 농단을 바로잡고 엄중한 처벌 의지를 밝힌다면 관련된 수많은 장기투쟁사업장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법위에 군림하며 무한탐욕 무한수탈을 자행하는 자본과 재벌에 대해 엄중하고 엄정한 법과 처벌의 잣대를 들이대면 수많은 장기투쟁사업장 문제가 해결된다. 죄를 지은 재벌 총수들의 사면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이는 그들의 범죄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고, 이제껏 저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노동자 옥죄기, 노동조합 탄압의 뒷배로 삼을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과 부품사 지배 개입에 대해 문재인 정권이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히고 실제로 이를 이행해야 현대기아차 그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유성기업 등 부품사들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노사 합의를 외면하고 이행하지 않는 스타플렉스의 김세권을 교섭의 자리로 불러낸다면 굴뚝에서 근 350여 일 투쟁하고 있는 홍기탁, 박준호는 땅으로 내려올 수 있을 것이다.


내년 ILO 100주년을 앞두고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요구가 높다. 그리고 비준에 앞서 문재인 정부가 선행 조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즉, 노동 현안에 대한 직권 개입 그리고 노조법을 포함한 노동악법에 대한 폐기와 개정의 요구가 높다. 노동자들을 장기투쟁으로 내모는 법과 제도를 고치고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정부가 보여줘야 한다. 이 정확한 신호가 집권여당에게 전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경제부총리의 친자본적 정부 정책 회귀를 연상시키는 발언과 정책의 변화, 노동 운동 출신임을 입버릇처럼 떠들며 노동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집권여당의 대표, 노동 정책 집행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반 노동자적 발언. 과연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의심받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장기투쟁사업장 문제해결, 정말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인식의 전환과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촛불정권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의 새시대를 열겠다고 선포했던 문재인 정부. 장기투쟁사업장 문제해결을 약속하고 많은 개혁적 노동 정책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만 하지 말고 그 첫발이라도 단단히 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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