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 나는 편의점 알바인 ‘김 양’이다

by 센터 posted Aug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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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민주 알바 노동자


“김양! 나 또 왔어!”
점심시간이 되면 한 할아버지가 들어와서 매번 나를 이렇게 부른다. 나는 성이 김 씨도 아니고, ○○ 양이라 부르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를 김 양으로 부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니까, 옛날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생각한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매장에서 매일 연금복권 한 장, 1000원짜리 즉석복권 한 장, 그리고 로또 1000원어치를 사간다. 조금 있으면 매일 편의점 도시락 두 개를 사가는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도시락을 산다. 보헴 시가 미니 5미리를 매일 사가는 공익근무요원도 온다.

나는 편의점 알바 노동자이다. 언제부터 편의점 알바 노동자로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편의점 알바를 한지 한 2~3년은 넘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매장에서만 1년 넘게 일했다. 꽤 오래 일하다보니 매일 오는 단골들과는 이제 몇 마디씩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다. 물론 나를 김 양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와는 아직 어색한 관계이다.

나는 아침 8시면 편의점에 출근한다. 출근하여 시재 점검을 하고 난 8시 10분쯤에는 출근길에 간식을 사가려는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바로 옆에 구청이 있고, 또 그 옆에는 방송국이 있어서 편의점은 늘 바쁘다. 긴 줄을 선 손님들을 맞이하여 물건을 팔다 보면 한 시간쯤은 금방 후딱 가버린다. 아침 9시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 등의 냉장 식품들을 꺼낸다. 그 중에 일부는 내 아침밥이 된다. 2년 동안 식사를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음식으로 먹다 보니 이제 편의점 음식을 쳐다보기도 싫어져서 굶을 때도 있다.

아침시간이 끝나면 가게는 조금 한가해진다. 그렇다고 마냥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편의점에서 일하기 전에는 편의점이 마냥 ‘꿀 알바’인 줄만 알았다. 그냥 계산대 앞에 서서 계산만 해주면 모든 것이 잘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편의점 알바가 해야 할 것은 많다. 커피 기계도 청소해야 하고, 매장 청소도 해야 하고, 손님이 상품을 사가면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 채워야 하고, 온장고와 냉장고의 물건도 채워야 한다. 그렇게 오전시간에 일을 하다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물류가 배달된다. 내가 일하는 매장은 물류가 오후 1시 쯤 30상자가 넘게 온다. 혼자서 도저히 30상자나 되는 물류를 정리할 수 없어서 점장님이나 다른 알바가 출근하여 함께 정리한다. 물류가 배달 오면 창고에 넣고 판매대에 올려야 하고, 복권도 팔아야 하고, 정신이 없다.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는 온갖 귀찮은 것들을 누가 하나 싶었는데 정신차려보니 다 내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7시간 동안 일하고 나면 나는 퇴근할 수 있게 된다.

6.발랜타인.jpg
발렌타인 데이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가판대가 쓰러졌다. 나중에는 천막 채로 날아가서 문을 닫고 천막이 안 날아가게 온 몸으로 잡고 있었다. 

하루 7시간 일을 한 후 받는 임금은 5만 원 정도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 그나마 낫지만 작년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 편의점 알바를 두 개를 뛰었다. 하루에 13시간을 일했고, 매일 편의점 폐기 음식을 먹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져서 6개월 만에 편의점을 관두었다. 그때는 월급이 들어와도 딱히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래도 놀러 가고, 적금도 넣고, 예쁜 옷도 사고 싶지만 교통비와 식비로 대부분을 사용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 여유가 생긴 것은 좋지만, 예전보다 알바비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을 바라보면 기쁜 마음도 오래가지 못한다. 알바를 하고 받는 돈이 조금만 많았으면 1,800원짜리 김밥을 먹을 것인지, 2,500원짜리 김밥을 먹을 것인지 김밥집 앞에 서서 그토록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휴수당도 받지 못하는 ‘꿀 알바’인 편의점에서 한 달 동안 일한 후 통장에 찍힌 몇 푼의 숫자를 보면 괜한 고민들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정말 한 명의 계산원인 ‘김 양’으로만 그 공간에 존재할까? 나의 이름도, 삶도, 꿈도, 왜 알바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바를 하는 도중에는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일까? 알바를 하는 도중에는 아무도 나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또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도 적다. ‘겨우 돈 필요해서 알바생으로 있는 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바를 하는 나의 삶의 시간은 어떠한 의미도 없이 표류하는 시간들일까? 나의 시간들은 오로지 한 달을 견디는 몫으로 주어지는 시간당 7,530원의 ‘비용’일까? ‘밥값을 버는 일’이라는 것이 문자가 아닌 버거운 말로 느껴진 때부터 ‘밥값을 버는 시간’은 나를 떠나 표류하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받는 최저의 시급은 한 달 동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금액이지만, 나의 삶을 대변하기는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매일같이 신문에서는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중소상인들의 허리가 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볼 때면 나는 나의 노동이 그렇게도 값어치 없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나의 삶과 꿈과 인격적인 시간을 팔아서 번 돈이 겨우 삶을 살아갈 만큼의 최저의 임금이라면 내가 일하는 시간들은 오로지 견뎌야하는 시간으로 적립될 것이다.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 내가 김 양으로 그 자리에 서 있지 않다면, 가판대 앞에 서 있는 시간들이 오로지 버티는 시간들이 아니라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하나의 부품으로 보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것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의 증표로서 최저임금을 받고 싶다. 모든 사람들의 노동이 다만 견뎌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면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밥을 굶으며 1,800원짜리 김밥을 먹을지, 2,500원짜리 김밥을 먹을지 오래 고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일을 하는 시간이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알바이지만, 일을 하는 시간동안의 내가 ‘최저’의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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