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 전업 작가의 꿈을 버렸다

by 센터 posted Aug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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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알바 노동자


아침 아홉시.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에 온 우유와 빵이 잘 도착했는지 살핀다. 그리고 진열된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새 우유와 과자, 라면을 상자에서 꺼내 매대 빈 곳마다 채워 넣기 시작한다. 그 사이 도착한 배달 차는 점심 도시락과 아이스크림 상자를 두고 간다. 얼추 일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시계를 쳐다보면 어느새 정오가 훌쩍 넘었다. 오후가 되면 근처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굣길의 학생들이 가게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바닥을 쓸고 닦고 계산대 주변을 열심히 걸레질 한다. 한겨울에도 이마에 땀이 솟고 등이 젖는다. 오후 네 시. 점장님의 입에서 드디어 가도 좋다는 말이 떨어진다. 이상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벌어지는 나의 일과이다.

어릴 때 내 꿈은 과학자였다. 허름한 실험실에서 혼자 열심히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섞어 가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약을 만드는 과학자. 생애 어느 순간부터는 장래희망 란에 과학자 대신 작가라고 써넣기 시작했지만 따지고 보면 내게 작가든 과학자든 혼자 골몰하여 세상과 사람들에게 이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서른네 살에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그전에 나는 건설현장 인부, 공무원 시험 준비생,학원 강사, 방과 후 교사였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를 직업으로 삼기가 요원해 보였다. 내가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집착을 버린 것은 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약 천 원 정도를 받았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은 이후일 것이다. 그때부터 작가는 나의 신념이자 삶의 양식일 뿐, 돈을 버는 직업이 될 순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생계를 이어갈 일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풀타임 근무를 하게 될 경우 과연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무엇보다 컸다. 유일한 희망은 적은 돈으로 삶을 유지해나가며 글을 써나가는 것이었다. 

5.편의점.jpg
계산뿐만 아니라 매장 청소, 입고된 물품 정리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편의점 알바 노동자

그때 편의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전부터 편의점을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당시 나는 야간알바를 하면 틈틈이 소설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흔히 편의점 알바는 물건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순 계산 업무는 굳이 알바를 고용하지 않아도 점주나 점주의 가족이 충분히 할 수 있다. 점주가 알바, 특히 나처럼 건장한 남성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거운 음료나 과자, 라면 상자를 옮기고 매장 바닥을 청소하는 등의 노동집약적인 업무란 것을 몇 군데의 편의점을 거치면서 알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내 존재가치는 나의 몸 자체였다. 만약 내가 다치거나 지금의 반 정도 밖에 힘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면 임금을 더 적게 받거나, 야간에만 일해야 하는 등 더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일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하루 일곱 시간 일하고 나면 지쳐서 집에 와서 누워 있거나 빈둥빈둥 남은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대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노동자로서의 나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삶은 결국 나를 계산대 앞 노동자로 불러냈다. 상상 속의 나는 멋진 글을 쓰고 박수갈채를 받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먼 미래일 뿐이다. 나는 작가이기 이전에 이미 한 명의 노동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 명의 노동자로서 내 몫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바로 일하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시급이 너무도 터무니없었다. 내가 알바를 시작한 2016년의 최저시급은 6,370원이었다. 밤을 꼬박 새는 야간노동을 했는데도 주간 알바 노동자와 시급이 똑같았다. 아무래도 점주가 법을 어기는 듯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5인 미만 사업장은 예외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편의점은 대부분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각종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며 정당한 사유가 없어도 해고할 수 있었다. 대형마트의 경우 기존 재래시장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규제에 나섰지만 편의점은 그렇지 않았다. 편의점은 영세사업자의 탈을 쓴 대기업의 블루오션인 셈이었다. 시급뿐만 아니라 모자란 시재 채워 넣기, 계약 시간보다 십 분 일찍 출근하기, 수습 명목으로 최저임금 90퍼센트만 지급하기, 주휴수당 모른 척하기 등 편의점 알바의 근무여건은 나름 이런저런 비정규직 경험이 있던 내게도 자못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백하건데 나에게는 편의점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십 년도 더 전, 군 입대를 앞둔 시점에 잠깐 편의점에서 일하며 그것을 내 인생에서 잠깐 스쳐가는 일 정도로만 여기고 살았다. 나중에 삼십대가 되어 다시 계산대 앞에 서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는 편의점 알바 중 절반이 30대 이상이었다. 경력이 단절된 주부, 질 낮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중년 남성, 공무원 시험을 본다며 몇 년째 알바를 해온 청년 등 알바는 이제 더 이상 한때의 낭만이 아니라 밀려난 삶들의 현실이었다. 

내가 작가가 되고자 했던 건 내가 쓴 글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고 낫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고는 어떤 아름다운 글이 나와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고는 알바노조에 가입했다. 한 명의 알바 노동자로서 나의 노동의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나는 알바 노동을 통해 오히려 내가 누구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글쓰기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꼭 일등이 아니어도 글을 쓸 수 있으며, 가격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책을 만나고, 적절히 주어진 노동을 마치고 나면 책을 보든, 악기를 연주하든 누구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세상.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야 나는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알바를 길게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힘이 닿는 한 알바의 삶이 나아지게 해달라고 더 목소리를 내볼 것이다. 지금은 홀대 받는 알바 노동이 정당하게 대우 받는 날이 온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한 뼘 더 나아진 세상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끝내 내가 작가가 되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가는 안전한 방향으로 난 길을 자식이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알바로 살고자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확신은 오직 흰 백조만 보아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검은 백조가 분명 존재함에도 아직 그들은 작가의 삶, 알바의 삶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고, 나는 믿는다. 검은 백조가 한 마리 나타나면 세상은 돌연변이라 여기지만 검은 백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검은 백조는 당연해지고 상식이 된다. 나는 노동을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뿌리로 여기고 알바 노동을 오롯이 노동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언젠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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