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비정규직] 선언과 책임 사이

by 센터 posted Jul 02,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홍춘기 대전광역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센터장



적폐청산의 기대 속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선언은 시작부터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사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정부가 먼저 모범 사용자의 모습을 보이라는 비정규 단체들의 오랜 요구였다. 또 공공기관에서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음을 이미 서울시와 광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보여주었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고,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기관마다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해석 제각각


가이드라인 제시 이후 작년 9월부터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몇몇 공공기관에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회의에 들어가게 되었다. 회의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선언과 책임의 사이는 너무 멀구나’ 하는 것이다. 우선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배경과 필요성에 대해 먼저 공공기관 안에서 해설되고 공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관마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가이드라인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어느 기관은 가이드라인에 근거하기 보다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고 밀어붙이는 기관도 있었고, 애초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배경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가 배경과 의미에 대한 토론으로 심의조차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관은 기관의 입장에서만 가이드라인을 해석하고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배경과 취지에 대한 토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모기관의 경우 예산 담당과 회계 담당이 가이드라인 취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고령자 친화 직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면서 정부의 전환 취지에 대한 토론으로 첫 회의부터 긴장이 조성되었다. 물론 2차 회의에서 어느 정도 조정이 되어서 오긴 했지만, 전환 정책에 대한 기조와 방향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취지와 배경을 정확히 인식한 기관들도 전환 대상자 선정에서는 가이드라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3.피켓.jpg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위 중인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조합원들


상시 지속 업무에 대한 인식도 제각각


‘상시 지속 업무’에 대한 인식도 제각각이었다. 2년 이상 일해 왔고,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하면서 상시 지속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기관, 상시 지속 업무이지만 10년 넘게 지속된 사업을 기간을 정해 놓은 프로젝트 사업이라며 제외사유라고 주장하는 기관 등 상충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전환심의위원회 회의에 들어간 경우는 아니지만, 우리 센터에 상담 온 사례를 보면 프로젝트에 의해 진행하는 사업팀은 맞지만 이미 5년씩 계속 갱신되어 왔다고 한다. 또 프로젝트 외 일반 업무가 자신들 급여의 80퍼센트 이상의 수입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30여 명이 전환 대상자 제외로 결정되었다. 기관이 말하는  이유는 팀이 프로젝트 사업으로 시작했고, 프로젝트 사업이 팀의 일부 사업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다른 프로젝트 사업팀은 전환 대상자로 결정되었다. 물론 그 팀은 5~6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팀원이 많아서 기관에서 재정적 부담 때문에 제외시켰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정규직 노조가 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단다. 우리가 이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심의가 필요하다는 공문 정도였다. 


같은 직종, 그러나 지역마다 다른 결과


또 같은 직종이지만 전환심의위원회 결과는 지역마다 상이하게 나왔다. 교육청전환심의위원회의 경우 ‘운동부 지도자’에 대한 결과가 달랐다. 경남, 충북, 경기의 경우 정규직 전환을 결정한 반면, 강원과 충남은 TF팀을 꾸려서 더 논의하는 것으로 했으며, 나머지 지역은 전환 대상자에서 제외시켰다. 운동부 지도자의 경우 상시 지속 업무로 직접 만나보니 길게는 20년을 계속 일한 노동자도 있었다. 또 많은 지도자들이 고용불안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던 지역에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논의했던 직종이다. 10여 차례 회의를 하면서 결국은 TF팀을 꾸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운동부 지도자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들도 어느 지역은 전환되고, 어느 지역은 전환이 되지 않았다. 아마 이후에 교육부에서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동일한 기준의 가이드라인에서 나온 심의인데 ‘상시 지속 업무, 9개월 이상 업무’ 조건이 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원칙 없는 외부 전문가 입장도 다양


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가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외부 전문가들이다. 각 기관들은 외부 전문가들을 기관 주변에서 선정했을 수도 있고, 노동조합 추천을 받아 선정한 기관들도 있었다. 지방고용노동청의 추천 인사들 중에 선정한 기관들도 있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들 입장들이 다양했다.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기관이 먼저 입장을 제시해 주기를 바라는 분들도 있었고, 기관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관들이 먼저 정규직 전환에 따른 부담이 크다며 엄살(?)을 떠는 덕에 회의에 들어온 위원들도 기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만 인건비 상승에 대한 대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기관들은 곤혹스럽다고 솔직히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해결 없이 정규직 전환은 선언과 책임 사이를 좁히기는 힘들 것 같다. 


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가서 본의 아니게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인 적이 몇 번 있다. 우선 기관의 말도 안 되는 주장 때문이다. 직종이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며 반대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읽어주는 기관 담당자를 보며 너무 화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전환해 달라고 요구하는데도 일방적으로 반대되는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었다. 상시 지속 업무 기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기관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직종에 대해 전환을 할 것인지 결정할 때마다 기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외부 전문가위원들이 답답하기도 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기 보다는 기관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이야기해달라는 외부위원들도 있었다. 외부 전문가위원들에 대한 공동해설과 워크숍 정도는 했어야 전환심의위원회가 원래 취지에 충실하게 진행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현장을 모르는 기관


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가는 위원들도 감정노동이 아마 상당했을 것이다. 한두 번 하는 심의위원회는 그나마 덜했는데, 여러 차례 반복되는 회의에서는 아주 곤혹스러웠다. 우선 정보가 부족해서 여기저기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고, 직접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이 직종은 반드시 통과 시켜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회의에서 현장 노동자의 주장과 상반된 주장을 하는 기관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기관이 현장을 너무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례로 유치원 돌봄교실은 오전, 오후로 나누어진다. 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온 교사는 한 학교에서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안 된다고 해서 오전은 A학교 유치원에서, 오후는 B학교 유치원에서 돌봄교사를 하고 있었다. 일명 쪼개기 운영을 하고 있었지만 담당 공무원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교육청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갈 때 운동부 지도자들을 몇 번 만났다. 새벽부터 밤까지 학생들 운동지도, 진로지도, 개인고충까지 상담해주는 선생님들을 보며 정규직 전환을 제외시키려는 교육청에 화가 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회의결과를 설명해주면서, 실망하는 선생님들과 마주 했을 때는 너무도 힘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깊은 회의감마저 들었다. ‘회의 전술이 부족해서 선생님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나?’, ‘이렇게 했으면 됐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회의감보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실망감이 얼마나 클까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전환심의위원회에 들어갔을 때 마지막 회의가 가장 힘들었고, 지도자 선생님들과 마주앉아 있기는 더 힘들었다.  


어쨌든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시작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부는 기간제, 파견, 용역을 거쳐 3단계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은 숙제가 너무 많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전환 대상자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안이 없다. 잠시 희망을 가졌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지역적 차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아예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인 기관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정부의 선언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실천이 따라야 오는 것이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