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이냐 '교섭'이냐] 정책협약이라 쓰고, 교섭이라 읽는다_서울시와 서울청년유니온 '청년 일자리 정책협약서'를 체결하다

by 편집국 posted Apr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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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1월 28일 서울시와 서울청년유니온이 ‘청년 일자리 정책협약서’를 체결하였다. 15개 정책에 대한 협약이 담겨있는 ‘정책협약서’는 협약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협약’을 맺었다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이해를 어떻게 대변할 것이며, 이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 ‘사회적 협약’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정규노동>에서는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의 의미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선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를 체결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의미를 담은 글을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이 보내주었다. 또한 ‘교섭위원들의 못다한 이야기’에서는 교섭에 참여했던 청년유니온 당사자들의 평가와 문제의식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청년유니온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비정규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좌담회를 통해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가 갖는 의미와 이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월 28일

 

 

영하 5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반팔 티’ 한 장만 입고 서울시청에 난입한다. 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간담회장에 진입하더니 자기들끼리 희희덕거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잠시 뒤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고, 이 묘한 구성원들을 프레임에 담은 플래시 세례가 이어진다. 이 젊은이들이 입은 반팔 티셔츠에는 ‘청년에게 노동조합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행사장 전면에는 ‘서울특별시-청년유니온, 청년 일자리 정책협약’이라는 플랜카드가 나부낀다.
신년의 몽롱한 기운이 채 빠지지 않은 1월 28일. 청년유니온과 서울특별시는 포괄적인 청년 정책을 다룬 사회적 교섭을 체결하였다. 한지혜 위원장과 박원순 시장의 서명이 각각 담긴 양해각서를 교환하는 것으로 지난해 4월부터 달려 온 청년유니온의 첫 사회적 교섭은 성공적으로 발을 내딛었다. 청년유니온이 제안한 23개의 사업 중 장기과제로 분류 된 8개를 제외하고 총 15개 정책에 대한 사회적 협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짧은 내용은 아니지만, <비정규노동>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그 전문을 올린다.

 

 

서울특별시-서울청년유니온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

서울특별시와 서울청년유니온은 상호 협력하여
청년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협약한다.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 ]
1. 서울특별시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청년 일자리 정책을 펴나가기 위하여 중장기 청년 일자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2. 서울특별시와 서울청년유니온은 청년과 서울특별시가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서울시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청년 일자리 권리선언을 공동으로 발표한다.
3. 서울특별시는 서울 청년들의 고용을 촉진하고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여 청년의 삶의 수준향상과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 청년 일자 기본조례」의 제정을 추진한다.
4. 서울특별시는 사업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교육을 함으로써 노동존중의 사회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다.
 
[청년 취업지원과 근로조건 개선 ]
5. 서울특별시는 산하 투자·출연기관이 청년의무고용제(매년 정원의 일정비율 이상의 청년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하도록 단계적 추진 방안을 수립한다.
6. 서울특별시는 산하 투자·출연기관이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직무와 무관한 항목이 포함되지 않은 표준이력서를 사용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7. 서울특별시는 산하 투자·출연기관이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신체검사가 필요한 경우 그 채용기관이 검사비용을 지원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8. 서울특별시는 취업 및 진로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구직자를 위하여 취업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9. 서울특별시는 청년창업 지원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하여 청년창업센터의 졸업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10. 서울특별시는 정원 대비 청년고용률, 신규채용자 중 청년의 비율 등으로 구성된 민간 청년 고용지표를 마련하고 공공구매 등에 활용하도록 노력한다.
11.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에서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청년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 점검 및 관리 방안을 마련한다.
12. 서울특별시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표준근로조건의 홍보에 노력한다.
13. 서울특별시는 청년들 스스로 근로자의 권리를 알 수 있도록 서울시립대학교가 노동법 교육 교양과목을 신설·운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14. 서울특별시는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생활임금 연구를 실시한다.
15. 서울특별시는 청년들을 위한 문화활동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2013년 1월 28일
서울특별시장  박 원 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  한 지 혜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를 체결하다.

 

 

본 협약서에는 논란이 되어 왔던 청년의무 고용할당제, 서울 시립대학교 노동법 교양과목 신설, 사업주 대상 노동법 교육, 서울시 유관기관에서 채용시 출신 대학란 등을 삭제한 표준이력서의 도입과 같이 그간 노동계에서 요구해 온 상당한 수준의 정책들이 반영되었다.
청년의무 고용할당제의 경우 300인 이상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채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근거하는데 이전까지는 위 규정이 강제사항이 아닌 권고 수준이라 실효성이 없었다. 이번에 체결한 협약은 연령 기준이 확대되고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조건과 함께 강제성을 가지게 된다. 매년 600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가 청년층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1953년에 만들어져 올해로 환갑이 된 근로기준법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에 대한 교양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에 청년층은 자신의 근로조건을 지키지 못하고, 사업주는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한 채 범법자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법 교육 사업을 반영하기 위해 협약 과정에서 상당한 공을 들였다. 사업자 등록의 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 있음을 착안하여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법 교육을 포함시켰고, 서울 시립대학교에서의 노동법 교육, 서울시 홍보매체를 활용한 표준 근로조건 홍보 또한 위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체결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협약은 ‘체결’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세대별 노동조합으로서 정부와 체결한 최초의 사회적 교섭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가 아니라 세계 최초이다.

 

청년을 위한 조직노동은 없다


노동조합의 행동방식은 일정한 규범을 따른다. 세계 어디에나 적용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전략·전술이라 할 것이다. 전략조직의 대상이 되는 사업장에 진입하여 그들을 조직하고,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교섭을 요청하고,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수준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아간다.
87년, 벼락 같은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여 분출한 노동운동은 연일 승승장구 하였고 오늘날 민주노총과 같은 거대한 조직의 위상을 갖추며 한국 사회의 유의미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술이 섬세해짐에 따라 노동운동도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을 ‘불안정’하게 방치한 뒤, 기성 노동운동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조직(단결)’ 자체를 봉쇄해버렸다. 최근 한자리 수로 떨어진 노동조합 조직률, 갑절은 더 처참한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률은 이와 같은 현실조건의 변화에 기반한다.

한편 기간제, 파견 등 다양한 이름 아래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정해졌으나, 2~30대 청년층은 이 모든 이유들과 더불어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유독 더 불안정해졌다.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간접고용이 일반화 된 노동시장에 진입하며, 신규채용의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이에 대항할 조직적·법률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채 영세한 사업장에 파편화 된 청년들에게 ‘노동조합의 조직력’이라는 관성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재벌2세와 가난한 노동자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막장 드라마만큼 공허하게 다가온다.
민주노총이 ‘미비실’을 설치하며 청년 노동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조직 전략을 구사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나름이다. 노동운동의 관성으로 말미암아 ‘사업장’을 조직하려 해도 ‘사업장’이 보이지 않는다. 실로 어려운 싸움인 것이다.


“사용자가 불분명하거나 노동자성이 애매한 주변부 노동자들은 임금 및 단체교섭을 중심으로한 활동만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노동조합 가입의 실익도 적다."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은수미 『날아라 노동』)

 


단결이 안 되니까 교섭을 먼저 해버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년유니온과 서울시의 사회적 교섭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이 꼭 사업장이 아니라 할지라도 청년들이 스스로 싸우고 더 나은 삶을 쟁취할 현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업장이 아닌 지자체와의 사회적 협약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쟁취할 수 있다면 그 곳이 현장이다. 청년유니온의 600명 조합원을 넘어 서울시를 살아가는 300만의 청년들에게 더 나은 삶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 곳이 현장이다. 우리는 사업장 단위의 단결이 안 되니까 교섭을 먼저 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교섭 방식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청년유니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미 ILO는 고용 창출과 일자리 기준의 확립과 관련하여 정부가 관여하는 사회적 협약의 유의미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잠잠하면 노동자들을 후려 패다가 사람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하면 ‘노사문제는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며 내빼는 우리 정부의 그간의 행보와는 대조되는 입장인 것이다. 어쨌든 청년유니온과 서울시의 사회적 교섭은 사측이 없는 노정교섭에 해당하며, ILO가 강조한 사회적 협약의 연장선에서 해석 될 수 있다.
‘노동조합의 방식(형식)’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나 규범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태초의 하나님 말씀과 같은 신의 음성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노동의제에 천착하되 한계와 불가능을 직시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것. 그리고 이를 창조한 집단 스스로가 이를 ‘노동조합의 형식’으로 규정하고 밀고 나아가는 것. 나는 이것이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중요한 갈래라고 믿는다. 불안정 노동이 일반화 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사회적 교섭 모델에 대한 보다 폭넓은 고민과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물론 청년유니온의 노동운동은 이와 같은 형식으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청년 불안정 노동의 현실을 끊임없이 알려내고 그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 나갈 것이다. 사업장이 아닌 새로운 단위의 교섭 모델을 연구하며 우리에게 적절한 방식의 행동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년 노동운동은 선배 세대의 노동운동과의 접점에서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다. 노동운동의 큰 바다에서 함께, 그리고 새롭게 넘실대기를 기원하며, 이 땅의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건투를 빈다.

 

글 │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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