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노동을 말하다] 악마는 0.5시간 계약제에 숨어 있다_0.5시간 계약제를 없애기 위한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투쟁기

by 센터 posted Ma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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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시간 계약제요? 그게 대체 뭔가요?”
2014년 연초부터 0.5시간 계약제 폐지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쟁의행위에 돌입했던 홈플러스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이 질문에 수도 없이 답해야 했습니다. 대형마트 홈플러스에서 도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고용형태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계약제였기 때문입니다.

 

 

홈플러스의 세심한 착취 기술, 0.5시간 계약제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근로시간은 하루 7.5시간입니다. 계산대 노동자들은 6.5시간, 5.5시간, 4.5시간까지 다양한 계약시간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7.5시간으로 계약한 노동자의 경우 7시간 30분 근무를 하게 되며 이에 따라 시급을 계산, 월급을 지급하게 됩니다. 홈플러스 사측은 0.5시간 계약제가 불법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0.5시간 계약제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전문기관과 실시한 2013년 홈플러스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업무준비 시간은 21분, 업무 마무리 시간은 18분, 실제 식사시간은 30분입니다. 즉, 7.5시간으로 계약했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8시간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장수당이 지급되는 경우는 아예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무료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사로서는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8시간 계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임금은 오로지 7.5시간 계약을 기준으로 지급될 뿐이었습니다.
홈플러스의 업무 지시 형태를 살펴보면 결국 사측이 의도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부서별로 미팅을 진행합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 업무 점검을 하고, 추가 업무 지시를 하고, 이에 따라 연장 근로를 하는 방식이 전국 모든 점포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홈플러스는 0.5시간 계약제보다 10분 줄어든 소위 0.2시간 계약제를 확산시키고 있었습니다. 노동량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7시간 20분, 6시간 20분, 5시간 20분, 4시간 20분 계약을 강요한 것입니다. 30분 단위가 아닌 10분 단위까지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홈플러스의 섬세한 착취 기술이 더 진화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고용 불안 때문에 억지로 계약서를 다시 써야 했습니다.
현실이 그런데도 홈플러스는 사실상 노동자들의 자투리 시간을 도둑질함과 동시에 0.5시간 계약제가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고용형태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심지어 교섭 과정에서 한 사측 교섭위원은 “0.5시간 계약제로 회사가 이익을 보기는 한다.”는 뻔뻔한 언급을 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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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시간 계약제 기자회견 중인 홈플러스노동조합 조합원들  ⓒ홈플러스노동조합 

 

 

연간 수백억 원의 임금을 착취해 온 홈플러스

0.5시간 계약제는 단순히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약시간을 무리해서 줄인 만큼 기본급도 8시간 계약을 기준으로 할 때보다 줄어들게 되며 각종 수당도 이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8시간 계약 시 기본급은 7.5시간 계약을 할 경우보다 무려 7%가 많습니다. 100만원 남짓하는 월급을 받는 마트노동자에게는 대단히 큰 차이입니다. 더군다나 기본급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여러 종류의 수당까지 감안하면 차이는 더욱 커집니다. 노동조합은 홈플러스가 0.5시간 계약제를 통해 얻은 부당 이익이 연 3백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최저임금에 준하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어마어마한 임금을 착취해온 것입니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139개, SSM 360여 개를 운영하는 초대형 유통기업으로, 연매출 10조 원 이상, 영업이익 5000억 원의 업계 2위 대형마트입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0.5시간 계약제로 비정규직 임금을 깎아먹는 홈플러스는 등기이사 4명에게 연봉 100억 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으며, 한 개에 1000억 원 이상 비용이 드는 신규매장을 2013년에만 5개나 개장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10분, 30분 어치씩 임금을 떼어서 회사 임원들의 돈 잔치와 사업 확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4시간 근로를 할 때에는 30분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홈플러스는 7.5시간 계약을 함으로써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점까지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섬세하고 놀랍도록 디테일한 착취기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사측은 "실질적 임금을 보장해 주기 위한 선의의 입장에서 도입됐다"고 한 언론에 밝혔더군요.

 

 

0.5시간 계약제를 우리 힘으로 없애자!

이렇듯 기형적이고 퇴행적인 0.5시간 계약제. 유통업계에서도 유독 홈플러스만 도입해 노동자들을 울리고 있는 0.5시간 계약제를 없애기 위해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총파업까지 결의하고 투쟁에 나섰습니다. 2013년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역시 첫 단체교섭에 나섰지만 ‘0.5시간 계약제 폐지 요구’를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싸움을 해서라도 일터를 바꿔내겠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홈플러스 설립 14년 만에 처음으로 열려 40여 차례 진행된 단체교섭에서 노동조합은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노동조합은 마지막까지 수정안을 제시하며 타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사측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직후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고 2차례 조정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홈플러스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쟁의행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쟁의행위 기간이 마무리되어도 어떤 불이익을 감수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빼앗긴 권리를 찾는 게 저절로 되겠느냐고, 못된 홈플러스에 당한 게 억울하다며 이 기회에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드디어 부분파업이 진행되었고, 조합원들은 주저 없이 일손을 놓았습니다. 점포마다 수십 명씩 4시간에서 8시간 동안의 파업에 돌입한 조합원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매장을 돌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전국 곳곳에서 릴레이 부분파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해고될까 두려워 옳은 말 한마디 못하고 뒤돌아서 눈물만 흘렸던 노동자들이 당당히 주먹을 치켜든 것입니다. 떨리고 벅찬 마음에 많은 노동자들이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해 “노동조합 덕분에 주변 언니들을 동지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전국 곳곳의 새로운 동지들을 만났다. 다시 태어난 듯 벅차다.”라고 하며 활짝 웃는 조합원들은 이미 승리를 거머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전국의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진행하고 상경투쟁을 진행하기로 한 하루 전인 2014년 1월 8일, 극적으로 교섭이 타결되었습니다. 홈플러스는 단계적으로 0.5시간 계약제를 폐지하기로 하였으며, 123개 조항의 단체협약대로 조합원들의 활동보장을 기본으로 다양한 요구들을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조합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얼싸 안았고 다시 한 번 눈물바다를 만들었습니다. 조합원들의 단결과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으며, 열과 성을 다했기에 더욱 값진 승리였습니다.

 

 

폐지가 결정된 0.5시간 계약제와 이후 과제

홈플러스 설립 14년 만에 처음으로 체결된 단체협약을 통해 0.5시간 계약제는 폐지하기로 노사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10분 단위 계약제는 2014년 3월 1일까지 폐지하기로 하였으며, 0.5시간 계약제는 2014년 상반기 내 노사양측 합의의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가고 2016년 3월 31일 까지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노동조건을 하락시킬 수 없으며 신규 채용자들 또한 0.5시간 계약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사회적 문제로 이슈가 되었던 0.5시간 계약제가 폐지되는 시점이나 방식에 대해 조합원들의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당장 없애도 시원치 않은 것이 투쟁을 진행했던 조합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단체협약이며 다른 성과들을 감안해 단체협약 잠정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투표 인원 중 97.4%가 찬성 의사를 밝혔습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1,500명 규모의 작지 않은 노동조합이라고 하지만 2만 명이 넘는 홈플러스 직원 중에는 채 10%가 되지 않는 규모입니다. 규모만 보면 회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기엔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먼저 나선 1,500명의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싸웠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역시 노동자들의 무기는 첫째도 단결, 둘째도 단결이라는 것을 다시 새기게 해주었으며,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터를 바꾸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앞으로 조합원들의 힘으로 쟁취한 첫 단체협약을 밑거름 삼아 더욱 안정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펼쳐내려 합니다. 더 많은 조합원들과 함께, 더 큰 단결을 실현하면서 홈플러스 뿐 아니라 마트노동자들 모두의 권리를 되찾는 시작을 열어낼 것입니다.

 

 

글|김기완 홈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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