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과 사람들] 비정규직 쟁점화와 투쟁, 그 13년을 돌아보며 -김성희 3대 소장

by 편집국 posted Jul 2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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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3대 소장: 2004년-2010년)

 

센터와 보낸 7년이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참 많은 일을 겪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글도 참 많이 썼고, 인터뷰도 참 많았다. 나름 뭔가 한 거 같기는 하다. 그런데 크게 변한 건 없는 현실을 대면하고 있자니, 허망한 기분마저 든다. 뭔가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가 언젠가 닥쳐오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그 시기에 우리가 한 일이 초석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기분마저 든다.

 

요즘 기분이 좀 우울해서 글을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다. 멀리 이국 땅에 잠시 와 있지만, 세상 사는 게 다르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아니, 미국의 나쁜 점만 점점 빼닮아가고 있는 한국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철통같은 시장주의 곁에 숨 쉴 공간을 남겨두고 있는 미덕조차 갖추지 못한 게 아닌가? 오히려 권위주의가 판을 치는 형국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자극제가 던져지면 나라 전체가 반응하니 극적 반전의 기회는 더 갖고 있다고 위안꺼리로 삼는다. 노동과 진보의 목소리가 그 주인공이 될 그 날은 비정규직이 주체가 되는 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주체화는 비정규직이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 좀 더 나아가 지원의 대상, 좀 더 나가서 연대의 대상을 넘어서 자신의 목소리로 노동운동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비정규직이 상대화되지 않듯, 정규직이 또 대상화되는 것도 아니다. 뜻 깊은 기념의 자리에 이 문제를 새삼스레 다루고 싶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잔여적(regidual) 개념으로 정의된다. 정규직 고용이 정상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비정상상태를 되돌려야 한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측면에서 스스로를 부차화하고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도 생긴다.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지향점을 가진 운동은 일시적이고, 임시적이다. 고용 형태만이 아니라 운동의 양상도 상황의존적(contingency)이다. 그렇다보니 비정규직 신세를 면하고 정규직이 되면 비정규직 운동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고용형태 개선의 대가로 사용자나 정부가 노동조합 조직과의 차단장치를 마련하거나 요구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연스레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2000년 초와 달리 지금은 비정규 조직들이 많아져서 이와 같은 양상은 달라지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발표도 애매모호한 무기계약직전환이기에 또 한 번의 비정규직 격동의 불씨일 뿐이다.반면 자본의 노동유연화 추구 의지도 완강하기에 안정적 고용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정규직의 운동으로부터의 이탈이 괜한 걱정이 될 때가 많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경우 개별 자본으로서도 풀기 어려운 숙제이나, 재벌 대기업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나서 개별 자본이 어떤 선택도 하기 어렵다. 현대자동차 말고도 모든 재벌 기업이 숨겨진 사내하청을 주축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쟁점으로 조차 부상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도 동일한 이치다. 그러니 어쩌다 선심 쓰듯 정규직 전환을 해도, 그저 그런 무기계약직으로 바뀔 뿐이다. 개별 자본은 이를 통해 자기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쟁점화가 비껴가기를 바란다. 비정규직 당사자에겐 매년 계약해지 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지는 조금 나아지고 기업은 여러 이점을 얻는 이른바 상생(win-win)의 해결책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열악한 처지로 방치시키는 것이 잠복된 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던 KTX 승무원 문제가 풀리지 않았던 것은 KTX 문제가 공공기관 전체 비정규 문제의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정권실세에 가까웠던 이가 철도공사 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만 별도로 해결할 재간이 없었다.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의 투쟁이 사회적 공감을 크게 얻었었지만 해결 못한 건 그 때 한참 논란 중이던 비정규법 자체였다. 이랜드 회장이 “내가 비정규법을 어긴 게 뭐가 있냐.”고 항변하지 않았는가. 87.4%의 인력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하청회사에 주는 돈으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면서도 예산 절감을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줄곧 활용하며, 또 분할하고 분할해서 더 값싼 노동으로 활용하려는 자본의 요구는 분명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동유연화는 교조가 되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도 한다. 그래도 지난 14년 간 비정규직 쟁점화를 위한 노력과 비정규 투쟁이 비정규직 활용에 대한 표면적인 반성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유연화 지상주의는 여전히 완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단기적으로 정치구도를 바꿔서 좀 더 나은 싸움의 조건을 얻을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길은 열리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87년 이후 10년 보수정부, 98년 이후 10년 민주정부, 08년 이후 10년 보수정부를 맞고 있지만 삶의 조건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노동의 대응은 분할지배에 취약한데, 최근 그 취약성은 더욱 더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동성과 한계를 반영하는 전투적, 정치적 경제주의(militant and political economism: 후자를 간단히 해석하면 양날개론)는 기반도 명분도 다 같이 약해졌는데, 그 보완과 대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노동운동(societal labor movement), 사회운동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unionism)를 지향하는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큰 진전이 없다.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분할하며 확대재생산하는 경제구조는 요지부동이다.

 

그래도 밑으로부터 변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자의 투쟁은 비록 수세적이고 비조직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어쨌든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투쟁은 상징적 점거 투쟁과 옥쇄투쟁에서 조직적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precarious workers)의 향배가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우할 시점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비정규직 조직이 기존 정규직 조직과 주전선수 교체를 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조직이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 약자의 대변이라는 방향이 노동운동의 향배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이며, 이미 주 공격수는 그렇게 이미 바뀌고 있다. 현재의 경제적 기반에 균열을 일으키는 새로운 노동자대투쟁은 그 피해자로부터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대다수의 운동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운동이다. 비정규운동의 경우 그 시간 범주가 짧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비정규투쟁도 장기화되고 있다. 단지 악랄한 몇몇 사업주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착취와 남용을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구조의 변화가 필수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본다.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 다수를 대표하는 노동운동의 방향을 정립하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변화의 방향을 비정규직의 언어로 재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과 발맞춰 그 길을 계속 찾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애쓴 모든 이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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