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자의 집] 또 따른 10년을 준비하는 집

by 센터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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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 센터 기획편집위원
인터뷰이 : 황철우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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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우 비없세 집행위원장


‘비정규 노동자의 집’은 2016년 상반기 집을 짓는 것을 목표로 비정규 노동자의 집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에서는 비정규 노동자의 집 추진위원회 황철우 집행위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집’ 진행 상황과 어떤 집을 만들고자 하는지를 들어보았다. 황철우 집행위원장은 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소집권자 등의 활동을 하며 비정규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데 역할을 해온 지하철 승무원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집’ 어떻게 시작됐나?


오진호 :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만들자는 제안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황철우 : 처음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은 저희 아내였어요. 2014년 말 기륭전자분회는 10년의 투쟁을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논의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밥집이나 쉼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줬어요. 제가 기륭전자분회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아내는 우리 활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응원해 왔어요. 상경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걱정도 자주 했죠. 그러면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밥집이나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해왔거든요.


오진호 :  비정규 노동자들이 상경 투쟁이나 노숙을 할 때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씻고, 자는 문제잖아요. 하지만 다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해결방안을 내지 못하죠.

황철우 :  네, 이전에 아내가 밥집이나 쉼터 이야기를 했을 때에는 저도 그냥 듣고만 있거나 “그게 쉽겠어”라며 말문을 막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륭조합원들이 앞장서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도 그런 제 생각을 읽었는지 선뜻 적금통장을 손에 쥐어 주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상의해서 추진해 보라”고 신신당부 했어요. 쉼터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 이야기를 기륭조합원들과 기륭공대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이하 비없세)에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다들 선뜻 해보자라고 하지는 못했어요. 필요성은 공감했지만 재정 마련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다들 말했죠.


오진호 :  기륭전자분회 사무실은 이전에도 지방에서 올라온 동지들이 하룻밤 자고 가는 일종의 ‘쉼터’ 같은 역할을 했잖아요.

황철우 : 그렇죠. 기륭전자 동지들은 10년 동안 싸우면서 많은 ‘집’을 만들었어요. 거리에 차려진 농성장이거나, 분회 사무실, 그리고 마지막 농성장이었던 기륭전자분회 사무실까지. 그 농성장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쉬고 갔어요. 기륭전자 동지들이 워낙 연대를 열심히 다니니 전국에 아는 사업장들이 많았죠. 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서울에 상경하게 되면 갈 곳이 없잖아요. 그렇다보니 분회 농성장에 와서 자고 가는 일이 많았죠. 비없세와 기륭공대위에서 논의할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예를 들어 울산에 사는 노동자가 서울에서 아침에 재판이 잡힐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동지는 전날 오후에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요. 그래서 이곳저곳 연대도 다니고, 서울에서 사람들도 만나죠. 문제는 밤에 잘 곳이 없어요. 민주노총 사무실이나 금속노조 사무실 바닥에서 자거나,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찜질방에서 자고 가요. 기륭전자 농성장이 있을 때에는 그곳에서 자는 동지들도 있지만 농성장이다보니 씻기도 불편하고, 신세지는 느낌인 거 같아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았죠. 이들이 편하게 쉬다갈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오진호 : 다들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결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황철우 : 다들 선뜻 동을 뜨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필요하다면 논의라도 해보자”고 겨우 설득을 한 다음, 비정규 투쟁의 상징적인 사업장인 KTX 여승무원, 이랜드-홈플러스, 코스콤, 현대 하이스코, 현대기아차, 동희오토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정리해고를 당해 오랜 기간 길에서 잠을 자야만 했던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도 의견을 물었죠. 다들 흔쾌하게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동의하면서 초기 제안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려움은 또 있었어요. 2014년 말 정부가 비정규직을 늘리고, 해고는 쉽게 하고, 임금은 깎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죠. 이에 맞선 투쟁이 필요했고, 당시에는 기륭전자분회가 10년 투쟁을 평가하면서 결의했던 ‘비정규 법제도 전면폐기’ 운동을 위한 오체투지 행진도 시작했던 때였거든요. 두 달 가까이 진행되었던 오체투지 행진을 준비하느라고 기륭공대위와 비없세 모두 정신없었어요. 이후에는 오체투지로 만들어진 사회적 힘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마음을 모아 만들어진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에도 함께했어요. 비정규 노동자의 집 실무 준비를 도와야 할 일꾼들 대부분이 이 활동에 전념하면서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가 늦어지기도 했죠.


'비정규 노동자의 집’은 어떤 공간인가?


비정규 노동자의 집 제안서는 2015년 7월, 기륭전자분회 10주년 토론회 자리에서 별지로 공개되었다. 추진하기로 결정한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공개된 것이다. 비정규 법제도 폐기 투쟁과 노동개악을 막는 싸움들을 하느라 상대적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집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어떤 공간을 어디에 만들지에 대해서도 이제 막 본격적인 논의들을 하고 있다.


오진호 : 비정규 노동자의 집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황철우 : 비정규 노동자의 집이라는 공간이 생긴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바라는 바를 말씀해주시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비정규 노동자의 집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함께 논의 중인데요. 우선 저희는 이 집이 쉼터로서의 자기 역할을 최대한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외갓집이자 사랑방이 되어 밥집, 쉼터, 목욕탕, 빨래터의 역할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집의 최우선 이용자는 비정규 노동자, 그것도 장기간 상경 투쟁을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될 것입니다. 농성 천막 하나 제대로 칠 수 없는 노동자들을 대형 세탁기와 빨래 건조대 그리고 세면장과 침실, 식당이 제일 먼저 반길 것입니다.


오진호 : 그래도 비정규 노동자의 집 취지에서 밝혔듯 쉼터를 넘어 다양한 상상과 고민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들도 있을 텐데요.

황철우 : 물론 비정규 노동자의 집은 비정규 교육 공간이자, 비정규직 노동 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허브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문화 운동과 비정규 운동이 만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보니 회의실 또는 교육장, 작은 휴게실 겸 카페 그리고 문화공연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미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휴게실 겸 카페에 마련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인생 상담’도 하고 ‘노동 상담’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다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상담자나 의료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요. 이미 비정규 노동자의 집이 만들어진다면 의료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분들도 계셔요. 더 나아가 지역과 함께하는 열린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비정규 노동 운동의 역사도 배우고, 비정규 노동 순례 탐방, 노동 법률 상담도 할 수 있는 거죠. 비정규직 선배가 새로 노조 결성에 나선 후배들에게 노조 설립과 교섭 전술, 투쟁 계획 등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도 될 수 있어요.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혜를 맞대고 투쟁을 공유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이 될지를 고민하는데 있어서는 초기 제안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견 수렴이 가장 먼저일 것입니다. 이 집을 이용하고 활용해 나가야 할 당사자들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당사자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준비하면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듣고 있어요.


오진호 : 집은 언제쯤, 어디에 만들고자 하시나요?

황철우 : 우선은 2016년 상반기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집의 위치는 서울 중심가에 있는 허름한 2층 단독 주택이었으면 해요. 서울 중심가에 땅을 사고, 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시간과 돈이 만만치 않을 테니 우선은 리모델링할 수 있는 공간을 알아보고 있어요. 서울 외각에 집을 만든다면 비용이 더 적게 들겠지만 쉼터의 주된 사용자가 될 비정규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면 이동하기 좋은 곳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봐요. 지역에서 상경하는 동지들, 아침부터 서울 중심가로 투쟁을 하러 나가봐야 하는 동지들이 사용하기에 서울 외곽은 교통이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서울역에서 영등포역 사이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세를 보고, 괜찮은 매물이 나와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어요.


집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


서울 중심가에 단독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7~8억 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리모델링 비용, 기타 초기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최소 10억 원 이상이 드는 큰 프로젝트다. 돈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금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오진호 : 비정규 노동자의 집 모금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할 텐데요.

황철우 :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고 계세요. 수녀님들이 생활비를 모아 주춧돌 기금을 보내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어린 딸이 크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가 딸의 이름으로 주춧돌 기금을 보내주시기도 해요. 첫 세례 봉헌금을 모아 보낸 준 중학생도 있고요. 딸과 사위의 결혼선물로 주춧돌 기금을 보낸 분, 한 달 치 아르바이트 월급과 연말보너스 전액을 보내온 분도 있습니다. 특히 당사자들은 적은 월급을 다달이 모아서 힘을 보태주고 있으며, 장기투쟁 사업장 조합원들은 투쟁기금을 쪼개서 자기 일처럼 나서주고 있어요. 비정규 노동자의 집 주춧돌 기금 영수증을 딸 결혼 선물로 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외국에서도 비정규 노동자의 집 기금을 외국돈으로 보내주시기도 해요. 2011년 한진 희망버스 승객이었던 분이 당시 희망버스 ‘깔깔깔’이었던 비정규 노동자의 집 집행위원에게 전화를 주셔서 주춧돌 기금을 내시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제가 일하는 지하철노동조합에서 3천만 원이 넘는 거금을 주춧돌 기금으로 내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직 서울에 집을 짓기에는 많이 부족한 수준이지요.


오진호 : 많은 마음들이 모이고 있네요. 다음 스토리펀딩도 어느새 3천만 원이 넘었던데요.

황철우 : 사실 스토리펀딩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모아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알리고, 작은 마음들이라도 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펀딩인데 많은 분들이 관심과 참여를 해주셨죠. 가장 고마운 분들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찾아주신 분들이에요. 실린 글과 사진 모두가 너무 좋아 글을 읽다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사진들을 보면 먹먹해지기도 하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좋은 글들과 사진들이 스토리펀딩을 채워주고 있어요.


오진호 : 스토리펀딩은 2월 26일로 끝나잖아요. 앞으로도 모금을 위한 다른 계획들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황철우 : 더 다양한 사업들을 고민 중입니다. 특히 더 넓은 시민들과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모금 사업에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 중이예요. 기륭전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투쟁, 희망버스와 같은 사회적 연대운동을 떠올려보면 각계각층, 또 다양한 시민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음을 모아 주셨잖아요.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만들면서도 이런 마음들이 더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우선은 4월 말, 5월 초에 비정규 노동자, 시민들과 함께하는 콘서트를 열어보려고 해요. 지금 장소를 알아보고 있고요. 이번 콘서트를 통해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죠. 또 기금 마련을 위한 경매나 물품 판매 등을 해보려고 해요. 아직 어떤 방식으로 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이제까지 사회 운동에 함께하셨던 분들이 최대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방식으로 경매를 진행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진호 :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집을 짓는 비용 이외에도 많은 비용이 들 텐데요.

황철우 : 그래서 지금 저희는 비정규 노동자의 집 주춧돌 기금과 CMS기금을 모으고 있어요. 주춧돌 기금을 내신 분들은 집 운영의 주체, 주인으로서 비정규 노동자의 집과 함께하는 거죠. 집 한 켠에 주춧돌로 함께해 주신 분들의 이름을 상징물로 모아놓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것 이외에도 비정규 노동자의 집 운영을 위한 CMS 회원도 모집하고 있는데요. 집이 만들어지면 집을 운영하기 위한 상근자도 둬야 할 것이고, 사업을 위한 기금들도 만들어야 해요. 이를 위한 CMS 회원입니다. 이미 CMS 회원 용지를 써주신 분도 계셔요. 이는 이후에 CMS 및 기부금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륭전자분회 10년 투쟁은 기륭만의 10년은 아니다. 그 10년은 연대했던 많은 시민사회단체, 개인들의 10년이기도 하고, 동시대에 투쟁했던 코스콤, KTX, 현대차 비정규직, 이랜드,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10년이기도 하다. 비정규 문제가 사회적으로 쟁점화 되고, 사회적 관심이 모여졌던 10년. 그 10년을 이제 비정규 노동자의 집으로 모은다. 그리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또 다른 10년의 세월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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