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동 이슈 콕! 짚어보기] 노동시장 구조개악

by 센터 posted Dec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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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 센터 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8월 6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노동개혁을 원포인트로 강조하면서 노사정 모두 급물살에 휘말렸다. 마침내 9월 1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한국노총이 포함된 노사정 야합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당면한 현실로 다가왔다. 노사정 야합 직후 새누리당은 노사정 합의 내용을 반영한 법안이라며 ‘노동 시장 선진화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근로 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및단기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 5개 법률에 대한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이란 행정지침으로 강행할 수 있는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 규칙 불이익 일방 변경’, 국회 입법 개정으로 가능한 ‘기간제 사용기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과 ‘파견허용업종 확대’를 핵심 관철 과제로 삼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맞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0만이 넘는 대중집회를 통해 항거했고, 민주노총은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수배상태인 한상균 위원장을 구심으로 총파업 조직으로 맞서고 있다. 또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 진영은 ‘을들의 국민 투표’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을 심판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찰의 폭력적인 물대포 직사로 농민 백남기 씨가 크게 다쳐 폭력적인 시위 진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해 정부 노동개악을 둘러싼 노정간 공방은 연말까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노동개혁이란 표현부터가 문제다. 처음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더니 ‘노동시장 개혁’을 거쳐 어느새 ‘노동개혁’으로 귀착됐다. 치밀한 개념 치환으로 개악을 슬그머니 개혁으로 바꾸더니 ‘노동시장’에서 시장을 교묘하게 떼어놓았다. 시장의 주인은 자본가들이고 대다수 노동 기본권이 박탈된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도 재벌을 비롯한 슈퍼갑들이 쥐고 있는데, 시장이란 레토릭이 사라지는 순간 노동 시장 양극화의 압도적 주범인 자본가들의 책임도 증발된다.


기획5-노동시장.jpg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반대하며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는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노동개혁이란 약칭으로 뒤바꿔 작심하고 정규직 노조(특히 민주노총)를 정조준 공격하고 있다. 양대 노총의 핵심인 대규모 정규직 노조가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노동 시장 양극화와 비정규직 양산과 확대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인가. 미증유의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면서 위기 극복의 희생양이 됐던 노동자들이 문제인가, 천문학적 초과 이윤을 빨아들이면서도 사회적 책임과는 담을 쌓은 채 땅콩회항의 갑질과 무시로 벌어지는 재산권 다툼으로 온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재벌이 문제인가.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 어느 집단의 책임이 더 먼저 추궁되어야 하나. 당연히 재벌이다. 노동개혁이 화두가 아니라 재벌개혁이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오늘날 핵심 선결 과제로 부각된 노동 시장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도된 프레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노동개혁’을 통해 만들겠다는 일자리란,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 노동의 범위를 대대적으로 확대해 청년 시절에는 알바로, 35세 이상 시절에는 계약직으로, 숙련된 장년 시절에는 파견 노동자로 평생 비정규직으로 전전해야 하는 일자리이다. 이 지경이면 비정규직이 정상 일자리로 될 것이다.


게다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징계 사유가 없더라도 업무 실적이나 성과가 사용자가 정한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깎고 언제나 해고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말한다. 사장이 성과를 이유로 노동자를 일상적으로 해고할 수 있게 되면, 노동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입이 있어도 바른 말조차 할 수 없는 직장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이나 권리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 ‘노동 현장의 암흑기’가 도래하게 된다. 사용자는 자신이 정한 기준과 평가결과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을 차등지급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직장 동료는 더 이상 협력관계가 아닌 경쟁관계로 인식되고, 자발적인 무한경쟁의 동원체제가 구축된다.


헌법에 따르면 노동 조건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해야 하건만(헌법 제32조 제3항) ‘박근혜표 노동개혁’이 정부지침과 노동법 개악으로 관철된다면 이제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권리의식이 오히려 생존에 장애가 되고,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노동의 의무만이 미덕인 ‘신유신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노동개혁’에 대해 ‘노동개악’을 넘어 ‘노동재앙’이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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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실행본부에서 정리한 〈을들의 국민 투표 11문 11답〉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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