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 착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롯데호텔 해고자 김영 씨 인터뷰

by 센터 posted Mar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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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청년들이 정당하게 대우 받는 세상을 바라며


인터뷰 진행·정리: 김남수 센터 편집부장


편집자 주: 매일 ‘일일근로계약서’를 썼다. 정규직은 공휴일에 일하면 가산 수당을 주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20대 청년 김영 씨는 취업규칙 열람을 건의했지만 롯데호텔 측은 거부했다. 그리고 나선 해고를 통보했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고 중노위에서 원직 복직과 미지급 임금을 지불하라는 판정을 받아 냈다. 롯데호텔은 이에 불복,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굴지의 대기업인 롯데호텔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선 20대 청년을 ‘일회용품’처럼 쓴 뒤 해고한 것도 모자라 그를 상대로 소송에까지 나선 것이다. 이번 호 《비정규노동》은 이 사태의 당사자인 김영 씨를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축소김영1.JPG

김남수: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영: 올해 스물넷이 됐고, 현재 방통대 2학년 진학해서 경제학 공부하고 있습니다. 거주지는 이대역 근처 고시원, 고향은 전주입니다.


김남수: 그럼 군대 갔다 오시고 학업을 위해 방통대로 진학하신 건가요?

김영: 아니오. 아직 군대는 안 갔다 왔고요. 이전에는 호주에 있었어요. 호주에서 일하고 대학 등록금 벌어 와서 방통대 진학했어요.


김남수: 호주를 가게 된 계기와 가서 하신 일은 무언지 말씀해 주세요.

김영: 고3 때 자퇴를 하고 등록금 먼저 마련하려고 갔어요. 처음 가서는 포도 농장, 캥거루 공장.


김남수: 캥거루 공장에서는 무슨 일 하셨어요?

김영: 도축된 캥거루가 오면 뼈를 발라내서 마트로 보내는 육가공 일이죠.


김남수: 호주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김영: 워킹 홀리데이로 2년 있었고요, 한국에 와서 잠깐 있다가 다시 호주로 가서 1년. 그땐 거기 대학 준비하러 갔었죠.제가 한국에 잠깐 왔을 때 한국에서의 첫 알바로 엔제리너스에서 일했어요. 롯데 계열사죠. 그때 좀 마찰이 있었어요. 주휴수당 문제로. 본사 측이랑 저랑 싸우게 된 거죠. 당시 노동법과 관련해서 아는 게 없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요. 그에 대한 응어리랄까 이런 게 남아서 추후에는 부당한 상황이 됐을 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죠.


김남수: 그렇군요. 주휴수당 문제가 불거졌던 게 생각나네요. 그런데 당시 알바 노동자 입장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영: 그렇죠.


김남수: 그런데 어떻게 문제 제기를 하게 되셨는지? 성격이 워낙 원칙적이라 따질 건 따지고 넘어가는 성격인 건가요?

김영: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고요, 소심하고 윗사람들한테 고개 잘 숙이는 부류였는데 호주 다녀온 후부터 내적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결정적으로 호주 노동환경과 한국 노동환경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 거죠. 호주의 경우는 제가 농장에서 일할 때도 사업주와 근로자의 관계가 정말 수평적이에요. 상하 관계가 전혀 없고. 그런데 한국은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질서가 딱 정립되어 있는 그런 노동환경을 한국 와서 접하니까 뭔가 아니다 하는.


김남수: 정리하자면 이런 거네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정상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말도 안 되는 한국의 노동환경을 맞닥뜨리니까 황당했던 거네요.

김영: 네.


김남수: 롯데호텔에서 일했던 라세느는 직영인 거죠?

김영: 네.


김남수: 그곳에서 초단기 근로계약, 일일근로계약을 한다는 게 구인 공고에 명시돼 있었나요?

김영: 아니오. 처음에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공고를 올릴 때는 장기간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명시돼 있었고, 일일근로계약은 일하러 간 첫날에 알았죠. 매일 근로계약서를 두 장 쓰면 된다, 한 장은 회사 거고 한 장은 당신이 가져가는 거다 하고.


김남수: 저는 일일근로계약서라는 걸 이 사건 아니면 몰랐을 거예요. 매일 근로계약서를 쓴다니요. 어쨌든 회사 측이 빠져나갈 장치를 마련해 두기 위해서 하는 거 같긴 한데. 라세느는 직원이 몇 명 정도 되나요?김영: 120명 정도 될 거 같아요.


김남수: 거기에 김영 씨처럼 초단위 근로계약을 하신 분은 몇 명이나 있나요?

김영: 한 3,40명?


김남수: 그분들도 매일 근로계약서를 쓰시는 건가요?

김영: 네.


김남수: 그분들 직무는 어떻게 되는지요?

김영: 주방 보조도 있고 홀 서빙도 있고요.


김남수: 김영 씨 업무는?

김영: 저는 주방 보조였어요.


김남수: 동료들과 친해지다 보면 이런 요구들이 이상하지 않느냐 하는 말도 나왔을 거 같은데요.

김영: 그렇죠.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대다수의 분위기는 다른 업장보다 임금 수준이 높은 편이다 보니.


김남수: 어느 정도 되는데요?

김영: 시급 6,500원요. 한 달로 치면 130~140만 원 정도요.


김남수: 어쨌든 최저임금을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알바로서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겠네요?

김영: 네.


김남수: 노동 시간은 어떻게 됐나요?

김영: 1시부터 10시까지요.


기자회견.jpg



김남수: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으신 분들 중에 김영 씨처럼 학생들도 많았나요?

김영: 네. 학생들이거나 어머님들. 아니면 저처럼 알바 개념이 아닌 조리를 전공하는 인턴이나 실습생들.


김남수: 구인 공고에 ‘장기 근무자 우대’라는 글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문구를 일반 구직자가 보았을 때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김영 씨 포함해서.

김영: 내가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구나. 알바 구하는 것도 시간대 고려하고, 장소 맞추고, 내가 원하는 직종인지 고려하는 것도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비되잖아요. 그럴 때 한곳에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글을 보면 당연히 좋죠.


김남수: 일 자체는 어땠나요?

김영: 주방 보조라고 해서 요리나 조리 쪽을 공부한 적도 없고 큰 취미도 없지만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고 재미있었어요. 또 롯데호텔이 이름 난만큼 근로자 복지도 좋았어요. 구내식당 밥도 잘 나오고 식당 내 헬스장, 이발소, 독서실, 안마기도 많고.


김남수: 그걸 모든 종업원들이 다 이용할 수 있었나요?

김영: 네.


김남수: 상사들과 관계는 어땠나요?

김영: 직원들 간의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어요. 서로 살갑게 대해주고 진짜 아들처럼.


김남수: 여기까지만 들으면 아주 좋은 상황이었는데, 취업규칙을 보고 싶다는 요청을 하셨고 거절당했잖아요. 취업규칙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언가요?

김영: 제가 들어와서 크리스마스, 신정, 설날연휴 등 공휴일에 다 나와서 일을 했어요. 그때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통해서 가산 수당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노동조합 사무실 찾아가서 조합원이 전체 근로자의 과반인지를 물었어요. 과반이면 당연히 저도 적용받는 거니까. 그랬더니 과반인 걸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그런데 왜 나한테는 적용이 안 될까 해서 취업규칙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근거 규정이 있나 해서. 그래서 인사팀에 가서 정중하게 요구를 했죠.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었어요. 취업규칙을 보고 싶다고 하니 누구냐고 물었고, 알바라고 대답하니 일일 알바에게 취업규칙 보여 줄 의무가 없으니 돌아가라 그랬죠. 그 다음날이 제 휴무였고 다다음날 나와서 일을 하다가 업무 끝나기 한 시간 전 소개 업체에서 전화 와서 하는 말이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 여자가 더 적합하다는 지시가 있었다.’였어요. 그리고 제가 휴무일 때 인사팀에서 대리가 업장에 찾아와서 주임님들한테 ‘김영 그 학생 뭐냐, 왜 취업규칙 보여 달라고 하냐.’ 하면서 뒤를 좀 캤다고 하더라고요. 


김남수: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은 건데, 심정은 어떠셨나요?

김영: 억울하고 분했죠. 동시에 한번 싸워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저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이고 노동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제 권리를 제가 지킬 수 있지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제 또래들은 이런 경우를 당하면 회사가 나가라고 하나 보다 하고 나가고 얼마나 부당한지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할 텐데 하는 마음이 크게 들었고. 이런 걸 생각하니 제가 싸워서 보여 줘야겠구나. 일용직도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김남수: 칼을 가셨군요.(웃음) 이게 일반 학생들 같은 경우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거든요. 저 같아도 소개 업체랑 한바탕 싸우고 에이 더러워 하고 나와 버릴 거예요. 사실 싸우는 게 더 힘들죠. 지노위, 중노위에 제소하기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김영: 기간제 근로자들이 갱신 기대권을 인정받는 판례는 있었는데 일용직 근로자들이 갱신 기대권을 인정받는 선례가 없어요. 그래서 선례를 남겨 보자라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죠. 중노위에서 이기고 인사과에서 합의가 들어올 때 합의 조건이 소송을 다 없던 걸로 하면 제가 받을 임금에 2,000만 원 얹어 주겠다는 거였어요. 그때도 난 무조건 선례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독려했죠.


김남수: 제소 일시와 과정을 좀 설명해 주세요.

김영: 해고 통보는 작년 3월 29일에 받았어요.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저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그 기간만큼의 임금을 다 받을 수 있고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이 90일이라 최대한 다 이용하자 해서 90일 끝나기 직전인 6월 말에 지노위에 제소했죠. 지노위에서는 졌고 바로 중노위에 재심 신청했고요.


김남수: 중노위 판정은 언제 받은 거죠?

김영: 작년 12월 11일요.김남수: 회사 측 회유는 언제쯤 들어온 거예요? 중노위 판정 이후에?김영: 판정이 그날 나고 결정서가 송달되는 게 한 달 걸렸어요. 그 사이에 세 번 정도 직접 만났어요.


김남수: 회유 시에 반 협박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김영: 네.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라세느 업장 폐쇄에 들어갈 거고 외주로 돌릴 거다, 그러면 그곳에 있는 비정규 근로자들은 구조조정 절차를 밟게 된다고 했지요.


김남수: 상당히 치사한 짓이군요. 그 회유가 아직도 들어오고 있나요.

김영: 아니오.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라 더는 없어요.


김남수: 지금 소송은 롯데호텔이 중노위에 건 거지만 김영 씨에게 싸움을 건 거나 다름없잖아요. 어떤 생각이 드세요?

김영: 사실 예상은 하고 있던 상황이라 별 생각은 없어요.


김남수: 지금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요?

김영: 지금은 영화관에서 알바하고 있어요.


김남수: 그곳 노동환경은 어떤가요?

김영: 여긴 10개월 계약에 하루 7시간씩. 매표 검표 매점 다 하죠.


김남수: 생계 꾸려가는 데는 지장이 없나요?

김영: 여긴 많이 힘들어요. 일반 알바 급여 수준, 최저시급이라 정말 힘들어요.


김남수: 청년노동자로서 대기업을 상대로 싸워야 하고 생계와 학업까지 병행하셔야 하는데 짐이 상당하시겠어요. 개인적인 애환 같은 거 듣고 싶네요.

김영: 솔직히 말하면, 맨 처음 합의 제안이 들어오고, 거절하고, 기자회견하고 그 직후에 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계시는데 식품 공장에서 일하세요. 그런데 손이 많이 아프시다고 하세요. 일은 계속 못할 거 같고 수술도 받아야 할 거 같다 했을 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사 측 합의 받아들이고 그 돈 다 받아서 어머니한테 보태서 여유롭게 쉬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과 갈등이 들었어요.


김남수: 지금 어머니는 괜찮으신가요?

김영: 일은 계속 하시는데 다행히 많이 괜찮아 지셨어요.


김남수: 청년유니온과 관계는 어떻게 맺게 되셨나요?

김영: 재작년에 청년유니온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한 노동법 아카데미를 열었는데 제가 거기 참여하면서 관계를 맺기 시작했죠. 그런 생각도 있었어요. 저는 호주로 다시 돌아가서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싶었어요.


김남수: 당시에는 노동운동을 접해 보지 못한 상태였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김영: 노동운동을 몰랐기 때문에 호주 돌아가기 전에 관련 단체를 통해서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이었죠. 호주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특히 한인 업장이나 아시아인 업장은 노동환경이 심각해요. 저도 많이 당했고. 그 문제의식이 청년유니온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였던 거 같아요.


김남수: 라세느에 계실 때 같이 계신 분들과 뭘 좀 해 보자는 얘기는 안 하셨나요?

김영: 했는데, 제가 롯데호텔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복수 노조 시대가 됐고 정규직 노조와 잘 접촉해서 저는 청년유니온도 있으니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는 그런 걸 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개선돼야 할 비정규노동 요구안을 작성해 봤고요. 일하면서 저와 관련된 일용직 의제보다도 더 관심이 갔던 건 전문대 산학실습생들의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산학실습생들에게 똑같은 일하면서 나는 알바기 때문에 시간당 6,500원을 받는데 니네는 실습비라는 명목으로 시간당 1,600원을 받는다, 부당하지 않느냐 하면서 이쪽으로 에너지를 많이 쏟았어요. 하지만 잘 안 됐고 나중에 청년유니온에 우리 이거 기획사업하자고 해서 터뜨렸죠.


김남수: 그러니까 학교 측에서 라세느라는 업체와 접촉해서 1,600원만 지급하면 된다고 얘기가 된 거잖아요. 일은 알바들과 똑같이 하는데. 식품 쪽 전공한 학생들이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 거군요. 보통 그분들은 얼마나 일하시나요?

김영: 똑같이 풀타임으로 일하죠.


김남수: 기간은 얼마나요?

김영: 방학 두 달 동안요. 제가 물어보니까 실습을 하더라도 이런 유명한 호텔에서 일을 해야 경력에 남으니까 일부러 지방에서 무리해서라도 올라오고, 하루 교통비 수준의 실습비 받으면서 서울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을 봤을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실습생 급여.jpg



김남수: 그 학생들 입장에서야 진로가 달려 있으니 문제 제기를 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겠네요. ‘열정노동’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몇 년 됐는데 많이 회자된 건 얼마 되지 않았죠. 김영 씨는 이 열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영: 저는 기독교인인데,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일하지 않은 자 먹지 말라’고. 반대로 말하면 일을 했으면 정당하게 그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내가 나이가 어리든 비정규직이든 법이 정해 놓은 선대로 일한 만큼 지급해야 한다.


김남수: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요. 구세대들이 갖고 있는 노동에 대한 천박한 인식들, ‘열정’에 관한 인식들과 정말 냉정한 현실에 부딪히고 있는 청년 세대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시대라고. 김영 씨가 이 구세대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영: 흔히들 그런 말하잖아요. 우리 땐 더 힘들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거다, 이런 말 들을 때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자기 시대의 아픔들이 더 크고 고생했던 것들이 억울하고 그랬을 수 있겠지만 이걸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에 따른 아픔이 있는 거고 우리 세대에겐 우리 세대의 아픔이 있는 건데 이걸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백 명이 있으면 백 명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거지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프고 이런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김남수: 요즘의 관심사는 어떤 건가요?

김영: 워킹홀리데이 의제를 공론화 하고 싶어요.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이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선 제도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유명하지 않고 소수 청년만 이용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아주 유명해 졌고 협정국도 스무 개가 넘어가고 있고. 요즘 청년들은 해외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이 제도의 이면에는 워킹홀리데이란 비자로 가서 일을 하는데 현지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면서 재외 국민으로서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죠. 저도 그 당사자였고. 그래서 그 개선책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김남수: 여자친구는 있어요?

김영: 아니오, 없어요.(웃음)


김남수: 혹시 모태솔로이신가요?

김영: 네. 맞아요.(웃음)


김남수: 연애도 하셔야죠.

김영: 요즘 소개팅 많이 하고 있어요.


김남수: 오. 그분들은 김영 씨가 롯데호텔 해고 소송 사건의 주인공인 거 아세요?

김영: 살짝 말은 해요.


김남수: 말하면 소개팅 상대방은 뭐라고 해요?

김영: 놀라워해요.


김남수: 하긴, 저도 놀라운데.(웃음) 그래서 애프터를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김영: 아직 다 진행 중이에요.


김남수: 판을 깔아놓으셨구나.(웃음) 문득 드는 생각인데, 학업·생계·소송까지 병행하시려면 연애할 시간이 없겠네요?

김영: 사실 그렇죠.


김남수: 시간도 돈도 들어가는 게 연애인데 3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겐 연애도 심각한 삶의 문제겠네요.

김영: 제 경우는 사이버 대학교라 학업을 병행하는 게 물론 힘들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는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오프라인으로 출석해서 강의 듣고, 생계까지 병행하는 일반 대학생들을 보면 너무 신기해요. 너무 힘들 거 같아서.


김남수: 독해지는 거 같아요. 단순히 생계에 있어서 독해진다는 거. 생각을 깊게 하는 건 여유도 없고 사치처럼 느껴지고. 후배들 보며 그런 느낌 많이 받았어요.청년노동 의제가 겉으로 드러나고 주목을 받은 게 사실상 이제 시작된 거나 다름없잖아요. 김영 씨가 그 선구자의 길을 가시는 건데 앞으로의 소망을 들으며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김영: 제 사인이 ‘사람 사는 세상’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였지만 그 문구가 굉장히 와 닿아요.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보통사람 시대’ 이런 문구를 보며 감명을 받았거든요. 사람 사는 세상에 보통 청년들도 고개 숙이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대가를 받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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