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 착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평-십대 밑바닥 노동

by 센터 posted Mar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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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한승  센터 기획편집위원




열아홉의 첫사랑은 얼굴도 가물거리지만, 그 나이에 처음 받았던 일당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도심 외곽에 신축한 5층 건물이었다. 옥상에 굵은 각목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비계를 짜는데 쓰고 뜯어낸 것들이라서 송충이처럼 대못들이 박혀있었다.

우리를 데려간 오야지가 각목을 하나 잡고 거기 박혀있는 대못을 오함마로 툭툭 치자 구부러진 못이 차렷 자세로 반듯하게 섰다. 이어서 끄트머리를 툭 치자 못이 쑥 뽑혀 나왔다. 난생 처음 보는 신묘한 기술이었다. 나머지 각목에서 못을 모두 뽑아내고 지상으로 내려서 상차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못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전날도 친구와 둘이서 인력사무소에 앉아 2시간을 기다린 끝에 결국 ‘팔리지 않아서’ 500원짜리 학식 하나를 나눠먹은 처지였다.

오함마로 치면 못은 더 구부러지고, 무진 애를 써서 펴놓은 다음에 못을 뽑으려고 치면 다시 구부러졌다. 오전 내내 일은 진척이 없었고 덕분에 오야지에게 온갖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오야지도 답답했을 것이다. ‘팔리기 위해’ 우리는 일용직 경험이 꽤 있는 척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라는 건 오함마를 잡는 폼만 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오전 내내 욕을 하긴 했지만 오야지 아저씨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어서 점심시간이 되자 꽤 푸짐한 식사를 사주며 고생 많았다고 우리를 위로했다. 자기 아들도 알바를 하고 싶다고 해서 현장에 데려왔더니 오전도 못 버티고 도망갔다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 오후작업까지 마치고 친구와 나는 생애 최초의 임금 2만 7천 원을 받았다. 일용 잡부 일당 3만 원에서 인력사무소 수수료 10%를 뗀 금액이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기획한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에는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여덟 명의 십대들이 등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의 노동 경험을 내 경험과 포개놓고 견주어보았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의 노동 세계는 20년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 아니면 노동의 양상이 전반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밑바닥노동.jpg

청소년 알바의 대명사이던 배달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음식점에 고용되지 않는다. 배달대행업체 소속이다. 호텔리어는 파견업체 소속이고, 이외에도 “유료 직업 소개, 직업 정보 제공, 도급, 민간 직업훈련이라는 이름을가진 사업자들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끼어들었다.”(39쪽) 그 결과 노동은 더 위험해지고 생존은 더 불가피하게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그 속을 헤쳐 온 청소년들의 노동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하다. 과연 열아홉의 나는 이런 노동조건에 직면했을 때 그들만큼 씩씩하게 일할 수 있었을까? 《십 대 밑바닥 노동》이나 다른 노동인권 안내서를 읽었다면 나는 현장에 만연한 인권 침해며 법 위반에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었을까?

틀림없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보통의 남자애들보다 더 숫기가없었고 말주변도 모자랐다. 당연히 일터의 관행은 내가 건드릴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견고했다. 혹시 문제를 노동청에 들고 갈 수는 있었을까? 그러면 나는 일머리도 없는 주제에 불평만 늘어놓다가 진정까지 넣은 구제불능으로 찍혔을 것이다. 당연히 인력사무소에서도 더 이상 일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더 용기 있고 정보가 많고 현명했더라도 결과가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나는 그 돈이 필요했다. 나는 《십 대 밑바닥 노동》의 경수처럼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가족의 생계를 챙겨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건진이처럼 집을 나와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도 사회적 존재로써 나에겐 그 돈이 꼭 필요했다. 《십 대 밑바닥 노동》이 말하듯이 ‘용돈 벌이’와 ‘생계형’ 노동은 구분되지 않는다.

당시 열아홉의 나와 친구가 처한 조건과 가진 깜냥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일자리는 그것뿐이었고 최초 노동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친 바, 일자리는 어차피 그렇고 그런 것이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불안정과 저임금과 위험한 작업 환경은 돈을 벌기 위해선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어떻게든 버티어 내거나, 아니면 쥐꼬리만 한 임금을 위해 형편없는 일자리에서 희망 없이 스스로를 소진시키느니 차라리 일을 포기해야 한다. 어느 쪽도 만족할 만한 선택지는 아니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한 명은 유휴 청년층이다. 다시 말해서 15~34살 전체 인구의 10.3%는 흔히 니트(NEET)라고 불리는, 일도 공부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는, 그렇다고 집안일을 주로 하는 것도 아닌 이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취업지원을 위한 청년니트 실태조사〉에서는 설문 응답자의 80% 이상이 일 경험이 있었고 니트 상태에 처하게 된 데에는 취업 실패나 노동시장의 혹독한 조기 경험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청년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부터 낮은 임금과 장시간 근로 여건 속에서 일하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거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일을 그만두는 경험이 반복된다. 경쟁적인 일터 풍토와 비인격적 대우로 스트레스가 심해지며 건강이 나빠지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없으면서 정서적으로 소진되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도 없다. 4대 보험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속적인 고용도 보장되지 않으니 자기를 돌보는 책임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성장도 미래도 허락되지 않는 노동에 몸과 마음을 다 파 먹힌 한 사람이 유휴청년층이란 이름으로 탈락할 때 나머지 아홉 명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니트족.jpg

노동 현장의 이러한 변화가 청(소)년에게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쉽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청년의 노동이고 특히 십 대의 밑바닥 노동이 이러한 경험의 출발선에 해당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청소년이 미숙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접을 하지 않으려고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를 적극 활용하고 때로 폭언폭력도 거리낌 없이 행사한다. 형편없는 보상 수준은 불성실한 노동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청소년 알바 관련 기사에 어김없이 달리는 사업주의 분노의 댓글은 이 악순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결론 대신 질문이 남는다. 평범한 청소년이 적절한 보상과 인격적인 처우를 받으며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저자들이 말하듯이 청소년의 협상력을, 집합적 역량을 높이는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는 결국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청소년은 집단적 문제해결의 경험도 없이,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일터에 나온다.”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노동조합이나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216쪽)

과연 청소년 노동자들은 순종만을 가르치는 학교, 청소년의 노동을 일탈로 취급하는 정부, 팔짱낀 채 방치하는 감독관청을 넘어서, 너무 멀리 있는 노동조합까지 갈 수 있을까?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선 이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을 찬찬히 읽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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