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 찾아나선 택배노동자들
신태중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세계적인 스포츠용품기업 나이키는 육상 선수 출신의 필 나이트와 미국 오레건 대학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이 각각 500달러씩 투자하여 만든 Blue Ribbon Sports가 그 시작이었다. 일본의 ‘오니쓰카타이거’ 회사의 신발 200컬레를 미국에 들여와 트럭에 싣고 대학 운동장을 돌며 장사를 시작한 이들의 첫해 실적은 매출 8천 달러, 순이익 250달러에 불과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매출액 343억 달러, 순이익 42억 달러, 종업원 7만 4천여명이 일하는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나이키의 비즈니스 전략은 아웃소싱이었다. 디자인과 제품개발, 마케팅과 판매는 본사가 담당하지만, 생산은 값싸게 제조할 수 있는 저개발 국가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당시 아디다스와 같은 선두 기업은 미국과 독일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후발주자인 나이키 입장에서는 나름 경쟁력 있는 전략이었다. 초기에는 일본에서 생산하다가, 70∼80년대에는 우리나라와 대만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1982년 나이키 신발의 86%가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될 정도였다. 80년대 한국과 대만의 생산공장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지자 나이키는 다시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현재 나이키가 직접 고용한 직원은 7만 4천여명에 불과하지만, 생산기지 공장의 노동자는 전 세계 42개국 567개 공장에 100만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수원시, 창원시, 고양시의 인구와 비슷한 규모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나이키에 큰 시련이 닥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저개발 국가에 세워진 생산공장에서 저임금, 아동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나이키는 노동착취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민단체, 종교단체, 노조, 학생, 소비자, 시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매출액과 순이익,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나이키 직원이 아닌 하청공장 노동자의 문제라며 나이키 책임이 없다는 입장 발표가 더 큰 저항을 가져왔다. 결국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이키는 필 나이트 회장이 나서 공식 사과하며 하청공장의 노동조건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나이키와 하청공장 노동자간의 직접적인 고용관계는 없다. 하지만, 나이키가 하청공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생산기지를 이전하면 대규모 해고위기에 직면하고, 납품단가를 낮추면 임금과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은 악화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록 직접적 계약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정점에 있는 핵심기업인 나이키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 하청공장 노동착취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는 나이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이키는 여전히 논란이 있긴 하지만, Supply Chain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택배노동자들의 현실도 이와 유사하다. 택배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기보다 일정한 구역을 담당하는 위탁대리점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 본사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나이키 하청공장 노동자와 비슷하다 하겠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설립필증을 교부받은 택배연대노동조합이 진짜 사장 찾기에 나섰다. 최근 노동운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진짜 사장 나와라’ 구호가 택배 노동현장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현대·기아차, 삼성전자서비스, 티브로드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했던 것처럼, 택배노동자들도 택배업체 본사가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위탁의 재위탁의 복잡한 계약관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진짜 사장이 나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택배기사 고용형태 변화>
※ 자료 : 신태중(2017)
사실 택배연대노조는 노조 설립필증 교부 이후, 조합원이 소속되어 있는 위탁대리점을 중심으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성실히 교섭에 응한 대리점주는 없었다. 일부 위탁대리점은 노조의 교섭요구에 폐점을 예고하며 택배기사들과의 계약해지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노조측은 필증 교부 이후, 국내 최대 택배업체가 전국 지점장 회의를 통해 ‘노조 설립 필증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회의를 개최하고, 지점장들은 위탁대리점 사장들을 대상으로 ‘노조 대응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택배업체 본사가 위탁대리점 뒤에 숨어 부당노동행위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위탁대리점은 ‘바지 사장’에 불과하여 아무런 권한이 없고, ‘진짜 사장’ 택배업체 본사가 노동조건 개선의 핵심 주체라고 노조는 보고 있다.
택배회사와 택배기사간의 직접적인 계약관계는 없지만, 노동자성은 인정된다. 고용노동부가 택배연대노조에 노조 설립 필증을 교부하며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택배기사는 지정된 구역 내에서 사측이 정한 배송절차와 요금에 따라 지정된 화물을 배송하는 등 업무내용이 사측에 의해 지정되는 점, 사측이 작성한 업무매뉴얼 등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근무시간이 사실상 정해져 있어 택배회사 또는 대리점으로부터 업무내용수행 등과 관련한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점, 특정 사용자에 전속되어 계속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사용자의 허가없이 유사 배송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
정부의 택배기사 노동자성 인정에도 불구하고 택배회사들은 계약관계를 이유로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택배기사는 위탁대리점 소속으로 교섭대상은 본사가 아닌 계약을 맺고 있는 대리점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자성 인정은 물론 기존 여러 연구에서도 택배기사의 사용종속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직접고용에서 간접위탁계약으로 계약관계가 변화하였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는 위탁대리점주가 아닌 택배회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계약관계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건 무책임한 자세이다.
국내 최대 택배업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을 위해 UN Global Compact에도 가입한 기업이다. 노동 및 인권 존중, 환경보호, 반부패의 10대 원칙을 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기업이라면 더더욱 노조의 요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계약관계만 없을 뿐, 택배기사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 아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은 이해관계자의 소통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계약관계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던 나이키가 더 큰 저항에 부딪혔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짜 사장을 찾는 택배기사들의 요구에 문제해결의 핵심기업인 택배회사들이 응답할 차례이다.
참고자료
나이키 홈페이지 (http://manufacturingmap.nikeinc.com)
류하경(2016.4.4.), 진짜 사장 나와라, 매일노동뉴스
설립 필증 발부 이후 택배노동자 노동권 실현방안 국회 토론회 자료집, 2018.1.18.
신태중(2017), 택배이용자가 알아야 할 택배기사 노동, 서울노동권익센터 동향과 이슈 2017-2
이영면·정란아·신태중·전채연(2013), 고장난 거대기업, 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