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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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jpg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 〈자화상自畵像〉

가로 20.5㎝×세로 38.5㎝│국보 제240호│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소장

당연히 있어야 할 두 귀와 목, 상체는 없고 탕건 윗부분은 잘려 나간 채 화폭 위쪽에 자리한 얼굴은 정면을 매섭게 보는 이의 시선을 따라 다닌다. 미술계에서는 화가의 의도적인 생략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팀에서 x-선 촬영과 적외선 및 현미경 등을 통한 과학적 분석을 실시한 결과 그림 속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다. 생략된 것으로 여겨왔던 귀는 붉은 선으로 표현되었고, 옷깃과 옷 주름도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채색까지 완벽하게 된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린 셈이다.


유령처럼 허공에 얼굴만 떠있다. 부드럽게 올라간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단정하게 꽉 다문 입술, 굼실거리는 가느다란 수염은 표정에 생동감을 준다. 정면을 응시하는 형형한 눈빛은 강렬하다 못해 서늘함마저 감돈다. 이것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니다. 삼백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가 내 앞에서 “너는 누구냐?” 하고 묻는 것만 같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한국 미술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초상화에서 유일하게 국보 제240호로도 지정되었다. 윤두서는 조선시대 명문가 자손으로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자이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외증조 할아버지다. 열다섯 살에 혼인을 하고 스물두 살에 부인과 사별을 했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했지만 당시 노론의 시대여서 남인인 그의 출사 길은 막혀 있었다. 당쟁에 휘말려 귀양 간 형과 벗의 거듭된 죽음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꿈을 접고 마흔다섯 살 무렵 고향 해남으로 조용히 내려가 은둔하는 생활을 한다. 그래서일까 〈자화상〉에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새겨진 인생의 그늘이 엿보인다. 


자화상의 영단어인 ‘self-portrait’는 ‘발견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protrahere’와 ‘자신’을 뜻하는 ‘self’를 결합한 단어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로 해석된다. 살아온 삶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전해져 얼굴로 나타난다. 그래서 얼굴에는 사람과 역사가 담겨 있다. 자신의 심연을 해부해 그림 속에 영원히 정지시킨 수많은 자화상 중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애써 외면했던 그의 시선을 다시 마주한다. ‘저 부릅뜬 눈으로 얼마나 자신을 응시했을까.’ 실제로 윤두서는 엄격한 성격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저 눈빛이 한치의 흔들임조차 없어질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마주했을까. 자신의 내면세계와 솔직하게 마주하며 윤두서는 그의 아팠던 삶을 치유했으리라. 윤두서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며 수도 없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을 질문 “나는 누구인가?” 요즘 나에게 다시금 치열하게 물어야 할 가슴이 뜨거워지는 질문이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by 센터 posted Mar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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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jpg

                                                *구스타프 클림트가 에밀리 플뢰게에게 보낸 엽서 1908.7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검은 줄기의 나무에 꽃과 열매를 대신해 빨간 하트를 가득 담은 아름다운 엽서를 에밀리 플뢰게에게 전했다. 클림트가 그림에 쏟은 열정만큼이나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정열적이었음이 느껴진다.클림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키스〉이다. 한 남자의 입맞춤과 강렬한 포옹, 이를 품고 달콤함에 취해 있는 듯한 여자.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 선, 그리고 패턴을 이용하여 환상적인 연인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들은 그림을 보는 순간 몽환적인 남녀의 키스에 빠져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클림트는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그의 주변에는 창작의 뮤즈가 되고픈 허영기 가득한 여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몸을 파는 거리의 여성부터 관능적인 모델, 그리고 귀족 부인까지…. 그는 어떤 여성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욕망에 몸을 맡겼다. 그 가운데에는 그의 아이까지 낳은 여인도 여럿 있었지만 어느 누구와도 진지한 연인 관계를 지속하거나 동거도 하지 않은 나쁜 남자였다.하지만 이 나쁜 남자를 진짜 사랑 앞에서 주저하도록 만든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에밀리 플뢰게. 그녀와의 완벽한 사랑을 꿈꾼 탓일까? 그녀의 청혼도 거부한 채 20여 년 동안 정신적인 사랑만 나누며 마지막 생의 순간까지도 그녀를 곁에 두었다.클림트에게는 두 우주의 여인이 있었다. 한 우주는 육체적 사랑을 나누며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던 여러 여인들과 다른 우주는 정신적 사랑을 나누며 이상주의에 빠지게 만든 단 한 여자, 에밀리였다.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실제로는 불완전한 반쪽짜리 사랑을 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지만 글쎄. 플라토닉 러브가 그가 이루고 싶었던 완전한 사랑의 또 다른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윤아/센터 기획편집위원


기적

by 센터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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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The Census at Bethlehem.jpg

베들레헴의 인구조사The Census at Bethlehem 1566년, 목판에 유채, 116×164㎝, 안트웨르펜 왕립미술관


그림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5경∼1569)의 대표작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 조사의 명을 내리자 모든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에 입성한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날 베들레헴의 성경 속 풍경입니다. 그럼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그림 속 요셉과 마리아를 찾아볼까요?


낡은 오두막집 앞 창가의 한 남자는 공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고 인파가 무리 지어 있습니다. 아마도 세금을 내는 사람들 같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강 위로 봇짐을 지고 걷는 고단한 사람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땔감을 나르는 사람들, 불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 군데군데 존재감 없는 군상들은 거칠고 냉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추위에 떨고 삶에 지친 어른들 밑에서도 아이들은 마냥 겨울을 즐기고 있습니다.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얼음판에서 팽이를 치는 아이들, 바구니를 썰매 삼아 타는 아이들. 역시 아이들은 새로운 희망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조연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는 놀라운 기적이 숨어 있었습니다. 전경 중앙에 푸른 망토 차림에 나귀를 탄 만삭의 여인과 그 앞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바로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그들은 묵을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마구간에 여장을 풀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곳 말구유 속에 아기 예수를 낳았던 것입니다. 사실 성모 마리아 또한 왕도 공주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나사렛 처녀일 뿐. 오히려 병든 노인의 딸이고, 고단한 목수의 약혼자이며, 자신의 몸 하나 의지할 곳 없어 마구간에서 새 생명을 낳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여인의 몸이었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역사의 현장은 군중 속에 묻혀 아무도 마리아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거룩하신 역사가 이 땅 낮은 곳에서 아기와 같이 연약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놀라운 기적을 우리는 어쩌면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by 센터 posted Apr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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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jpg

416 세월호 참사를 추념하는 김순미 작가의 작품

 

 

언젠가는 반드시, 전부 밝히도록 하자.

더 이상 아무도 비밀 때문에 괴롭히고 괴로워하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자.

비밀 속에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지는 일이 없는 세상으로.

그렇게 맹세하고 있는 ‘누군가’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곳곳에 있을 것이다.

-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 집〉 

 

 

해마다 봄은 찾아오고 또다시 4월, 피어난 꽃들과 마주한 나는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 한다. 4월은 참 잔인한 달이다. 온통 세상은 하얗게 노랗게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화사 하기만 하고, 이 아름다움이 4월 16일 그날의 슬픔과 분노마저 잊히게 만들까 야속하고  잔인할 뿐이다. 하지만, 저 하늘에서 다시 꽃처럼 별처럼 아이들이 살고 있을 거라 생각 하면 작은 위안이 된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떠나보낸 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불러도 대답은 없고, 보고 싶 어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고 싶으면 사진을 보고, 만져보고 싶으면 남겨진 흔적을 매 만져보지만 허전함에 온몸 마디마디가 아파온다고•••. 아무리 마음을 달래보지만 공허함 만 느껴질 뿐 정작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통곡하고 나서야 겨우 숨이 쉬어진다고•••.  다시금 이런 날이 무수히 반복되고 반복되어서야 결국 가슴 속에 묻을 수 있단다. 세월호 참사는 8년이 지났지만 누가, 왜, 어떻게 이런 통곡의 바다를 초래했는지 여전 히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로 남아있다. 이 비극의 원인과 과정을 돌이켜 분석하고 반성하 는 것은 참사를 정리하는 중요한 절차의 일부분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장 두려운 것이 ‘망각’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 을까 봐 관심이 사라질까 봐 그것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는 지에 따라 이후 우리 사회의 재난 참사와 관련한 법과 제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기 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은 힘이 세니까.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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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

by 센터 posted Jan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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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캡ss처.JPG

2024년은 내가 만든 다이어리에 일상을 기록하고 계획한다.

2023년 작업 중 가장 공들인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지구를 위한 52주의 여행) 다이어리를 드디어 받았다.

 

12월23일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가는 해를 갈무리하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신년 다이어리 구입을 위해 서점을 찾는다. 내 취향을 고려해 다이어리를 고르고 사는 일은 신중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나에게 종이다이어리는 생활필수품이다. 내 머릿속 지우개는 수시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휘발되기에 기록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실 휴대폰 앱 다이어리도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한 자 한 자 손으로 직접 쓰면서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나름 의미있는 일이다.

 

다이어리에 대한 나의 역사는 꽤나 길다. 계획과 일정을 당연히 적어놓고 일상적 메모 뿐만 아니라 일기도 쓰고 작업노트로 활용된다. 간혹 지난 기록들을 읽다보면 잊고 있던 과거의 내가 생생히 느껴지고 현재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대견스럽기도 하다. 수많은 선택의 과정 속에 치열히 고민하면서 결정에 대한 책임으로 아픔도 겪으며 한 뼘만큼 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좋아하고 또 기록의 힘을 믿는다.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한 발자국을 또 남겨둔다.

 

상황 또는 사건에 대해 쉽게 일반화시키지 말자!

사람 또는 집단에 대해 쉽게 단정 짓지 말자!

생각 또는 주장에 대해 쉽게 냉소 짓지 말자!

결국 내가 만들어 논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자!

 

언젠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이 글이 빛바랜 사진처럼 빛을 잃어갈 때 난 또다시 새로운 글로 내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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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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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jpg

황소/종이에유채/32.3*49.5cm/1953년무렵


길 떠나는 가족.jpg

길 떠나는 가족/종이에 유채/29.5*64.5cm/1954년


이중섭 그림.jpg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종이에 잉크와 유채/20.3*32.8cm


외딴섬 외롭게 버려진 누추하고 작은 집, 세상 절벽 끝에 몰린 가족이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방 한 칸에는 궁핍과 고독 그리고 애틋함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이 집 안주인은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 여인으로 한국 이름은 ‘이남덕’이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남편 이중섭이 아내에게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화가 이중섭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작가로서 초중고 미술 교과서에 붉은 색감의 대담하고 거친 선묘가 특징인 그의 작품 <황소>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 시대는 어둡기만 했지만 청년 이중섭에게는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일본 유학 중 숙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 열애를 하고, 그의 연인 마사코 또한 ‘사랑’이란 두 글자만 품고 겁도 없이 조선 땅에서 조선인의 아내 남덕이로 살아간다. 이들은 아주 잠시 행복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의 행복을 불행으로 바꿔버렸다. 해방을 맞이하자마자 혼돈 속에 전쟁과 대면하면서 부산과 제주도를 오가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남덕은 폐결핵에 걸리고 아이들마저 병이 들어 결국 일본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중섭은 궁핍과 고독에 맞서 가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그리움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창작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결국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쓸쓸히 갈무리했다.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데 그림의 정서는 천진무구한 소년의 정감으로 경쾌하고 해학적이다. 종이 한 장 살 수 없어 담뱃갑의 은색 속지에 그릴 수밖에 없었던 옹색함과 비루함 속에서도 그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오롯이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애달픔과 그리운 가족에 대한 향수, 부재의 갈구가 바로 화가 이중섭에게 창작 활동의 원천을 제공해 주었으리라. 그림의 어원이 바로 그리움이니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의 안타까운 삶과 사랑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작품은 세월의 무게만큼 고스란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할 나위 없이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 그리고 못 견디게 자식을 보고파했던 아버지 이중섭. 

나 또한 오늘, 그가 그립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슬픔〉은 작은 시작이다

by 센터 posted Oct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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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ow.jpg


“지난겨울 임신한 여자를 알게 됐다.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하루 치 모델료를 다 주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있어.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주는 힘 아니겠니? 그녀의 이름은 시엔(Sien)이다.”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여자…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숭고해 보인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것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것 같은 이 여인이 바로 고흐가 사랑한 여자 시엔이다. 1995년 나 홀로 유럽 여행 중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이 여인을 처음 마주했을 때 ‘슬픔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2년 후 1997년 다시 시엔을 찾아갔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고흐는 불행한 시엔의 아픔까지도 사랑했다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의 실루엣은 나올 수가 없다. 그 후 한참이 지나 2007년 다시 그녀와 마주했다. 궁금해졌다. “당신은 저 착한 남자의 따스한 사랑이 얼마만큼 위로가 되었나요?” 이렇게 묻곤 울컥했다.
시엔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고단한 인생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밑바닥, 혹독한 운명의 굴레 속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이 착한 남자의 사랑만이 살아가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림 속 시엔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알게 되었다. 힘겨운 삶에 지쳐 버린, 슬픔이 가득한 엄마의 몸에 기대어 새로운 생을 준비하는 한 생명이 꿈틀대고 있었다. 시엔에게는 이미 아이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한 생명을 또 품었다는 것이 시엔에게 살아가야 하는 힘이 되었을까, 아니면 신마저 원망하고 있었을까.
고흐는 시엔을 모델로 60여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그 중에서도 〈슬픔〉이란 작품은 고흐가 그린 최초이자 최후의 누드화이다. 고흐는 시엔을 대상으로 한 이 작품 외에는 어떠한 누드화도 그리지 않았다.



글|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내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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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bet 돌깨는 사람들.jpg
돌 깨는 사람들 Les Casseurs de pierre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 1849, 캔버스에 유채, 165×257cm 
쿠르베의 삶과 예술의 리얼리티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상상력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들로부터 착취당하면서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으로 내몰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 있었다.

황량한 채석장, 노동의 순간을 포착했다.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의 그림 〈돌 깨는 사람들〉은 열악하고 남루한 노동의 현장에서 일하는 지치고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미화하지 않았다. 보여지는 그대로 표현했다. 
사실, 이 그림은 지금 우리시대 눈으로 보면 별 감흥없이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1849년 그림이 세상에 나왔을 때 평단에서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당대에 주목받던 들라크루아나 앵그르가 표현했던 아름다운 세계는 전혀 없었다. 그 시대 예술은 아름다움이 절대 가치였고, 이상적인 표현을 위해 왜곡과 변형도 가능했다. 당대의 예술가들이나 부르주아들이 생각하는 이 그림은 낯설고 그야말로 ‘추한 것’이었다. 쿠르베가 화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그는 있는 ‘사실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추한 것 역시 ‘진실’이라고 외쳤다. “내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리는 것도, 대상을 미화하는 것도 거부하며 지금, 여기 살아 숨 쉬는 현실에서 보이는 것만 그렸다. 가히 혁명적이었다.

쿠르베는 서양미술사에서 리얼리즘Realism, 즉 사실주의로 문을 활짝 연 위대한 화가다. 그림의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고 무조건 리얼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미술에서의 ‘리얼리즘’이란 사회 비판적인 작품으로 사회의 어둠, 참담한 현실, 외면되는 모순 등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쿠르베의 리얼리즘은 단지 그 시대의 모습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앎을 바탕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쿠르베는 사회주의 혁명에 깊숙이 관여했고 혁명이 실패하자 감옥에 갔다. 몇 달 후 병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고 재산과 그림을 몰수당하자 스위스로 망명한다. 그의 나이 54세. 그리고 4년 후 스위스 어느 호반에서 객사하고 만다. 

황망한 죽음이긴 하지만 쿠르베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그 길을 올곧게 꿋꿋이 걸어갔다. 쿠르베는 자신 스스로 예술가이기 전에 인간이기를 자각했고, 지성적 자유를 얻기 위해 그림을 선택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의 목적은 이상화된 절대미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 더 나아가 서양미술사에 있어 예술가는 ‘무엇을 왜 그려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사회적 현실로부터 찾으려 했던 최초의 사조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쿠르베를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유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화가’가 아닌 ‘배우’가 죽었다

by 센터 posted Jun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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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jpg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는 커다랗게 부릅뜬 눈에서는 오만과 자신감이 엿보이며

둥그렇게 꼬아 올린 우스꽝스런 콧수염의 익살맞은 표정은 마치 코미디언 같은 달리의 모습이다. 


명화1.jpg

마치 피자 반죽 판이 축 늘어져 흐물거리는 시계들과 죽은 말인지, 아님 사람의 반쪽 얼굴인지 모를 도상,

1931년 작품인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은 그의 대표적 이미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하면 제일 처음 연상되는 그림이 있다. 마치 피자 반죽 판이 축 늘어져 흐물거리는 시계들과 죽은 말인지, 아님 사람의 반쪽 얼굴인지 모를 도상, 1931년 작품인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은 그의 대표적 이미지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대개 이 이미지가 미술교과서에 실려서 시험문제 출제용으로 외우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만약 우등생이었다면, 달리는 ‘초현실주의’이며, ‘프로이드’의 열렬한 추종자로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화하면서 천재성을 발현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달리의 회화 작품은 아연할 만큼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사물들의 정확한 표현, 재현된 내용 안에서의 일반적인 경험, 그리고 상식으로는 전혀 감지하기 어려운 비현실성의 혼합 등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초현실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달리가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한 기간은 고작 5년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초현실주의의 대표주자로 생각한다. 1939년 달리는 초현실주의의 대장격인 앙드레 브르통에 의해 제명당하고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추방된다. 이는 그가 히틀러와 파시즘을 지지한 것 (달리는 항상 이를 부정했다고 한다)과 그칠 줄 모르는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달러에 굶주린’ 화가로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달리를 가장 싫어했던 큰 이유는 아마도 그가 값싼 인기와 부를 얻기 위해 벌였던 괴상한 자기선전과 갖가지 기행과 엉뚱한 스캔들에 기인했을 것이다.


화가였던 달리는 머리의 꽃장식과 귀걸이, 엽기적인 콧수염 등 얼굴 치장에 공들인 모습만 보더라도 자신이 곧 ‘예술’이자 ‘달리’임을 온몸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가 있다. 말년에 자신을 모델로 찍은 여러 사진 작품들을 고가의 로열티를 받기도 했는데 그의 몸으로 한 예술은 또 다른 창작 작품이었던 셈이다.

사실 달리가 죽자 많은 예술가들은 ‘화가’가 아닌 ‘배우’가 죽었다고 한다. 당시 다른 예술가들의 질투 섞인 말이겠지만 진정한 예술가의 생애를 달리는 제대로 살았던 것 아닐까?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우리 모두 함께해야 한다’

by 센터 posted Jun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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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활, 기업의 생산 활동 등에 있어 인간의 이기심으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 결과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 대지는 메말라 사막화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거대한 숲은 자연발화로 엄청난 면적이 불타오르고 황폐해지면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은 생존을 위해 인간의 지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잦은 접촉은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은 지구별 생태계를 지키지 못해 벌어진 사태로 지구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바다, 숲, 강물, 동물, 식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기후 변화는 곧 기후위기다. 기후 행동은 더이상 늦출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더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감염병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마비된 채 한 해를 보냈다. 돌이켜보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 팬데믹에 맞서 이겨내는 법, 우리 모두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지구인은 더이상 지구가 아프지 않도록 불편하더라도 지구별을 위해 환경을 보살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선명해졌다. 멈추어야 할 것은 멈추고 바꾸어야 할 것은 바꿔야만 한다. 세계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기후 행동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구인들의 다급한 과제이다.바르게, 아름답게, 정의롭게 사는 것은 결국 모두 똑같은 것이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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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by 센터 posted Sep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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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파리 변두리 몽페르메유 지역에서 당시 이 지역 중학생이던 지에드 벤나 Zyed Benna와 부나 트라오레 Bouna Traore 가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몸을 피하다가 전력공사 송전소 변압기에 추락해 감전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도시 외곽에서 차별과 경제적 빈곤을 안고 살던 이주민을 중심으로 참혹한 시위가 벌어져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했고, 사진작가 제이알은 이 현장을 카메라로 기록하던 친구를 사진 속에 담았다. 이 작품 속 청년은 20년 후 201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레 미제라블’의 감독 래드 리 Ladj Ly 다.

 

사진 한가운데 건장한 흑인 청년은 마치 총으로 상대를 겨눈 듯하지만 실제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카메라다.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무기로 보이게 하는 대중의 인식 기저에는 편향된 미디어가 쏟아내는 잘못된 인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갇혀 살고 있는지 세계적 사진작가이자 거리예술가 제이알(JR, 41)은 냉정하게 알려준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작품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My aim was always to let the work speak for itself .”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의 ‘제이알:크로니클스 JR:CRONICLE ’ 전시장 벽에 적혀 있는 글귀다. 그의 예술관이다. 제이알은 세계 각국을 돌며 가난하고 소외된 도시에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로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거기 개입된 인물들을 모두 편견 없이 귀하게 바라본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대형 벽화 형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크기의 압도감, 시각적 쾌감 때문인지 세상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메시지에 쉽게 설득당한다.

“나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 예술을 선보이고 싶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엄청난 프로젝트를 벌이고, 그들이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다.” 제이알의 질문은 단순하다.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적어도 제이알은 ‘예술은 힘이 세다’고 확신한다. 그는 작업을 통해 전쟁을 멈추고, 국경을 넘으며,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불편했던 감정을 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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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기원하는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젝트는 다양한 직종의 이스라 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대형 초상 사진을 국경 지역 곳곳에 부착한 거리 전시다. 사람들은 각각 유쾌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만 봐서는 그들이 어디 출신지를 알 수 없다. 한 인간으로서 서로 닮았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일러줄 뿐이다. 인간으로서 유대감과 함께 장벽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제이알은 사진 속 모델들에게 이-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두 국가 해결안 (Two-state solution)’과 평화 지지 서한에 서명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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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위대함을 믿는다.

by 센터 posted Dec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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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위대함을 믿는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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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6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임할 수험생들을 위한 부적이다.

담대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그래서 아는 문제는 술술 풀고, 찍는 문제마다 정답이기를 기원한다.

 

듣고 또 듣고, 외우고 또 외우고, 풀고 또 풀고 끝이 없는 공부 늘 반복되는 일상 많이 많이 힘들지.

인고의 시간이 값진 합격이 되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승윤아, 어떤 점수가 나오든 너는 올 한해 참 치열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삶이었단다.

혹여 시험에서 실수한다 해도 그것이 곧 삶의 실패가 아니니 담대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마주하자.

승윤아, 어제 이런 말을 했지!

‘아쉬움이 있지만 후회는 없다’ 맞아, 아쉬움이 없는 사람은 없단다.

결핍을 채우면 또 다른 결핍이 오게 마련이지.

그동안 느끼고 채워왔던 결핍의 과정 속에서 너는 엄청나게 성장해 왔단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다 보면 인생이란 게 만들어지더라.

앞으로 영화 같은 너의 인생에 무대에서 결핍을 채우고 또 다른 결핍을 느끼면서 성장해가는 네 모습에

아빠 엄마는 미소를 짓게 되는구나.

멋진 나의 아들 승윤아! ‘너’라는 위대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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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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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Guernica  1937, 캔버스에 유채, 349.3×776.6cm,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그린 폭력에 대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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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éee 1951, 캔버스에  유채, 109.5×209.5cm, 파리 피카소미술관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지역에서 주민의 25퍼센트에 달하는 3만 5천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항할 무기 하나 없이 맨손에 알몸이다. 벌거벗은 여인과 아이들은 공포와 체념에 간신히 버틸 뿐이다. 얼굴을 투구로 가린 채 경직된 자세로 선 병사들은 그들을 제압하려고 총과 칼을 겨누고 있다. 감정 없는 로봇 같은 군인들의 야만적인 모습에 인간의 폭력성과 전쟁의 참혹함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림의 전체적인 어두운 분위기는 그 다음 장면에서 분명 학살을 암시한다. 이 서사는 새드 엔딩Sad Ending으로 끝날 것이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간판스타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이 작품에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e)’이라는 제목을 부쳤다. 


피카소는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1950년 10월부터 12월까지 황해도 신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민간인 대학살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그림을 그렸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었던 피카소라면, 당연히 미군이 자행한 학살을 비판하려는 목적을 가졌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런데 막상 이 그림은 공산당이나 자유진영당 모두에게 혹평을 들었다. 공산당은 학살을 당하는 피해자가 한국인인지, 학살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미군인지 즉, 학살의 주체가 선명하지 않다며 비판했고, 자유진영당에서는 미국을 한국전쟁의 원흉처럼 그려냈다며 반미 선전물이라고 비난했다. 이 그림이 발표되고 피카소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명성에 흠집이 생겼고 미국에서는 피카소 입국을 거부해 한 번도 미국에 가지 못했다.


피카소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피카소 자신은 “미군이나 어떤 다른 나라 군대의 헬멧이나 유니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모든 인류의 편에 서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보다는 전쟁 자체가 가져오는 참혹한 현실을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싶어 했을 뿐이다.

에라스무스의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글귀에 다시 한 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2022 서울 이동/플랫폼 노동 사진 공모전 당선작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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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뜸상 | 박윤준

- 작품명 : 휴식이 필요해요

- 직종 : 택배 노동자

택배 노동자의 70% 이상 분류작업 투입. 8시간 노동에 1시간 휴게 시간이라는 법정 기준은 그림의 떡. 장시간 노동. 과로사 위험. 좀 늦어도 괜찮다는 사회적 인식 전환과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하는 노동 정책 시행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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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금상 | 이철원

- 작품명 : 심야 이동 노동자의 겨울나기 

- 직종 : 대리운전기사

추운 겨울밤, 콜을 기다리다 따뜻한 어묵과 컵라면으로 추위를 달랩니다. 잠시 추위는 덮을 뿐 헛헛한 마음까지 녹이지는 못합니다. 누군가는 출근하고 누군가는 퇴근하는 어깨 위로 아침노을만 무심하게 내려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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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금상 | 이형진

- 작품명 : 날개가 있다면~

- 직종 : 서비스매니저(생활가전 설치 및 A/S) 

제품 무게 55kg. 2인 1조 노동 절실. 과다한 업무와 저임금, 화장실 갈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아 휴식 시간은 꿈에서나 가능. 날개가 있다면 내 노동이 숨을 쉴 수 있을 텐데. 꿈에서라도 날개를 달아 한껏 날아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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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림상 | 김문성

- 작품명 : 한 끼 

- 직종 : 배달 노동자

빨리빨리! 경쟁이 생존과 직결되는 사회에서는 밥 먹고 쉬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배달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별점 테러를 당하는 세상. 휴식도 건너뛰고, 끼니마저 건너뛴 채 배달 노동자들은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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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림상 | 김종태

- 작품명 : 노동의 무게와 부피

- 직종 : 퀵서비스

이고 지고 나르는 저 물건의 무게를 측량할 수 있을까요. 건물 형태는 변했지만, 노동자의 삶이 여전하다는 것을 전태일 동지는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자의 삶이 나아진다면 저 짐의 무게를 알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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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림상 | 김창수

- 작품명 : 이 시간 이후로 배달하단 죽을 것 같다

- 직종 : 배달 노동자

펑펑 눈이 옵니다. 배달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위험한 곡예를 하다가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놀랍니다. 쌓인 눈을 털면서 위험도 함께 털어냅니다. 위험 앞에 누구라도 ‘노동 멈춤!’ 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나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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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림상 | 오귀자

- 작품명 : 어르신 걱정마세요. 우산이 되어드릴게요

- 직종 : 요양보호사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의 대부분은 여성.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가져온 저평가된 노동. 오늘은 누군가에게 우산이 될 수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의 우산 아래 보호받아야 합니다. 펼친 우산을 접지 않도록 필수 노동에 걸맞게 돌봄 노동이 제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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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림상 | 임광엽

- 작품명: 힘내! 거의 다 왔어

- 직종: 배달 노동자

숨차게 계단 오르며 바라보는 시선이 가닿는 곳 어디. 멈출 수 없는 고단한 일상의 노동. 마지막 계단에 다다르면 숨 고를 수 있을까. 모두가 소망하는 일에 치여 허덕이지 않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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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늙을 것인가'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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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정독도서관으로 가다 보면 만나는 벽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글쎄•••  마냥 자유롭지 못하다. 
산다는 것, 늙어간다는 의미이다. 
왜 이렇게 ‘늙는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걸까? 
아마도 점점 가까워진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아님 사회가 젊음을 찬미하고 늙음의 추함으로 인정하는 분위기 때문일까?
잠시 위로가 되는 건 세상에 모든 생명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서히 늙는다. 모두 늙어간다는 것이다. 
늙음을 애써 밀어내려하지 말고 부정하기 전에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더 진지해져야 한다.
“너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장벽 앞에 
은교에 대한 사랑을 그저 숨기고 삭혀야만 하는 노시인(이적요)의 
애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영화 〈은교〉의 대사다.
젊음도 늙음도 누구에 의한 선택이 아니다. 
그냥 자연의 순리일 뿐,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저 시간의 흐름인 것인데 과연 ‘늙었다고’ 하여 사랑을 모르겠는가?
시간이 흐른다하여, 사람이 늙는다하여, 사랑하는 법을 잊어겠는가?
어느새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아닌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묻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이 윤 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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