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Thank you Banksy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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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jpg

Banksy’s ‘Love is in the Air’

 

평균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35초! 더 이상 지체하면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철창신세를 질 수밖에 없기에 신출귀몰하게 일을 해치우고 사라져버린다. 불법의 틀에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은밀하게 나타나 번개처럼 위대한 작품들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는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뱅크시Banksy’다. 뱅크시도 태그네임일 뿐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철저히 자신의 얼굴은 물론 신상정보를 숨긴 채 활동하는 정체불명의 거리의 낙서가street graffiti writer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아트 테러리스트” 또 다른 누군가는 “게릴라 예술가”라고 부른다. 사실, 뱅크시는 자신을 ‘예술가’로 불리는 것도 거부한다.

 

유명한 일화로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 등 초대받지도 않은 자신의 그림을 무단으로 살짝 끼워 넣고 잠적하는 도둑 전시를 한 적도 있었다. 미술관의 권력을 무력화시켰다. 이렇듯 사회적 권위를 잘 가지고 노는 그는 어두운 골목이나 더러운 길거리 그리고 낡은 건물 벽을 캔버스 삼아 자본주의 위선을, 제국주의 탐욕을, 상업주의의 허무를 그리고 기득권의 부조리를 쥐, 원숭이, 경찰, 군인, 여왕, 어린이를 등장시켜 이 세상 모든 권력을 조롱한다.

 

몇 해 전 소리소문없이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가 곳곳에 반전 메시지를 강하게 전했다. 작년에도 우크라이나 보로디안카에서 전쟁 중 무너진 건물 잔해 외벽에 그려진 벽화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남겼다.

 

게릴라처럼 세계의 거리 곳곳을 몰래 찾아가 전쟁, 기아, 난민, 환경, 국가 권력 등 인류가 처해 있는 위기의식을 담은 벽화를 선보여온 그의 작업은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단 웃긴다. 그리고 슬프다. 세상을 비트는 그의 촌철살인의 낙서와 익살스러운 그림은 웃음과 슬픔 속에 메시지를 동반한다.

뱅크시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과 잃어버린 사회적 발언의 통로를 찾아 투쟁에 나선 것이다. 현재 그는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사뭇 그의 다음 테러가 기대된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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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씨의 얼굴도 참 예쁘다

by 센터 posted Jun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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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굴.jpg

정은혜 화가가 4년간의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니얼굴〉의 포스터이다. 〈니얼굴〉의 서동일 감독은 은혜 씨의 아버지로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딸을 응원하기 위해 처음엔 순수한 기록 차원에서 시작했던 촬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이 작품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는 우수상을 받았다.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 은혜 씨는 시각예술 능력자다. 발달 장애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감정과 기억을 형상으로 표현하는데 뛰어난 재주가 돋보이는 반면 공간 구성이 다소 변칙적이거나 과대 과소 표현이 종종 일어난다. 이들은 한정된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심을 보이면서 좋아하는 것을 반복해서 그린다. 발달 장애 작가들은 본능적이고 순수하다. 이미지들은 걸러 내지 않은 날 것을 그대로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불완전하기도 하지만 때론 지나친 완전함이 그림에 혼재되어 있다. 이미지는 심미적 쾌감을 준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은혜 씨처럼 얼굴을 그리는 캐리커처 화가는 드물다. 자의든 타의든 다운증후군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때문에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던 은혜 씨는 나름대로 끈질기게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수백 장의 ‘니얼굴’을 그린다. 그저 한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은혜 씨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작품 ‘니얼굴’이 탄생되었다. 사실, 얼굴은 쉽고도 진부한 듯하지만 난해한 대상이다. 얼굴의 표상은 실질적인 ‘사실’과 함축적인 ‘상징’ 양자 사이에 어디쯤 있다. 이렇듯 인물화는 화가와 모델 그리고 관람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화학 작용에 의해 다층적인 해석과 느낌을 요구한다.

은혜 씨는 “안 예쁜 얼굴은 없다.”라고 말한다. 각자 얼굴이 가진 아름다움을 찾아 개성 있는 얼굴을 그려준다. 다양한 얼굴에서 다양한 감정이 읽힌다. 그림 속 인간이 사뭇 궁금해진다. ‘그는 원래 잘 웃는 따스한 사람일까?’ 작가의 표현력 덕분에 그림 속 주인공과 소통의 거리가 멀지 않다. 그림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은혜 씨의 극진한 조형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당당히 증명해 보였다. 은혜 씨의 얼굴도 참 예쁘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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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라

by 센터 posted Apr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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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rahison des images1.jpg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 La trahison des images〉은 단순하면서도 참 쉬운 그림이다. 캔버스 안에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한 극사실적인 짙은 갈색의 나무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파이프 밑에 프랑스어로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글이 그림을 부정한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 파이프가 아니라니. 그림은 관객에게 수수께끼를 던졌다.


다시 작품에 그려진 대상을 천천히 본다. 분명 파이프가 맞다. 하지만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그 자체로 파이프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실제 이 파이프에 불을 지펴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단지 물감으로 색을 입힌 파이프 그림일 뿐이다. 작가가 아무리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 단어 ‘파이프’ 역시 사물을 지시하는 단어일 뿐 파이프라는 본연의 존재는 아닌 것이다. 언어란 단지 A를 B로 부르기로 한 일종의 사회적 약속일 뿐 본질은 아니다.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진다.


그림 앞에 다가가는 순간 익숙함이 낯섦으로 바뀐다. 이미지와 텍스트 간에 생기는 모순된 어법이 마그리트 미학의 핵심이다. 당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독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물체를 뜻밖의 장소에 갖다 놓거나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을 조합하거나 배치하여 익숙함이 낯설음으로 바뀌는 새로운 시각언어를 만들었다. 마그리트 역시 일상적이고 친숙한 사물을 예상치 않은 배경에 대치하거나 크기를 왜곡시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런 이미지 배반을 일으켜 평소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통념, 사물, 상식, 논리에 물음표를 던져 보라고 권유한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지각은 오감으로 전해오는 다양한 정보들을 ‘사실’로 인정하는데 별다른 망설임이 없다. 하지만 과연 ‘사실’은 정말 진실일까? 마그리트는 우리가 사실로 규정해 의심하지 않았던 ‘진실’이 어쩌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의 한계일 수 있으니 한번 쯤 모든 것을 열린 시선으로 의심을 품어보란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아는 진실이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이미지의 진실성

by 센터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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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보.jpg

 

네를 걷는다. 교차로마다 대선 현수막으로 어지럽다. 건물 외벽이나 담벼락에 15명의 대선 후보들이 일렬로 유권자들과 시선을 맞추며 다양한 표정으로 “저를 뽑아주세요!” 호소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포스터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공약이나 텔레비전 토론, 대중 연설, 네거티브 공격, 그 밖의 여러 활동과 비교하면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에는 힘이 있다. 이미지에는 후보들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포스터에 표현된 얼굴과 슬로건이 실제 인물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따라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표심으로 이어진다.

 

이재명 후보는 지나칠 정도로 밝게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표정이 친근하다. 흰 머리카락이 힐끗힐끗 보이는데 그것을 굳이 포토샵으로 다듬지 않았다. 웃을 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눈가와 이마의 주름, 미간 사이의 세로 주름도 미세한 모공도 그대로 두었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이미지 전략이 엿보인다.

 

엷은 미소가 다소 어색해 보이는 윤석열 후보는 얼굴을 매만진 흔적이 보인다. 특히나 헤어 스타일은 마치 이발사가 한껏 ‘후카시’를 넣어 인위적으로 부풀린 티가 난다. 후보의 머리 위에 위치한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란 슬로건은 국민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닌데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뿐. 그동안 그의 언행과 행적으로 봐서는 너무나 동떨어진 슬로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상정 후보는 여성 후보라 그런가 정당 후보 중 가장 따뜻한 느낌이다. 근엄이나 권위, 엄격하고는 거리가 멀다. 후보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선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네 명의 후보 중 자신의 정당 색인 노랑을 배경으로 노출시켜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사실 다른 포스터보다 시선을 더 붙잡는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 견주어 웃음이 가장 인색하다. 아마도 후보의 큰 장점이자 단점은 유순해 보이는 이미지다. 강인한 정치지도자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우유 빛깔 피부톤을 조금 어두운 구릿빛으로, 굳게 다문 입술과 단호한 눈빛은 더욱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과학경제강국’이라는 메시지의 세로쓰기 형식은 엄격하고 원칙적인 분위기로 완벽하게 보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흐트러짐 없는 이과생의 결의에 찬 모습이다.

 

표정이 다양하다. 미소를 짓든 근엄한 표정을 짓든 문제가 아니다. 소탈한 인상, 부드러운 인상, 지적인 인상, 날카로운 인상 등 포스터 속 표정과 인상의 진실성은 그가 살아온 삶과 그동안 해온 행동, 내뱉은 말이 보증해준다. 선거는 표심을 얻기 위해 각종 전략과 전술, 때로는 권모술수까지 구사하는 치열한 검투장에서 과연 이 ‘왕좌의 게임’에서 승자는 누구일지? 함박웃음을 누가 지을지 궁금해진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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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시선

by 센터 posted Dec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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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png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1887-1956), 〈정월 초하루 나들이〉, 1921년, 채색목판화, 38×26㎝, 개인 소장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가죽 위에 비단을 덧댄 한국 여인들의 신발은 매우 아름다워 장식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조선에 대한 그녀의 친절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림은 정월 초하루 설날 풍경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광화문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해태상 주변 좌판에서 가족들이 고무풍선을 사며 놀고 있다. 예스러운 설빔을 잘 차려입은 젊은 엄마와 함께 나들이 나온 두 아이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조선의 풍경이지만 왠지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그림 〈정월 초하루 나들이〉의 제작 연도는 100년 전인 1921년이다.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2년 후다. 일제강점기 새해를 맞이하는 광화문이 활기찼을지 몰라도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차가운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었다. 빼앗긴 들에 봄을 기다리던 때, 나라에 ‘빛’이라고는 찾아보기 암울했던 시대를 상기하면 마냥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림 속 분위기는 풍요롭고 여유롭기만 하니 혹시 조선총독부 선전물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작품의 화풍도 일본 우키요에 목판화 양식이 깔려있어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그림 속 사람들의 삶이 소소한 기쁨에 젖어 있으며, 그들이 입은 한복 묘사는 기품이 있고 멋스럽다.

아무래도 영국인 키스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아픔 따위는 공감하지 못한 듯하다. 그녀에게는 이런 풍경이 지극히 단순한 이국적인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정치성이 배제되어 순수하다.”라고 말한다. 글쎄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시대의 아픔 속에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애잔한 삶이 지속되어 왔음을 느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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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한 슬픔_아메데오 모딜리아니<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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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스웨터를 입은 여자.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 /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Jeanne Hébuterne with Yellow Sweater Man

캔버스에 유채, 1919~1920년, 65x100cm, 솔로몬R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길쭉한 얼굴, 가늘고 긴 목, 둥글게 늘어진 어깨,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 없는 공허한 푸른 눈,알 듯 모를 듯 정제된 표정이 인상적이다.그림 전체에 흐르는 붓질과 단순한 색채는초상화의 격조와 품위를 높였다. 그림의주인공인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은 화가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의 마지막 연인이자 모델, 아내였다.


1920년 1월 25일 새벽, 6층 건물 창문 난간에 만삭의 젊은 여인이 위태롭게 서있다. 새날의 여명은 어김없이 밝아오는데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그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겠다’며 뱃속에 8개월된 태아와 함께 허공에 발을 내딛고 곧 추락했다. 잔의 자살은 이 드라마의 새드엔딩이었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세간에 가장 슬픈 드라마로 기억되며 모딜리아니의 삶과 예술을 신화로 완성시켰다.


이탈리아 유대인 출신으로 파리의 가난한 이방인이었던 모딜리아니는 32세에 잔을 만났고, 14세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잔의 부모는 술과 마약에 중독돼 방탕한 생활을 하는 가난한 무명화가와 교제하는 것을 결사반대했지만, 잔은 가족과의 인연마저 끊고 그와 함께 살았다. 1년 뒤에는 딸도 태어났다. 가난이 그들을 춥고 배고프게 했지만 열렬히 사랑하며 서로의 모습을 그리고 새로운 희망도 만들어 갔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였다.


모딜리아니는 생애 첫 개인전을 열지만 누드화 몇 점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게 돼 전시회는 서둘러 문을 닫고 만다. 그의 첫 전시회이자 마지막 전시회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모딜리아니에게 허락된 운명은 잔인했다. 가난과 질병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왔음을 느낀 모딜리아니는 완전히 술을 끊을 수 없었다. 죽음으로 인한 공포보다는 잔과의 이른 이별이 더 큰 공포였으리라. 그 짧은 창작의 시간과 고통 속에 26점이 넘는 잔의 초상화를 열심히 그렸다. 이별에 대한 슬픔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잔의 초상화는 보면 볼수록 애달픔이 전해온다. 사랑에 모든 것을 내맡겼으나 그렇다고 사랑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아니었다.


‘불멸의 연인’ 모딜리아니와 잔의 장례식은 각각 다른 곳에서 치러졌고, 다른 곳에 묻혔다. 모딜리아니 가족과 지인들이 잔의 부모에게 간청해 10년 만에야 비로소 페르라세르 묘지에 합장했다. 그들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화가.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생,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죽다. 이제 막 영광을 움켜쥐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그 밑에 ‘잔 에뷔테른. 1898년 4월 6일 파리 출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죽다. 모딜리아니에게 목숨까지 바친 헌신적인 동반자.’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

by 센터 posted Jul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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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jpg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폴 고갱Paul Gauguin , 1848~1903년, 1897년 유화 141 Ⅹ 376 cm 보스턴 미술관


반복되는 일상 속에 파묻혀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문득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작품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의 긴 제목 만큼이나 그림의 크기도 높이 139센티미터, 너비 375미터로 어마어마하다. 이 대작은 고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려졌다. 당시 성병으로 몸은 병들고 가난은 지속되고 사랑하던 딸의 죽음으로 정신적 고통마저 심했던 고갱은 결국 자살을 결심했고, 유언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등장인물들은 고갱이 원시의 이상향을 찾기 위해 가정과 문명을 버리고 선택한 남태평양의 타히티다. 배경은 전체적으로 푸르게 인물들은 햇빛에 그을려 노란 피부색을 띠고 있다.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 순서로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누워있는 연약한 아기는 인간의 탄생과 출발을 의미하며, 중앙에서 열매를 따는 젊은이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는 모습이 연상되어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간의 삶을 나타냈다. 그리고 왼쪽의 웅크린 채 두 팔로 얼굴을 감싼 백발의 노인은 인간의 죽음을 상징한다. 고갱은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우리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던진 것이다. 


고갱은 죽기 전 미친 듯이 밤낮으로 이 그림에 그렸다. 작품을 끝내고 고사리 숲으로 들어가 비소 한 통으로 자살을 감행하지만 모두 토해내고 이후로 더 고통스런 창작의 시간과 삶을 이어갔다. 

“딸 이름은 알린,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었네. 알린의 무덤과 꽃들, 그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야. 그녀의 진짜 무덤은 내 곁에 있고 이 눈물이 진짜 꽃이라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장벽

by 센터 posted Feb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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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장애인의해우표1.jpeg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 기념 우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는 계단 앞에 있다. 한없이 무력해지고 공포로 다가왔을 테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이동할 권리인 이동권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계단은 물리적 장벽이다.

장애인은 이동 약자다. 장애인이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사회라면, 장애인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에게 관대한가? 점자 표지판은 드물고, 계단은 많고, 휠체어용 승강기의 잦은 고장으로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저상버스도 아직 부족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려면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돈이 든다. 애초에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사회는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급해야 하나? 우리 사회가 쓰는 비용이 너무 적다. 올해 윤석렬 정부는 장애인 권리 예산 중 0.8%(106억 원)만을 통과시켰다. 저상버스 늘리는 비용은 아끼면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진압할 때 드는 비용은 아끼지 않는다. 교통공사와 경찰이 휠체어 장애인 탑승을 막기 위해 지하철 4호선과 6호선 지하 환승 구간 좁은 플랫폼에 철제 펜스를 치고 방패를 든 경찰 600여 명을 투입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장애는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날 수도 있지만, 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비장애인과 다른 존재로 ‘비인간화’, ‘타자화’하는 것에 무심한 듯하다. ‘장애자’로 부르며 40여 년 전 만든 기념 우표, 그때와 지금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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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의사

by 센터 posted Apr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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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사.jpg 

중세시대에도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감싸는 망토를 입고 새의 부리를 형상화한 마스크 위에 안경, 모자, 그리고 장갑을 낀 채 진료를 봤다. 간혹 감염자들의 지나친 접근도 저지하려고 날개가 달린 모래시계를 든 지팡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복장은 의사들이 페스트 감염을 피하기 위한 보호복으로서 기괴한 마스크에 은밀한 비밀이 있었다. 새의 부리 안쪽에 면역력을 높이는 여러 가지 약초를 채워 훈증으로 자신이 감염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했다. 불행하게도 전염병 의사인 줄은 즉시 알아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질병의 세균 이론과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의상이 질병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받지는 못했다.1630년 프랑스 의사 샤를 드 롬Charles de Lorme이 나폴리 가면 축제에서 본 의상을 착안해 페스트 마스크와 보호복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치명적인 패션은 지금까지 베니스 가면 축제에 종종 등장한다.


대유행 감염병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

이 낯선 이름이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앗아가 버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바이러스는 뛰지도, 걷지도,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데···. 

하지만 유령처럼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병원체 미생물이지만 

세상을 뒤흔드는 위력이 아주 막강하다.

이렇듯 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할 때마다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수 세기 동안 인류는 끊임없이 질병과 맞서고 극복하지만 

바이러스 또한 인간의 도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른 변이된 바이러스, 

돌연변이로 새롭게 새롭게 등장한다.

바이러스도 삶이 참, 바쁘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절망이 가져온 희망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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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jpg

희망 Hope, 캔버스에 유채, 1886년, 142x112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안개가 낀 듯 적막하고 황량한 대기 속에 한 여인이 보인다. 흰 천으로 자신의 두 눈을 동여매고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여인은 겨우 몸을 추스르듯 구체 위에 맨발로 웅크린 채 위태롭게 앉아있다. 물은 점점 차오르고··· 여인이 보듬고 있는 낡은 악기에 소리를 낼 수 있는 줄은 전부 끊어지고 단 한 줄 밖에 없다. 여인은 달래듯 줄을 뜯으며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가엽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이 ‘절망’이 아니고 ‘희망’이란다. 사실 희망이라 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가혹하다. 음울하고 처연하다. 당시 미술 비평가들조차 제목에 의문을 제기했다. 작가는 “단 하나의 코드로도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고 반박했다.


조지 프레드릭 와츠George Frederick Watts는 영국의 화가이자 조각가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여왕시대에 활동하며 상징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가난한 피아노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그는 자신을 ‘펜 대신 붓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양딸이 사망한 직후 최고조에 이르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며 그린 〈희망〉은 바로 그런 상징을 응축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에서 ‘희망’ 메시지를 읽어낸 유명인사들 덕분에 그림은 더욱더 유명해졌다. 1958년 ‘자유를 향한 위대한 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연설 주제로도 등장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초 흑인 대통령이었던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어두운 감방 벽에 그림을 붙여놓고 수없이 바라보며 희망을 꿈꾸었다고 한다. 젊은 청년 버락 오바마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의 설교 중에 이 그림을 만나 감동을 받고, 훗날 대통령 선거에 나가 그림과 내용을 이야기하며 유권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이 그림 한 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몸부림치는 민중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남아있던 희망! 신화에서도 희망은 이렇게 눈을 가린 모습으로 몸부림치며 버텼다. 세상의 모든 절망은 찬란한 희망을 기억에 품은 중력의 무거움이다. 지금도 가슴이 저려오는 절망의 한 자락이 찬란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버티자!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주격이 아닌 소유격인 나의 삶!

by 센터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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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jpg

 

“너는 누구냐?”

내가 묻는 건지?

네가 묻는 건지?

 

나는 엄마다.

나는 아내다.

나는 딸이다.

나는 며느리다.

나는 누나다.

나는 언니다.

나는 친구다.

그리고

나는 디자이너다.

나는․․․

 

오늘도 ‘나’를 찾는다.

 

점점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딸로․․․

주격이 아닌 소유격인 나의 삶!

가족의 성장을 위해 각자 스스로 도모하도록 뒷심을 쓰면서도 그들의 발전 앞에 나의 발전이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년을 맞이하길 원하고 바랐건만, 안타깝게도 가족이란 명제 앞에 자신의 욕망을 아무 후회 없이(?) 내려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안주하는 중년이 되어가는 듯싶다.

비 오는 수요일․․․

여름이 머문 자리에 가을비가 온다.

구석구석 남아있던 여름의 잔영을 낙엽과 함께 쓸어버리듯 노랗게 빨갛게 타오르던 자작나무도 이제는 이별을 고하려 한다.

수줍게 속살을 살짝 내비치는 나무들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바람결에 흩어져버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해묵은 다이어리를 정리하듯 부질없는 욕심은 버려야지 하면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놓지 못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보길 바라며․․․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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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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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jpg

 

내 짧은 미국 생활의 경험상 미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종주의는 나쁘다고 동의한다. 본인이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분명 인종주의자임을 부인하지만 차별이나 혐오 표현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이들을 일상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미국에서 인종 차별 문제는 흑인 대 백인이라는 대립 구도로써 아시아인의 차별과 혐오는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문제였다. 다시 ‘아시아인 혐오’의 등장은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코로나19를 ‘중국 우한바이러스’라 부르면서 대선에서 주요 지지층인 백인 우월주의자를 결집하려는 선동과 일부 언론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아시아인 혐오에 부채질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어 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길거리, 지하철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일러스트 작가 R. 키쿠오 존슨R. Kikuo Johnson이 그린 4월 5일자 《뉴요커NEWYORKER》의 표지 삽화다. 제목 ‘지연된Delayed’은 모녀 사이로 보이는 아시아계 어린 소녀와 여성이 뉴욕 지하철 플랫폼에서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초조하게 지하철을 기다린다. 엄마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고는 전방을 바라보고, 어린 딸은 엄마가 놓치고 있는 다른 주변을 살핀다. 그림을 보는 내내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경계심과 두려움 사이에 놓인 모녀의 몸짓은 미국 내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의 공포 속에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녀가 안전하게 무사히 집에 도착하기를 기도한다. 

 

세계인권선언의 첫 조항은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명시하듯 인종 차별은 국제 범죄다. 누구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위협을 받아선 절대 안 된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존중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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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by 센터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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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과 페로.jpg

시몬과 페로 Cimon and Pero(daughter breastfeeding her father in prison) 1630 / oil on canvas / 155 × 190 cm


작품은 페테르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시몬과 페로 Cimon and Pero>이다. 그림은 우리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다. 감옥 안에서 두 손과 두 발이 묶인 죄수인 늙은 남자는 새하얗고 풍만한 가슴을 가진 젊은 여자의 품안에 안겨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젖을 빨고 있다. 설상가상 철창 바깥에선 간수 둘이 놀란 표정으로 망측한(?) 상황을 훔쳐보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관계는 뜻밖에도 연인 사이가 아닌 부녀지간이다. 로마시대에 ‘시몬’이란 사람이 왕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혔다. 시몬은 굶어 죽게 하는 형벌인 아사형을 받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해산한 지 얼마 안 된 딸 페로는 감옥으로 면회를 갔다가 너무나 굶주린 탓에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를 보고서 자신의 젖을 물려 아버지의 목숨을 연장시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마 당국은 페로의 효심에 감동받아 시몬을 풀어준다는 것이 그림 속 숨은 사연이다. 사실 이 그림의 내력과 의미에 대해서는 별별 설이 나돌고 있지만···.

로마의 역사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쓴 책 《기념할 만한 행위와 격언들》에 전하는 이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였고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보기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또는 생각하기에 따라 남녀의 애정행각이나 불편한 근친상간으로 비화할 수도 있고 가족 간의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될 수도 있는 이 그림을 사전 정보 없이 처음 접했다면 과연 우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 마냥 이상야릇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림은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편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우리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눈으로 본 것만이 귀로 들은 것만이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 진리를 자주 잊는다. 그래서 우리네 삶에 종종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이윤아 | 센터 기획편집위원


 전시정보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전 2015.12.12~2016.04.10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성인(만24세 이상) 13,000원 대학생/청소년 11,000원
http://www.rubens2016.com


해피엔딩

by 센터 posted Feb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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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세이.jpg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1/1653의 수산나와 두 노인Susanna and the Elders

1610년, 캔버스에  유채, 170 x 121cm, 바이센슈타인 성


여러 화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수산나와 두 노인〉을 그렸는데, 화가들의 ‘인권 감수성’에 따라 표현과 메시지가 다르다. 이탈리아 여성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겁탈’이라는 주제로 묘사했다. 그녀가 17세 때 아버지의 동료 화가이자 스승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길고 고통스러운 재판을 치러야 했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오명과 치욕감은 이후 그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산나의 얼굴에는 싫다는 빛이 가득하다. 겁에 질린 수산나의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이 돋보인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달아날 수 없음을 그림의 구도에서도 알 수 있다. 수산나의 등 뒤 꽉 막힌 벽은 출구가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재판관이라는 높은 지위를 가진 두 노인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수산나를 짓누르고 있다. 



여기 하나의 드라마가 있다.

수산나는 용모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신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여인이었다. 남편 요아힘은 부유한데다 바빌론에 사는 유대인 가운데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수산나는 정오가 되어 손님들이 모두 집밖으로 나가면 비로소 정원에 산책을 나가곤 했다. 사건이 있던 날도 수산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빈 정원에서 두 명의 하녀와 함께 산책을 했다. 그날 따라 날이 무척 무더웠던 까닭에 목욕을 하기 위해 두 명의 하녀에게 올리브 오일과 연고를 가져오라고 시키고, 정원 문을 잠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는 연못에 몸을 담갔다. 하지만 정원 안에는 이미 두 노인이 숨어 있었다. 이들은 수산나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겁탈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알몸의 수산나 앞에 갑자기 나타난 두 노인은 그녀에게 “자, 정원의 문은 닫혔고 우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 만일 거절하면 부인이 젊은 청년과 정을 통하려고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소.” (성서 다니엘서 13장 20~21절) 이렇게 협박했다.하지만 수산나는 비명을 질러 결국 두 노인으로부터 겁탈만큼은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다음날 두 노인의 모략으로 수산나는 위기에 빠진다. 재판에서 사람들은 수산나의 주장보다는 재판관이자 공동체의 존경받는 장로인 두 노인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수산나에게 사형 평결이 내려지고 가족들의 통곡 속에 수산나가 형장에 끌려가려는 순간 소년 다니엘이 나타났다. 다니엘은 두 노인의 증언에 의심을 품고 두 노인에 대한 분리 심문을 법정에 요구했다. 분리 심문에서 다니엘은 “수산나의 간통 현장을 어디에서 목격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 노인은 “아카시아나무 아래서”라고, 다른 한 노인은 “떡갈나무 아래서”라고 대답했다. 서로 일치하지 않은 다른 답변으로 유대인들은 두 노인이 수산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음을 알아채고 크게 분노했다. 당연히 두 노인은 현장에서 처형됐다. 

성서 속 수산나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여성은 드물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희망의 '안녕'

by 센터 posted 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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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떠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도착했다.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야속하게도 잘도 흘러만 간다.

아침에 찾아온 해는 땅거미 지면 기우는 것처럼 말이다.

한겨울 추위가 물러서면 산들바람에 쉼도 잠시, 곧 무더위가 찾아오고 그러다 어느새 가을 서리가 떨어지면 또다시 혹한의 겨울을 다시 맞이한다.

아이가 태어나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점점 늙어간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 역시 같은 과정의 변화를 마주한다.

신세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쉰세대가 되고 새것도 결국 헌것이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헌것은 새것에 밑천이 되고 거름이 되니 해묵은 것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여기저기 희망찬 새해에 복을 빌어주는 문자메시지 보내기에 분주하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술집에서 초록색 병을 늘어놓고 한 해를 되돌아보며 새해를 계획하고, 누군가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와 덕담을 나누며 새해 소망을 기원하고, 또 누군가는 새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양념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한가로이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평범한 일상의 하루를 정리한다.

2021년에게 아픈 마음을 토닥이며 ‘위로의 안녕’을 뜨겁게 고하고 애써 슬픔을 감추며 ‘희망의 안녕’을 2022년에게 수줍게 청한다. 2021년을 그리움 속에 묻고 2022년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의 설렘으로 작은 변화를 기대해 본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영화와 같은 일들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하며 언제나 도전과 기쁨으로 우리의 심장이 뛰기를 소망한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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