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하라”

by 센터 posted Aug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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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이용석열사정신계승사업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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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조합 대의원 대회에서 말하고 있는 생전의 이용석 열사(@이용석노동열사정신계승사업회)


이용석 열사! 아니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님! 

이렇게 부른 지가 얼마만인가요? 정말 낯서네요. 2003년 열사가 분신하신 이후 15년 만에 불러보는 직책인 것 같습니다. 저 기억 하시나요? 당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담당 공공연맹 김태진 부위원장입니다. 해마다 뵙고 있지만 이렇게 편지글로 보니까 처음 보는 듯 굉장히 새롭네요. 올해는 유달리 더운 날씨입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하네요. 저는 지금 종묘공원에 있습니다. 이 본부장님이 2003년 10월 26일 제1회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 진행 중에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외치며 분신하신 그 장소에 잠깐 들러보았습니다. 


“아악~ 누군가 분신했다! 으아아 어떡해! 어떡해~” 화염에 휩싸인 동지의 거센 몸부림과 주변여성 동지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군중들의 웅성거림이 혼재되며 그 주변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대오 위치로 봤을 때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이하 근비노조) 조합원임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장 주변에 있었던 저도 그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제 역할은 분신하신 본부장님보다는 당황하는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챙기는 게 더 급한 일이었습니다. 저와 연맹 동지들은 우왕좌왕하는 조합원 대오를 급히 빼서 근로복지공단 본사 앞으로 이동하도록 했습니다. 경험상 향후 투쟁을 위한 거점 확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마무리할 때까지 지난한 40여 일간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본부장님의 분신 후 신분과 유서를 확인하면서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아니 왜 분신했지?” 라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더랬습니다. 근비노조가 당시에는 갓 출범한 신생노조라 극한투쟁을 할 정도의 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심 파업의 목적도 서로 잘 모르는 조합원들의 ‘단결’일 정도로 조직으로든, 조합 간부로든 분신할 만한 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동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담당 부위원장이라고는 하지만 대전에서 간부 교육 때 잠깐 보고 연맹회의실에서 근비노조 대책회의 때 몇 번 본 게 다인지라 본부장님이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지, 어떤 아픔을 품고 계신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것은 근비노조의 동료 간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대에게 편지 쓰는 이제야 정말 묻고 싶네요. 이용석 본부장님 왜 그러셨어요? 왜? 무슨 이유로? 31세 꽃다운 나이에 분신이라는 그 무서운 선택을 하셨나요? 누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하셨나요? 본부장님이 서울서 회의하고 목포행 심야버스에서 쓰셨던 ‘야간의 공공연맹 빈 사무실이 그리도 허전해 보인다’는 유서같이 우리의 투쟁이 그리도 희망이 없어 보이셨나요?


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했으니 역시 대답을 안 하시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저도 본부장님을 보내고 그 부채감에 6년을 더 비정규직 담당 부위원장으로 부산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의 비애와 고통, 투쟁을 함께했네요. 그리고 본부장님 평전을 만든다고 목포 공부방도 가보고 태어난 곳 상태도도 14년간 가보고 하면서 당신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본부장님은 당시 우리가 알고 있던 근비노조 광주본부장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처음 노조를 만들고 단위노조 지역본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으나 단지 일개 단위노조 지역 대표자만의 고민을 하지 않았지요.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퇴근 후에는 목포에서 가난한 서민들의 자녀 공부방을 수년간 직접 운영할 정도로 당신은 민중을 사랑한 실천적 의인이었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지역 명문대를 나왔음에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가혹한 현실 속에 당신이 목숨 바쳐 보호해주려 했던 공부방 어린 동생들의 미래도 얼마나 암담했을까요. 회사생활과 공부방의 바쁜 일상 속에서 노조 간부를 할 틈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본부장님은 기꺼이 노조를 만드는데 앞장섰고 초대 지역본부장까지 맡았습니다. 그래도 근비 조합원들한테는 노조가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고 생각하셨겠지요. 하지만 노조를 만들고 전국 동지들이 모여 회의하고 연맹에서 교육도 받고, 2003년 2월부터 시작된 수많은 열사투쟁 정국의 한복판에 있었던 당신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사물을 봐도 비범한 자는 평범한 자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도 본다지요. 당신은 회의를 거듭할수록 근비노조의 문제가 병가 문제나, 휴가 몇 개 늘리는 게 아니라 신분을 바꾸는 투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겠지요. 근비가 노동부 산하이고, 나아가 수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키는 정권이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직관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중요성을 본부장님은 그때 이미 알고 계셨던 거지요. 그래서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컸나 봅니다. 당시 수많은 노동조합 간부들도 비정규직 개념도 잘 모르는 때인데 당신은 이미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근비노조의 투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노트북에서 발견한 쓰다만 ‘노무현 대통령께’의 편지글에도 목포공부방 청소년들의 살아가는 얘기, 어려운 얘기부터 하셨던 거지요. 아마도 그 편지글을 완성했더라면 그리고 직접 부쳤더라면 결과를 기다린다고 그 선택을 안 했을까요? 그런데 당신은 편지글을 완성하지도 않고, 부치지도 않고 끝내 분신이라는 선택을 하셨네요. 그것 또한 편지글 따위로 해결될 게 아니라 생각하셨겠지요. 그 생각을 하니 또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이 그때 그토록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아파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 연맹은, 민주노총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후회가 됩니다. 이용석 본부장님! 처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때 함께하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며칠 후면 목포에서 흑산도를 지나 3시간 넘게 고속훼리로 달려야 이를 수 있는 당신의 고향섬 상태도에 들어갑니다. 올해로 14년째 가고 있네요. 저도 기장 앞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바다하면 이골이 난 사람인데 2004년 본부장님 어머님의 요청으로 처음 상태도 섬을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 없네요. 오지 중에 오지라 할 만한 척박한 섬의 환경에 놀랐고 그 섬에서 나고 자란 당신의 어릴 적 순수한 삶과 열사의 삶이 상호 투영되는 듯하여 섬을 방문하고 나서 어떤 말이나 글보다 당신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용석 본부장님. 

2003년 분신 이후 15년이 흐른 지금 그래도 당신의 항거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 공약에 공공부문 문제해결은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었습니다. 당신께서 편지 대신 죽음을 선택해 경종을 울렸던 노무현 정부에서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되어 당신이 외쳤던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많이 발전은 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열사의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용석 본부장님. 아직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제는 부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보시기에 상급단체 노조의 불 꺼진 사무실은 아직도 허전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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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전라남도 신안군 상태도에서 태어난 이용석 열사는 근로복지공단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공부방 대표로도 활동했다.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본부장으로 활동하다 2003년 10월 26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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