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에 무엇이 있을까?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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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강 건너에 무엇이 있을까? 

강 건너에 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펼쳐질까?


나는 늘 강 건너를 동경해왔다. 강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는 제대로 몰랐으나, 나는 강을 건너보고 싶었다. 내가 강을 건너 가보겠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님아, 그 강에 몸을 담그지 마오!”라고 말해 주었다. 그 강에 들어가서 헤엄치는 사람은 아주 많고, 강을 건너려다가 실패하면 다시 강 밖으로 나오기도 어렵다고 했다. 강을 건너 뭍에 닿지 못하면 강에서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저 멀리 떠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강을 건너 뭍으로 가는 사람은 정말 소수였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강을 건너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수영 실력은 물론이고, 강에 뛰어들 때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강물의 흐름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수영 실력은 기본이지만, 물살도 세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강을 무사히 건너 뭍으로 가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못 먹어도 GO!”라고 외치면서, 강을 건너가 보기로 했다. 기초 체력을 잘 다지고 굳은 의지를 가지면 강을 건너 뭍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을 건너기 위해 수영 교실에 등록했다. 수영 교실은 수영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뿐이지 나를 강 건너로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수영 교실에서는 수영해서 강 건너로 가든 산으로 가든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고, 여기서는 일단 수영하는 방법만 가르쳐준다고 했다. 수영하는 법을 잘 배워서 혼자서 강에 들어가 수영할 준비가 되면 수영복도 하나 준다고 했다. 수영복을 입고 뭘 하든 그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강을 건너 뭍에 닿은 소수의 사람은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험난한 강을 건너기로 한다면 수영복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험난한 강을 좀 더 수월하게 건널 수 있는 구명조끼와 오리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구명조끼와 오리발은 수영 교실에서 주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알아서 준비하라고 말해주었다. 수영 교실에서는 준비운동부터 가르쳐줬다. 강에 들어가면 일단 몸이 물에 떠야 수영을 할 수 있으니 차근차근 물에서 가라앉지 않을 수 있는 기초 체력과 물에서 호흡하는 법, 팔을 뻗는 법, 물장구를 치는 법을 배웠다. 


일단 수영 교실에 등록하면 비록 수영복 없는 맨몸이라도 강물에 몸을 담글 수 있기도 했다. 수영을 가르치는 코치들은 수영 교실 수강생들에게 일단 강물에 들어가더라도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했다. 아직 제대로 수영할 수 없는 상태라서 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강바닥에 발이 닿는 데까지 가보고 강물이 어떤지를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영 교실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수영복도 없이 그냥 맨몸으로 강에 뛰어들었다. 한가하게 준비운동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삼십 년 전에는 수영복 없이도 강물에 뛰어든 선배들이 강을 잘 건너갔으니 자기도 괜찮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삼십 년 전에 맨몸으로 강물에 뛰어들어 뭍에 오른 선배들을 생각하며 맨몸으로 강에 뛰어든 친구들은 겨우 고개만 내놓고 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수영복도 없이 강물에 뛰어든 친구들이 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보면서 나는 제대로 수영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강물에 뛰어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밤낮으로 열심히 수영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수영 교실에서 훈련한 지 5년이 지났을 때 코치님은 나에게 이제 혼자 수영해도 좋다고 말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 수영복을 입고 나를 가르쳐주던 코치님은 나에게 국내산 브랜드 수영복을 입혀주었다. 코치님은 나에게 “이제 수영복을 입었으니 저 강을 건너서 뭍으로 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단 강물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강을 건너 뭍에 도착할지 떠밀려 내려갈지 모르지만 배운 대로 열심히 수영해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그래서 나만의 뭍으로 꼭 가겠노라고. 코치님은 나에게 강을 무사히 건너길 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국내산 수영복을 입고 살살 헤엄쳐 강에 들어갔다. 강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시작하고 옆을 봤더니 옆에서 수영하는 사람은 해외에서 수영을 배워왔단다. 그는 해외 명품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SCI라는 구명조끼도 입고 KCI라는 오리발도 착용했다. 국내산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던 나에 비해 그는 나보다 조금 더 빨리 헤엄쳐서 강 건너 뭍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보니 수입산 모터보트를 타고 한 번에 강을 건너 뭍에 오르는 사람도 보였다. 그 사람은 해외 명품 수영복에 구명조끼도 여러 개, 오리발도 여러 개 있었다. 모터보트를 탔으니 물에 몸을 담글 이유도 없어 보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어떤 사람은 아예 헬리콥터를 타고 강을 재빠르게 건넜다. 헬리콥터를 탄 사람은 수영복에 오리발에 구명조끼에 산소탱크까지 없는 게 없었다. 뭍에 오르는 순서는 없었지만 뭍에 누가 오를 지는 분명해 보였다. 


강물에서 헤엄치면서 수영 교실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 나는 오리발도 얻었고 구명조끼도 얻었다. 전보다 수영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런데 열심히 팔을 뻗고 물장구를 쳐도 뭍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강에 들어오고 나서 물살은 더욱 강해졌고, 강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강과 뭍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 앞과 내 뒤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강물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뭍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없어졌다. 뭍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았다. 수영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리발과 구명조끼 개수가 많을수록 좋았다. 명품 수영복을 입고 수많은 오리발과 구명조끼를 가지고 있더라도 먼저 뭍에 도달한 사람들이 오케이 하지 않으면 뭍에 닿을 수 없었다. 


뭍에 닿고 싶으나 뭍에 닿을 수 없어서 계속해서 강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강에 있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뭍에서 던져주는 비상식량 말고는 거의 없었다. 뭍에서 던져주는 비상식량은 언제나 양이 적었다. 수영을 먼저 배웠고 수영을 잘한 사람들은 뭍에 먼저 도착해서 아직 강물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따금씩 비상식량을 던져줬다. 뭍에 있는 사람들은 비상식량을 아무에게나 던져주지 않았다.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이 어떤 브랜드의 수영복을 입었는지, 어떤 수영 교실을 다녔는지를 꼭 물어보고 비상식량을 던져주었다. 그래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더 힘들게 수영했다. 비상식량도 매일 던져주는 게 아니라 뭍 사람들이 쉬는 날에는 이것도 없었다. 뭍에 있는 사람들은 1년에 네 달을 쉰다. 뭍 사람들이 쉬는 네 달 동안 강물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서 더 고생이었다. 


강물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 사람들을 위한 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비상식량을 나눠줄 때 조금 더 공정하게 나눠주도록 하고, 뭍 사람들이 쉬는 기간에도 강물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던져주도록 했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되면서 뭍에서 던져주는 비상식량의 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뭍에 있는 사람들은 뭍에 있는 식량도 이미 바닥이 났다면서 강물에 있는 사람들에게 줄 식량이 없다고 말했다. 비상식량의 양이 줄어들자 강물에서는 비상식량을 받아먹기 위한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명품 브랜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도 체력이 점점 고갈되었으며, 수영복도 없이 맨몸으로 강에 뛰어든 사람들은 계속 급류로 떠밀려 내려갔다. 


강물에 뛰어든 사람들은 모두 강 건너 삶을 동경하지만, 모든 사람이 강을 건너 뭍으로 갈 수 없는 현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뭍에 당도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강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 물살에 맞서 힘겹게 수영을 할지언정 거센 물살에 허망하게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을 정도는 불가능한 걸까? 그렇게 하려면 무엇부터 뜯어 고쳐야 할까? 젖과 꿀이 흐르는 뭍에는 못 가더라도 강물에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서 잠시라도 머물면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섬이라도 허락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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