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등등’의 삶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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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것은 그 공동체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소속감의 의미는 단순히 한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관계와도 매우 가깝게 연관되어 있다


 대학에서 한 학기에 16주 씩 두 번, 그러니까 132주 동안은 아주 불안정하게 어딘가에 속해 있는 듯, 속해 있지 않는 듯 지내왔던 시간강사는 언제나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 경계인의 삶은 기타 등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타 등등의 삶을 경험하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시간강사가 대학 교문을 들어서서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다시 교문 밖으로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자신이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 기타 등등의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시간강사가 거쳐 가는 모든 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하는 나의 삶에서 중요한 습관 중 하나는 흡연이다. 쓰던 글이 진행이 잘 안 돼 머리가 복잡할 때,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좋을 사례를 떠올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흡연구역에서 홀로 서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담배를 한 대 태우면,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내가 A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첫 학기에 있었던 일이다. 강의 한 시간 전에 학교에 도착해서 ‘A대 교직원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이용을 삼가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있는 교직원식당을 가볍게 지나쳐서 학생식당 한구석에서 김치제육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학생회관 앞 흡연구역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 수업에서 할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흡연구역 한구석에 붙어있는 금연교실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참에 금연교실에 가서 도움 받아 담배를 끊어볼까 잠깐 고민하던 찰라, 금연교실 대상자 안내를 보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이런 데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안내문에 나와 있는 금연교실 대상자는 1. A대 학생 2. A대 교직원 3. 기타 A대인으로 세 개 그룹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A대에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생이 아니다. A대 교직원 식당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으니 A대 교직원도 아니다. A대에서 월급을 받지만, 한 학기에 네 번만 월급 받고 16주가 지나면 또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한 학기 16주만 A대에 오는 기타 A대인이었다. “··· 나는 기타 등등이구나.”


시간강사는 16주짜리 기타 등등교육자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해 학계에서 토론과 소통을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내 이름 석 자 뒤에 항상 괄호로 어디 기관 소속임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소속 기관이 참 애매하다. 그래서 특정 기관의 전임이 아니었던 나는 연구자로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서 소속 기관을 어디로 적어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한 선배에게 물어봤더니, “지금 강 선생이 출강하고 있는 학교 중에 돈 제일 많이 주는 학교로 적는 게 좋지.”라고 대답했다. 시간강사에게 돈을 제일 많이 주는 학교란, 곧 가장 많은 강의를 하는 학교를 의미한다. 선배 강사들이 그렇게 해왔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저자: 강민주(A대학교)’라고 썼다. 이렇게 소속을 쓰면서도 이 학교 정규직 교수님들이 시간강사가 왜 소속을 A대학이라고 썼냐?”고 물을까봐 소심한 마음에 걱정도 했다. 더구나 방학 기간에 나오는 학술지라면, 그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더 커졌다. 나는 방학기간에는 A대학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논문이 실린 학술지에 A대학교라고 소속을 적은 걸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A대학이라고 소속을 표기한 것은 아마도 A대학에서 오래도록 강의하고 싶은 소박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들고 낢이 아주 자연스러운 이 바닥에서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 학교임에도 굳이 A대학을 내 소속으로 쓴 이유는 정규직 교수들에게 내가 이 만큼 이 학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나는 A대학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연속해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A대학을 내 소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A대학 OO학과에서 학과 행사를 진행하는데, 혹시 참석이 가능하냐고 학과 조교가 물었을 때 나는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했고, 가겠다고 말했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봤을 때 OO학과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는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을 알고 아차 싶었다. ‘여기를 왜 온다고 했을까···나는 불청객이겠구나.’ 내 이름 밑에 강사라고 적혀있는 이름표를 받아든 순간, 자신이 참 비루하게 느껴졌다. 강사라고 적어놔야 했을까? 이 자리에 와있는 사람 중에 내가 강사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을까? 당신은 강사인데 여기 왜 왔냐는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았다. 굳이 강사라고 적어서 내 존재를 각인시켜준 것은 비정규직 강사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오지?’라는 무언의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 행사 내내 강사라고 적힌 이름표를 차지 않았다. 비록 내가 다음 학기에도 A대학에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강사라는 존재일지라도, 이 학교에 소속감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성실히 강의를 했고, 이 학교 이름을 내 소속으로 넣은 학술지 논문 여러 편을 게재하면서 연구 활동을 했는데···. 나는 그저 운 좋게도 몇 학기를 연속으로 강의할 수 있었던 스쳐지나가는 강사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그 행사에서도 기타 등등이었다


 ‘기타 등등의 삶을 사는 시간강사는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기로 했고, 대출이 필요했다. 부동산에서 소개시켜 준 대출 상담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제일 먼저 비정규직인데 대출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대출 상담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필요한 서류 제출하고 간단한 심사를 마치면 대출이 되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재직증명서, 4대 보험 자격득실확인서, 원천징수영수증 등을 내달라고 했다. 그동안 재직상태를 증명 받을 필요가 없었던 나는 강의하고 있는 대학에 재직증명서를 신청하면 당연히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주민등록등본도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이면 출력되는 세상에서 대학 재직증명서 역시 어렵지 않게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대학의 행정정보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재직증명서를 출력할 수 있는 메뉴가 없었다. 학과 조교에게 물어보니, “시간강사는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이 아니라 강의경력증명서밖에 발급받을 수 없다.”고 했다. 대출 상담사에게 전화해서 비정규직 시간강사인 나는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대출 상담사는 아무리 비정규직이어도 발급 대상이 아니라니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근로계약서라도 내라고 했다. ‘, 근로계약서···. 그렇지. 재직을 증명 받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고, 적으나마 월급을 받고 있다는 증명이 가능한 근로계약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나는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쓴 기억이 없었다. 학과 조교에게 혹시 내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 물어보았다가 무척 민망했다. 나는 근로계약서를 썼는지도 모르는 몰노동적인 노동자였던 것이다. 학과 조교가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시간강사들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것이 관행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근로계약서를 쓸 수 있냐고 물어봤다. 참 민망했다. 하지만 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어물어 교무처에 가서 이 학교에서 강의라는 것을 16주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간신히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강의위촉계약서였다. 누군가는 클릭 한 번이면 어디 소속인지 쉽게 증명 받을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고 찾아다니면서 16주짜리 강의를 위촉받고 강의를 하는 강사라는 것을 겨우 증명 받을 수 있었다.


참 씁쓸했다. 이게 다 시간강사라는 일자리가 기타 등등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기타 등등의 삶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디 한둘일까? 무소속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는 부유하는 삶속에 늘어나는 것은 한숨과 탄식, 그리고 분노였다.


201981일부터 기타 등등의 삶을 살아온 시간강사들에게도 대학에서 교원 지위를 인정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기타 등등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소속이 생기고, 공동체 구성원의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분명 작지만 큰 변화일 것이다. 1년의 계약 기간과 두 번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도록 변화된 제도에서 이제 시간강사도 교원으로서 어느 대학에 소속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비록 최대 3년이지만, 이 기간 동안 강사는 기타 OO대인이 아니라 OO대학 교원 자격으로 금연교실에 참여할 수도 있고, 교직원 식당에도 당당히 들어갈 수도 있다. 또한 강사는 학술지에 게재하는 논문에 자신의 소속을 당당하게 적을 수 있을 것이고, 학과 행사에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참여할 수도 있고, 재직증명서도 발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타 등등으로 살아왔던 강사들의 삶은 조금 덜 힘들어질 것이다. 한꺼번에 당장 큰 변화는 어렵겠지만, 작지만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된 대학 공동체의 내일을 응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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