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바랭이농장 세 번째 일기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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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어느덧 밭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봄이다.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음성노동인권센터로 파견 갔다 2년 9개월 만에 청주노동인권센터로 복귀한 후 지금은 안식휴가를 보내고 있다. 다행히 음성노동인권센터는 음성지역 분들의 정성으로 좋은 활동을 펼치고 있고, 또 나보다 훌륭한 젊은 활동가가 든든히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바랭이농장도 좋은 변화가 있었다. 이쁜 농막을 하나 설치해 놨고, 마을 분들과 많이 가까워졌다. 원래 외지 사람이 밭을 사서 주말농사 지으며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힘들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며칠 전에는 마을 이장님과 어른 몇 분 모시고 삼겹살을 대접해드렸다. 마을 어른들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살갑게 말을 건네신다. 이장님은 “우리 마을로 주소 옮겨! 그래야 마을 사람 되는 거여” 이러시는데 싫진 않다. 치매를 앓고 계신, 내 밭을 지나가다 나만 보면 “로타리 쳐, 그라목숀 뿌려”를 반복하시던 어른은 기력 쇠한 모습이 뚜렷해 이젠 땅만 쳐다보고 느릿느릿 발을 끌며 가신다.


이번 겨울엔 한파가 심해서 마늘 싹이 잘 올라올까 걱정됐다. 다른 밭은 3월 초부터 싹이 올라오기 시작해 하루가 다르게 몸을 키우고 있다. 투명 비닐로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내 마늘밭은 바랭이풀로 덮어줬는데 3월 중순이 돼도 싹이 보이지 않아 다 얼어죽었나?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한 놈 두 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쑥쑥 자라고 있다.

보통 마늘밭은 3월에 잠깐 비닐을 걷어 복합비료와 제초제를 뿌리고 다시 비닐을 덮어준다. 내 마늘은 3년째 비닐 없이, 복합비료나 제초제 없이 키우고 있다. 거기다 가뭄 때 물도 못 대 주니 씨알 굵기가 거짓말 좀 보태 콩알 딱지만하다. 작년 가을엔 직접 똥과 음식물 찌꺼기와 오줌물로 거름을 내 주었다.


올 봄은 밭을 갈지 않고 무너진 두둑을 올려만 줬다. 덕분에 무릎은 덜 아프다. 그 두둑에다 한 네다섯 고랑은 옆 밭에서 잔뜩 준 종자용 도라지뿌리를 심었고, 열댓 고랑은 감자를 심었다. 이번엔 거름도 섞지 않고 방앗간 하는 후배가 준 들깻묵을 뿌려줬을 뿐이다. 올해 첫 실험하는 자연농인데 이 아이들이 얼마나 자랄지 궁금하다.

나는 농사를 모르지만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자연농이든 작물이 어릴 때는 잘 보살펴 주어야 하는 게 자연섭리인 것 같다. 작물 씨앗은 오랜 세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개량되어 온 것들이라 자연 그대로 번식해 온 풀과 달리 어릴 땐 스스로 이겨낼 힘이 떨어진다고 한다.


참, 올해는 표고목 서른 몇 개를 구입해서 밤나무 아래에다 세워놓았다. 원래 올 봄에 접종한 것은 내년에 버섯이 나오는데 나는 작년 봄에 접종한 것을 구입했기 때문에 올 가을부터는 표고버섯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감자 캘 때 닭백숙과 삼겹살 잔치를 벌였는데 올해는 가을에도 표고버섯에다 삼겹살 모임을 추가해볼까?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농사를 지으면서 안식휴가 마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 봤다. 청주노동인권센터 대표님과 운영위원님들께 사직할 뜻은 미리 전해드렸다. 전업 농사를 배워볼까 생각도 했다. 사실 농사는 오래 된 꿈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어느 날 쭈그려 앉아 감자를 심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갑자기 “광복아 너는 고통 받는 사람들 옆에 더 있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다. 하느님께서 왜 이런 계시(?)를 주셨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글에 구구절절 쓸 필요까진 없지만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긴 했다. 그 이유에다 한 가지 살짝 덧붙이자면, 감자 심는데 허리가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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