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바랭이농장 네 번째 일기

by 센터 posted Aug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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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올 여름 마늘은 기대보다 잘 컸다. 의성 마늘 종자를 구입해 4년째 같은 종자를 받아 심고 있다. 동네 어른들 말씀이 내 땅하고 마늘이 잘 맞는다고 한다. 마늘은 특히 그 땅에서 나온 것을 받아 심어야 좋은 마늘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지난 해 늦은 가을, 똥과 음식물 삭힌 거름을 밭에 뿌려주고 마늘을 심었다. 덕분에 풀 반 마늘 반 서로 경쟁하며 자라 작년에 거둔 마늘보단 씨알이 굵어졌다. 몇 군데 마늘을 나눠줬더니 마늘이 달다고, 정말 맛있다고 칭찬한다. 씨알이 굵은 마늘을 골라 올 가을 종자로 쓰려고 따로 남겨 놨다.


봄엔 비가 넉넉히 오다 6월 들어 이른 가뭄이 시작됐다. 열댓 고랑 심어 놓은 감자 싹이 왕성하게 자라는가 싶더니 가뭄과 땡볕을 못 이기고 이파리가 금세 시들해졌다. 아무래도 비닐을 씌우지 않고 풀만 덮어준 데다 물을 대주지 않아서 더 그랬을 거다. 감자는 손가락 크기부터 주먹 크기까지 올망졸망 참 못 생기게 자랐다. 고랑 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감자를 거두고선 가족들에게 택배로도 보내고 또 몇 군데 나눠주기도 하니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 다들 맛이야 비교할 데가 없다고 하는데 진담인지 위로하느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내 눈엔 하도 올망졸망 해서 안쓰럽기도 하다가 또 저것들을 제대로 못 키운 내 게으름을 탓하기도 하다가 내년엔 빗물 저장통을 하나 더 만들든지 해서 제대로 가뭄 대책을 세워봐야겠다 마음먹는다.


올 여름 가뭄과 더위는 해도 너무 했다. 고추는 죄다 말라 비틀어져 해마다 일곱 번 이상은 따던 것이 올핸 두 번 따자 끝물이다. 고추 말리기는 딱 좋은 날이지만 말릴 고추가 없다. 이맘때면 넘쳐나야 할 토마토며 가지며 참외들이 아예 열매를 못 맺거나 몇 개 달리다 말았다. 참깨도 들깨도 시들하다.


주말에 한 번씩 다녀가는 내 마음도 이렇게 심란한데 학자금 보탤 걱정, 빚 갚을 걱정으로 한 해 농사만 쳐다보는 농민들 속은 오죽 타들어갈까 싶다. 그들에 비하면 내 처지는 애교에 가까운 정도일 게다.


6개월 안식휴가를 마치고 7월부터 청주노동인권센터에 복귀해 일하고 있다. 그 동안 말 못할 어려움도 있었고 상근활동가들도 바뀌었다. 다행히도 지금 상근활동가들이 참 괜찮은 사람들이다. 센터가 뭔 복을 받으려고 이 좋은 사람들을 맞았는지 기대된다. 나도 그렇지만 누구나 넘치는 면도 있고 부족한 면도 있다. 넘치는 것은 덜어서 함께 나누고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가면서 가다보면 좋은 일들이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 온 상근활동가 중 조영은 변호사는 강원도 골짝 농사짓는 부모님한테서 자랐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선지 심성이 맑고 사람을 대하는 품이 넓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는데 본인 말로 ‘사춘기’가 왔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찰에 들어가 100일 출가수행을 하고 100일을 더 보태 사찰에 머문 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 마음먹고 그 덕에 로스쿨과 변호사 시험을 거쳐 센터와 연을 맺었다.


이다연 활동가는 나이 스물다섯이다. 너무너무 솔직하고 씩씩하고 의욕이 넘친다.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역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다 이른 나이에 깨달음(?)을 얻었는데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먹고 뭍으로 나와 대학을 나왔다. 그 덕분에 센터와 연을 맺게 됐다. 다연 활동가는 다양한 인권 사업에 관심이 많다. 스스로 일을 찾고 공부하고 기획도 해보고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농사는 젬병이지만 작물 기르는 일과 사람 기르는 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물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틀림없이 사람도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랄 것이다. 인연을 맺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기르는’ 관계로 나아가겠다.올해 농사는 망했다. 다가오는 김장 배추와 무 농사라도 잘 지어야겠다. 늦가을에 심을 마늘 농사도 잘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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