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농부의 바랭이농장 첫 번째 이야기

by 센터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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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땅을 장만하다


내 꿈은 시인이었다. 제법 어린 나이였던 초등학교 4학년부터 나이 스물두살까지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결국 접고 말았다. 그 후로도 한번씩시를 끼적이기는 했으나 매번 ‘재능 부족’을 실감한 채 포기하곤 했다. 그런데 더 강력하면서도 오래도록 간직해온 소망이 있으니 농사를 짓겠다는 포부가 그것이다.  나이 30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나는 농사짓겠다는 꿈을 한번도 놓아본 적이 없다. 

같잖은 꿈 덕분에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9년 전 노무사 사무소를 정리하면서 남겨 둔, 농사지을 미래만 생각하며 꼬깃꼬깃 숨겨둔 돈으로 2014년 늦가을에 땅을 장만한 것이다.  500평 약간 모자라는 평수이니 주말농장으로는 엄청 크고 전업농으로는 턱없이 작은, 참 애매한 크기이다. 그리하여2015년 이른 봄. 밭 여기저기 심어진 감나무와 대추나무들을 한쪽으로 옮기고, 창고도 하나 들여놓고, 연장도 이것저것 갖다 놓으면서 나의 주말농사는시작됐다.


사람들.jpg

청주노동인권센터 식구들과 함께 바랭이농장에서.


이름을 바랭이농장이라 짓다


그렇게 해서 첫해 농사를 지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비닐 안 씌우고, 손으로 밭 갈고, 화학비료 안 주고, 제초제와 농약 안 뿌리고 오로지 괭이와 호미만 갖고 달려들었다. 동네 어른들마다 혀를 끌끌 차며 “풀을 어떻게 이겨? 트랙터 불러~ 로타리 쳐~ 비닐 씌우고 헛골에다 제초제 뿌려~”하시지만 그 무성한 핀잔을 견뎌내며 농사를 지은 결과는 초라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하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대풍이든 작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랭이다. 뽑아도 뽑아도 이를 앙다물고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 징글징글하고 비 한 번 내리면 그 왕성한 생장에 소름이 돋고, 그러다 줄기 마디마다 다시 뿌리를 내리는 그 에일리언 같은 번식력에 겁이 나다가 결국 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을 했다. 그리고 온 밭을 바랭이가 점령했다.

어쨌든 한 해 농사는 끝났다. 농사를 짓겠다고 밭을 장만했으니 이왕이면 이름이라도 붙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문득 첫 농사에서 가장 재미 본 작물로 지어볼까 했는데 갑자기 바랭이 풍년도 풍년이니 바랭이농장이라 짓자. 그래서 내 밭의 이름은 바랭이농장이 되었다.


똥에 대하여


밭을 장만하고 바로 시작한 것이 똥과 오줌 모으는 일이다. 그런데 지구상의 뭇 생명체들 중에 자기 배설물을 땅에다 돌려주지 않는 유일한 종족이 있으니 인간이 그렇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가 규모화되자 도시가 건설되고 그때부터 똥은 처분하기 곤란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심지어 농사를 전업으로 삼는 농가에서도 똥을 퇴비로 쓰지 않게 된 지 오래 되었다. 수세식 변기 시스템이 현대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밭을 장만한 후 똥과 오줌을 모아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단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 쉬운 일이 똥과 오줌을 모으는 일이다. 통 몇 개를 장만해서 한 통엔 톱밥을 채우고 다른 통엔 똥을 싸고 똥 위에다 톱밥을 뿌려주면 끝이다. 똥이 차면 밭에 있는 고래통에 붓고 오줌은 오줌 고래통에 붓는다. 이걸 모아 작년 늦가을에 거름 한 무더기를 만들어 놓았다.


손쟁기.jpg

오줌물 모은 것을 마늘밭에 뿌릴 때 사용하는 손쟁기.


갈고 또 갈고 심고 또 심고


봄이 되자 작년 늦가을 심은 마늘이 궁금해졌다. 처음 심어보는 작물이라 어떻게 심을지 몰라 그만 마늘 싹이 나올 곳을, 그러니까 대가리를 땅바닥으로 처박은 채 심어버렸다. 동네 어른께 여쭤 봐도 그게 싹이 날지 안 날지 그리 안 심어봐서 모르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추위에 얼지 말라고 덮었던 비닐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걷어내니 다른 풀들 틈에서 그 여린 것이 초록색 싹을 내민 것이 아닌가? 하나도 죽지 않고 말이다. 이렇게 내 봄의 시작은 설레고 경이로웠다.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 400평 되는 밭을 농사 왕초보인 내가 손쟁기를 밀며 꾸역꾸역 혼자서 갈았다. 3월 말부터 밭을 갈기 시작해 4월 초엔 센터 식구들과 함께 씨감자를 심고 쌈채소 씨앗, 도라지 씨앗들을 뿌렸다. 매주 와서 밭을 갈고 작물을 심었다. 완두콩, 강낭콩, 토란, 옥수수, 가지, 토마토, 참외, 수박 따위들을 심었고 또 땅콩과 서리태를 심었다. 틈틈이 풀들을 잡아주었는데 이제 참깨와 고구마 심을 자리를 남겨놓고 밭은 말끔히 단장한 구불구불한 이랑과 그 위에 초록으로 출렁거리는 마늘, 감자, 고추들로 넘실거렸다.

윗밭 어른은 올해도 어김없이 “트랙터 불러, 비닐 씌워, 그라목숀 뿌려”를 반복하셨다. 치매기가 있는 그 어른은 맹독성 제초제인 그라목숀이 판매 금지된 지 제법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먹곤 한다.


풀들의 세상


6월이 되자 비닐 한 장 깔지 않은 바랭이농장에 풀들이 ‘무섭게’ 올라왔다. 7월 초 한 차례 장마가 지나가자 풀들은 작심한 듯이 모든 작물을 덮어버렸다. 고추도, 토란도, 고구마도, 땅콩도, 콩도, 호박도, 참외와 수박도 몽땅 풀들의 세상에 숨어 버렸다.

겉으로는 배짱을 튕기지만 속내는 심란하기 짝이 없다. 바랭이, 명아주, 쇠비름, 망초, 개망초 들이 바랭이농장의 터줏대감이다. 그 중에서도 밭의 지배자는 단연 바랭이다. 바랭이는 옆에서 다른 풀들이 경쟁을 하면 하늘로 치솟아 사람 가슴 높이까지도 자란다. 하지만 근처에 경쟁 상대가 없으면 위로 치솟지 않고 땅으로 납작 엎드려서 사방으로 번져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다가 아니다. 놀랍게도 위로 치솟은 바랭이 줄기엔 마디가 전혀 없는데 옆으로 번진 바랭이는 줄기마다 여러 마디를 만들어 땅에 뿌리를 내린다. 

살아남아서 반드시 자손을 퍼뜨리고 말겠다는 강렬한 목표, 어떻게든 목표에 도달하려는 집요함,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생존 전략을 선택하는 유연함. 바랭이가 밭의 지배자가 된 까닭이다.


그래도 뿌듯한 것들


풀 때문에 심란하긴 하지만 내 밭에서 나온 작물은 확실히 질이 다르다. 작년에 김장을 담글 때 같은 양념으로 시중에서 구입한 배추와 밭에서 키운 배추를 따로 담갔다. 어머니가 밭에서 키운 배추를 보시면서 “벌레 먹다 만 저 쬐깐한 것이 뭐 먹잘 것이 있겄냐. 참···.” 이러셨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광복아, 니가 키운 배추가 맛있더라야. 쬐깐한 것이 참 신기하다야.”

6월 중순쯤 작년 늦가을에 심은 마늘을 캤다. 양이 얼마 안 되어 올 가을 종자로 쓸 요량으로 어머니에게 드시면서 말려 달라고 보내드렸다. 어머니가 그 맛을 보고 놀라워했다. 어머니는 입맛이 아주 까다로운 분이다.

6월 말 감자를 캤다. 우리 센터 식구들이 모여 닭을 삶고 삼겹살을 굽고, 캔 감자는 저마다 조금씩 나누어 가져갔다. 그런데 나누어드린 분들로부터 어떤 감자보다도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작물들이 풀들과 경쟁하면서 크기는 작아도 그 속만큼은 더 알차게 채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초보자다. 언제 쯤 나는 풀도 관리하면서 풀과 더불어 웃을 수 있는, 건실한 농사꾼이 되어 있을까?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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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 이 글은 2016년 청주노동인권센터 소식지에 연재했던 글을 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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