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_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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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센터 정책연구위원



지역 운동과 노동 운동의 결합과 그로부터 나오는 상승효과야 말로 기존 운동 조직 대비 지역비정규센터가 가질 수 있는 상대적 강점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신규 센터 상근활동가들이 맞닥뜨리고 극복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특히 모체가 되는 민간센터 없이, 지역 내 이렇다 할 기반 없이 설립된 위탁센터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상근활동가가 느끼는 현실의 무게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인터뷰에 응해줬던 많은 활동가들이 지자체로부터 받는 예산과 자원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주는 압박을 언급했고, 그것이 결국 이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운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위로부터의 정치적-행정적 셈법의 결과로 생겨나는 신규 위탁센터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 2~3년, 즉 설립부터 첫 번째 재위탁 심사를 받는 기간 동안 활동가들과 센터가 지역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호에서는 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이하 아산센터, http://www.asanct.co.kr/)가 지난 3년 동안 걸어온 길과 향후 센터가 나아갈 방향을 소개하려 한다. 지난 3월 아산센터의 정지영 사무국장님이 출장 중에 귀한 시간을 내주어서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인근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근활동가 교체, 사업 지속성 어려워져


아산센터는 올해로 운영 3년째를 맞이하고 있고, 10월에 재위탁 심사를 앞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15년 12월에 열린 한국비정규노동정책박람회를 아산센터가 중심이 돼서 준비하고 성공적으로는 치러내는 과정을 인상 깊게 봤다. 그런데 당시 활약했던 상근활동가들이 그 사이 모두 센터를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센터에서 상근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현성 정책국장과 정지영 사무국장은 세 번째 실무자 그룹으로 작년부터 아산센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3년 동안 6명의 상근활동가들이 나가고 들어온 배경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시작했다. 


스타트업 회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이론 연구들이 스타트업의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루틴, 다시 말해 일상적 업무를 설계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조직 내 안착한 일상적 업무 패턴은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조직 목표와 정체성을 구체화하는데 기여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루틴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 동일한 인력 구성이 일정 기간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잦은 인력 교체의 직접적인 결과는 ‘1년 중 이 시기에는 이 사업을 한다’라는 패턴이 센터 일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었다. 이제는 비정규센터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담, 무료법률 강좌, 실태조사, 정책연구사업, 문화사업, 청소년 노동 인권 교육 등이 상설사업으로 자리 잡지 못하다보니, 일종의 악순환처럼 무엇을 하든 처음부터 기획해야 하는 상근자들의 업무량도 많아지게 되고 사업의 종류와 실행 방법을 둘러싼 조직 내 갈등이 커지게 된다. 외부적으로는 사업의 연속성 결여가 ‘저 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그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외부 행위자들의 영향력 속에서 활동가들이 센터의 무게중심을 잡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시행착오 이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상근자 개인의 특성이 아닌 구조적인 관점에서 아산센터의 인력 교체를 바라 본 정지영 사무국장의 소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위탁센터들 역시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설립될 위탁센터들 역시 쉽게 빠질 수 있는 악순환의 경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자연스럽게 그 고리를 끊기 위해 두 상근자가 어떤 노력을 했는 지로 얘기가 이어졌다. 그 출발점은 일상사업을 다시 세우기 위한 적극적인 벤치마킹이었다. 다른 위탁센터들이 어느 시점에 어떤 사업을 하는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개별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전화나 직접방문을 통해서 문의하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질적인 지역적 맥락은 지역 간 사업의 직접적인 이식을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작년 상반기에 민주노총 충남본부의 마트 노동자 조직화 사업과 연계해서 진행한 지역 마트 노동자 실태조사의 경우 대형마트보다는 중소마트가 많은 지역의 특성과 낮은 아산센터의 인지도로 인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한 시행착오의 경험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그럴듯한 사업을 서둘러 진행하기 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아산지역 노동 시장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아산센터의 존재와 개별 사업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 사무국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3년 전에 센터가 처음 세워졌을 때 했어야 할 일을 돌고 돌아 이제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물이 지난 10월에 열렸던 아산시 비정규직 현황과 비정규직지원센터의 과제 토론회였다. 안산시 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현황조사 프로젝트를 했던 박종식 박사가 같은 주제로 아산의 현황을 조사해서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아산시의원, 담당공무원, 민주노총 지역본부, 노사민정협의회, 시민단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모여서 센터의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 전망을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1) 지역에 어떤 비정규직 이슈가 있고 그것을 다루는데 센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지역 내에서 공감대와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선행되고, 그에 맞춰 인력을 뽑고 업무를 배치하는 게 이상적인 과정이라면 많은 위탁센터가 그 과정을 생략한 채 ‘그냥 시(또는 구)랑 얘기가 돼서’ 설립되고 급하게 운영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 같다는 정 사무국장의 진단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일단 지자체위탁센터가 설립되면 그 이름을 유지만 하는데도 많은 품과 시간이 들어가게 된다. 개별 사업을 펼칠 때마다 지자체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작업, 그리고 1년 단위로 작성해야하는 사업계획서와 성과보고. 지자체비정규센터가 위탁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것은 다른 지자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방향을 잘못 잡게 되면 운동이 아닌 센터의 유지가 목표가 되기 쉽다. 본말이 전도된 채, 유지 보수 활동이 활동가들의 에너지와 창의력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가게 된다.  


아산토론회.jpg

아산시 비정규직 현황과 비정규직지원센터의 과제 토론회(@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


불법파견 실태 조사 장기프로젝트 계획

작년 한 해, 지역 내에서 정체성을 재구축하고 일상사업들을 안착시킨 아산센터에 있어 올해는 더욱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일상사업에 더해서, 안산센터를 롤 모델로 삼아 지역 내 불법파견 실태를 조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2~3년짜리 장기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더 큰 시험은 작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두 명의 상근자 중 한 명인 정 사무국장이 육아휴직을 떠나는 6월부터 시작될 것 같다. 정 사무국장은 오랫동안 기획하고 공을 들여온 불법파견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지만, 새로운 체제하에서도 연속성 있게 사업이 진행된다면 그만큼 아산센터의 뿌리가 지역에 깊이 내렸음을 보여주는 값진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 사무국장이 1년 후에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해서 센터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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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토론회 자료집은 센터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기 가능 (http://asanct.co.kr/?r=home&c =8/18&uid=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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