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노동은 왜 만나야 하는가?_우리동네노동권찾기

by 센터 posted Feb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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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센터 정책연구위원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자아내는, 똥인지 말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들을 분 단위로 쏟아내는 청와대와 국회를 보며, 글로만 배웠던 대안적 지역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많은 활동가들의 말마따나, 광화문 촛불혁명이 정권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및 생활정치의 영역 속으로 확장돼, 일상 속에서 여의도 정치꾼들을 견제하고 압박할 수 있는 거버넌스로 이어질 때, 비로소 혁명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와중에 한국GM노조 간부들이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취업 알선료를 받아서 챙겼고, 그것이 일부 간부의 일탈이 아닌 관행처럼 행해졌다는 참담한 뉴스가 불거졌다.

거기에 더해, 이에 대한 민주노총의 공식대응이 늦어지면서, 안타깝게도 민주노조운동은 보수언론에 의해 구체제의 일부로 도매급으로 묶여, 청산 대상으로 규탄 받고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시민들은 ‘민주묘총’, ‘장수풍뎅이연구회’의 깃발 아래 기꺼이 함께 하지만, 노조의 깃발과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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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고졸취업자 동아리 ‘처음처럼’ 모임 (@우리동네노동권찾기)


지자체 위탁센터 증가, 민간비정규센터 전망은?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의 바람에 씻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기저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지역 거버넌스 구축’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대안적 노동 운동’ 두 지점을 잇는 비정규센터와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이하 한비네)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케 한다. 특히, 조기대선이라는 거시정치의 변곡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많은 활동가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양적으로 팽창해 온 비정규센터 운동의 성과를 되돌아보며, 운동의 질적 발전을 이끌어 내기 위한 중요한 시기로 금년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상근활동가들의 노력과 성과로 지자체위탁센터의 증가세는 금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기존의 네 개 자치구 센터에 세 개의 센터를 더하기로 확정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신규 민간센터 설립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기존의 민간센터마저 지자체센터를 수탁 받은 후 위탁센터 운영에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면서 센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만개하고 있는 위탁센터들의 뿌리가 보수정권 10년을 버텨낸 민간센터에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인터뷰를 했던 많은 분들이 그 뿌리가 약해지고 있는 것에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호에서는 서울시의 민간비정규센터 중 한 곳을 꼭 다뤄보고 싶었고, 예전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우리동네노동권찾기(이하 우동)’를 찾게 되었다.


우리동네노동권찾기, 김창수 대표를 만나다


작년 8월 한비네 활동가 워크숍, 그리고 12월의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이하 서로넷) 활동가 워크숍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우리동네노동권찾기(이하 우동)의 분위기는 다른 센터들과 사뭇 달랐다. 김창수 대표를 포함해 상근활동가 3명, 그리고 알바지킴이 3명으로 구성된 6명의 성원들 사이 관계가 느낀 대로 얘기하자면, 누가 대표인지, 누가 상근활동가이고 알바지킴이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친밀하고 편해보였다. 매우 젊은 조직이었고 톡톡 튀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더 검색을 해보니, 2013년 설립 이후에 다양한 사업 성과들과 그에 따른 후원회원 수의 확장이 단연 눈에 띈다(우동의 설립 과정과 그동안 펼쳐온 여러 가지 사업에 대해서는 우동의 유승현 활동가가 2015년 《비정규노동》 113호에 기고한 글 참조). 더욱 더 큰 호기심이 생겼고, 지난 설 연휴 마지막 날 오후에 김창수 대표를 만나 우동과 서로넷, 한비네 활동에 대해 영등포 모처에서 낮술에 충만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연휴 때 가족과의 시간, 지인들과의 약속을 잠시 미루고 시간을 냈다.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청년 비정규직 사업, 청년 노동자 동아리 조직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 인권 교육은 전국비정규센터의 핵심사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우동 역시 동대문구 안에 있는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 인권 교육에 나서고 있다. 다른 곳과 차별화 되는 지점은 교실이라는 공간과, 고 3이라는 시간에 한정되는 일회성 사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졸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 사업과 연계하는 의미 있는 실험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고졸취업자 동아리 ‘처음처럼’에 대해서 아직은 놀고먹는 동아리 수준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렇게 즐거운 만남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책읽기 모임, 사회 문제 토론모임으로 연결되는 밑그림이 있었다.

사업의 시작과 완료, 성공과 실패가 칼로 무 자르듯 정해지는 전통적인 조직화 모델과는 다른,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아파트 경비원 조직, 울산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청소 노동자 조직화처럼 작업장 영역 밖에서 느리지만 지속적인 조직화의 양상과 궤를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성과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호기심과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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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 마을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동동야학(@우리동네노동권찾기)


역 운동 결합과 노동단체로서의 정체성


앞서 소개한 청년 비정규직 동아리 사업도 동대문구에서 학업을 마치고 거주하고 있는 청년 노동자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지역커뮤니티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다른 지역비정규센터와 마찬가지로, 우동 역시 동대문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역시민단체 및 마을 만들기 단체들과 결합해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동동야학, 그리고 영화 상영회 같은 공동 문화 행사들이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역연계 사업들의 내용 이상으로 흥미롭게 들었던 부분은 우동이 지향하는 지역과 관계 맺는 방법이었다. 아직도 노동이라는 단어를 불편해하는 지역 터줏대감들과의 마찰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센터의 정체성을 살짝 윤색 내지 탈색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욱 선명한 정체성을 무기로 지역 내에서 우동만의 입지를 다지는 것. 그 예로 든 것이 현재 진행 중인 지역의 한 대형 시민단체의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지역의 명망가인 해당 시민단체 대표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5명의 상근활동가를 해고했고, 이에 우동이 해고자들, 그리고 우동의 문제의식에 공감한 지역단체들과 연대해서 복직 운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 사건이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상근활동가들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지역 내 단체들이 있다면 그들이 우동을 두려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이는 김창수 대표의 말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와 관련해서 또 흥미로웠던 점은 최근에 김창수 대표가 민주노총 서울본부 동대문구지부 준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비정규센터 대표 중 공식적으로 민주노총 내 직책을 맡고 있는 분은 처음이었기에 화들짝 놀라서 재차 확인했더니, 오히려 지역 노동 운동을 하는데 그게 더 효율적인 방법 아니냐는 현답이 돌아왔다. 위탁센터야 지자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게 민간센터의 강점이고, 민주노총의 이름이 지역노조와 더 긴밀히 연대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우동만의 방식, 수평적인 조직 운영


일반노조 활동을 통해 비정규 노동 운동을 시작한 김창수 대표의 개인적인 생각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다른 상근활동가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내부의 반대가 있었고, 설득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우동의 내부 운영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앞서 잠시 언급한대로, 김창수 대표는 NGO, NPO시민사회단체 내에 은근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활동가에 대한 열정페이 문제, 그리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후원금으로 대부분의 사업비와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는 중·소규모 민간단체의 재정적 도전과 적절한 예산 분배 문제는 우동 역시 예외 없이 겪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처하는 내부 원칙은 사업 및 운영계획을 짜는데 반드시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서 함께 결론을 내리는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 그리고 일종의 시간임금이었다. 즉, 야간이나 주말에 진행 중인 사업 관련해서 추가업무를 하게 되면, 그 시간만큼을 정규 상근 시간에서 제해 재충전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우동이 추진 중인 사업들, 내부의 운영원칙, 지역 내 시민·노동 단체들과의 관계 설정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 3시간여에 걸쳐 나눈 대화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열쇳말을 꼽자면 ‘원칙적인 유연성’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얼핏 형용모순으로 보이지만, 김창수 대표의 비정규 운동에 대한 생각, 더 넓게는 민간센터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설날 연휴 기간이라 다른 두 상근활동가들과 알바지킴이들을 함께 만나서 얘기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빠른 시일 내에 외대 앞 우동 사무실 인근에서 김창수 대표를 빼놓고, 우동 구성원들과 솔직하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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