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지역 노동 운동, 진짜 사장 찾기

by 센터 posted Jun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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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종명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센터장



청소 노동자들 직접인건비 인상 투쟁 나서


2015년 4월 29일, 부천시청 북문 앞으로 6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손에 손에 요구 사항이 적힌 피켓을 들고, 빨간색 투쟁 조끼를 입고 그 위에 우비를 걸쳤다. 아침부터 빗줄기가 흩뿌리고 있었기에 집회를 하거나 투쟁을 하기에 과히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힘차고 결기 있게 외쳤다.


‘청소 용역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직접인건비를 대폭 인상하라’

‘무늬만 호봉제, 5년에 1만 원이 웬 말이냐?’

‘경비 미화 용역 문제, 부천시가 직접 고용하라’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구조조정 중단하라’


이들은 민주노총 부천지역일반노조 조합원들이다. 지역일반노조의 네 개 사업장에 근무하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안에 맞춰 진짜 사장인 부천시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투쟁이다. 노동조합 위원장의 대회사가 있었고, 경기본부장의 연대사와 노래 공연도 있었다. 지역 단체 동지들의 노래 공연은 요즘 유행하는 <내 나이가 어때서>에 가사를 바꿔 불렀다. 그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비만 오지 않았다면, 투쟁하기 딱 좋은 날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천시의 청소 용역업체인 동운환경 노동자들은 150만 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사장의 횡포에 맞서 2012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으로 6개의 청소 용역업체 가운데 임금이나 복지 혜택이 가장 높아졌다. 그런데 부천시에서 청소 용역 도급비를 인상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직접인건비는 3년째 동결 상태다. 그렇다보니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다른 청소 용역업체는 직접인건비조차 떼어먹고 60퍼센트 수준밖에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동운환경 노동자들은 직접인건비를 대폭 인상하고 전액 지급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5년에 1만 원 호봉 받는 무기계약직 사무 노동자


부천시의 주요 부서나 동사무소에서 민원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지역일반노조 부천시 무기계약직지부 사무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겉모습만 보아서는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공무원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공무원들과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임금이나 복지 혜택은 그들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이 가장 크게 외치는 요구 사항은 제대로 된 호봉제 실시다. 기간제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마다 부천시가 자랑하는 것은 안정된 고용과 호봉제 등의 각종 복지 혜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부천시 무기계약직지부 사무 노동자들의 호봉제는 실상 호봉제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지경이다. 5년에 1만 원 오르는 호봉을 누가 호봉제라 부를 수 있을까? 부천시 주변의 여러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호봉은 연 단위로 2~3만 원이다. 그래서 부천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1년에 2만 원의 호봉제를 실시하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시립도서관 미화·경비 노동자 고용은 누가 책임지나


부천시청이나 구청, 도서관 등에서 경비 업무나 미화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야말로 가장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일 것이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라면 당연히 정규직이어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천시에는 건물 청소와 시설 관리, 경비를 맡은 노동자들이 250여 명 있는데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용역업체 소속이다. 이중에서 도서관 건물의 미화와 경비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지역일반노조 부천시립도서관지부 조합원들이다. 시립도서관에서 미화 경비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은 매년 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사용자 또한 이중이다. 실사용자는 공무원이지만, 법적 사용자는 용역업체다. 용역업체는 낙찰되고 나면 한 번 와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한 달에 한 번 돈 받아갈 때나 올 뿐 도통 보이지 않는다. 모든 업무는 실상 부천시 공무원들이 지시하고 관리한다. 그럼에도 이들 노동자에 대해 부천시는 고용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모든 책임은 용역업체가 떠맡는다. 임금 인상이나 후생 복리, 근무 문제도 용역업체는 아무 권한이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천시가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부천시가 직접 고용하고 해결하라는 것이다.


부천집회.jpg



부천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지역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비를 맞으며 계단에 모여 있다.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부천시설공단 비정규직 일자리 늘어나


부천시설공단은 부천시가 설립한 공기업이다. 부천시설공단에서는 주차 관리, 시설 관리 노동자들, 체육센터 강사 노동자들, 가로환경 미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부천시설공단에는 복수의 노동조합이 있다. 기업 노조인 부천시설공단노동조합과 부천지역일반노조 부천시설공단정통지부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정년을 축소하고 통상임금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해서 2012년 복수 노조를 결성했다. 조합원은 60여 명에 불과하지만, 그 투쟁성과 대표성은 기존의 노동조합을 압도하고 있다. 부천시설공단은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정규직의 주차 관리원이 하던 일들을 하도급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른바 구조조정이다. 몇 년 전에 가로환경 노동자나 체육강사직, 주차관리원 등 상용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대통령상도 받고 언론에도 모범 사용자로 알려지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요란스러운 호들갑의 이면에는 연장 근로 금지, 특근 금지, 신규 채용 금지 등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은 되레 줄어들고 업무는 늘어나는 기현상이 있었다. 부천시가 부천시설공단에 예산 부족을 이유로 업무를 통제하면서 이제는 정규직이 하던 일조차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천시설공단의 문제를 직접 사용자인 부천시가 해결하라는 것이 부천시설공단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이다.


부천 지역 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대하며


80~90년대 부천 지역 노동 운동은 단결과 연대의 모범이었다. 49개 노동조합 5천여 명이 1989년 4.15지역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고, 96년 노동법 개정 투쟁에도 많은 노동조합이 참여했다. 지역 노동 운동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땅값이 오르면서 제조업 사업장들은 하나둘 지방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동양엘리베이터, 경원세기, 유성기업, 대흥기계 등 민주 노조 운동을 주도하던 주요 사업장들은 비싸진 땅값을 등에 업고 부천 지역을 떠나갔다. 단결 투쟁, 연대 투쟁 모범으로 이름을 날렸던 노동 운동은 그 명성만 남았다.

지금의 부천에는 5천 5백여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있다. 민주노총에서의 지역편제는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천시흥김포지부이다. 과거 80~90년대에는 제조업 중심의 노동조합이었다면, 지금은 공무원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교비정규직노조, 병원노동조합, 지역일반노조 등의 비제조업 노동조합이 다수이고, 제조업 노동조합은 한 곳도 없다. 89년 4.15지역 총파업과 96년 노개투 총파업을 벌였던 투쟁성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의 민주노총 4.24 총파업에는 한곳의 사업장도 총파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개가 연차를 쓰거나 전임시간 활용, 조퇴 등 합법적인 틀 안에서 참여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투쟁을 조직하고 있지 못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노동조합도 바뀌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절절한 요구가 있고, 분노가 있고, 노동조합이 있는 한 노동자의 역사는 투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역 운동을 주도하던 주요 사업장이 이전해가면서 한동안은 2천여 명으로 줄어들었던 민주노총 조합원은 공장이 아닌 병원에서, 학교에서, 대형마트에서, 정부기관에서 조직되면서 5천 5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늘어난 조합원들이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법칙이 아닐까? 부천 지역 노동조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새로운 노동 운동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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